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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412] 그리움은 오래된 미래다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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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412] 그리움은 오래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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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엄마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의 연락을 받았다. 엄마의 오래된 친구였는데 이민을 가면서 연락이 끊어진 것이었다. 그녀의 딸이 내 SNS를 찾아 메시지를 보냈고, 소식을 전하자 엄마도 당장 친구의 연락처를 물었다. 그리움이라는 추상명사가 특별한 이에게 편지처럼 도착해 고유명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그리운 고유명사가 된다는 건 근사한 일이다. 젊을 때는 과거를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건강과 함께 과거의 좋은 기억과 추억은 큰 자산이 된다. 살면서 우리는 여러 만남과 헤어짐을 겪지만 가슴에 남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그리움으로 남는 건 그 사람의 어딘가를 물들였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관계는 이처럼 밧줄로 서로를 얽매는 게 아닌 느슨하게 스미는 사이 아닐까.

인생은 양방향의 왕복이 아닌 오직 편도다. 그리움 역시 대체로 과거형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 독특한 감정은 미래의 것이기도 하다. 기억은 과거에서부터 밀려오지만 감정은 미래를 향해 걸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누군가에게 과거의 흘러간 사람이 아니라, 미래에도 걸어오는 사람이라면 잘 살아온 삶이다. 나의 기억이 우리의 추억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사람은 왜 누군가를 늘 그리워할까. 우리 모두 미완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리운 사람은 내게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사람이다. 끝내 전하지 못한 말, 잡아주지 못한 손, 마주하지 못한 눈빛이 가득한 사람이다. 함께했던 시간보다,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지는 사람. 그렇게 그리움은 ‘오래된 현재’이자 ‘오래된 미래’가 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이 그러하듯.

살아가는 동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기적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저물어가는 삶의 황혼기에는 기적의 정의를 다시 적어볼 만하다. 내가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나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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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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