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이투데이 언론사 이미지

[인터뷰②] 박영선 전 장관 “AI 100조 투자, 제대로 써야 글로벌 시장 주도권 확보”

이투데이
원문보기

[인터뷰②] 박영선 전 장관 “AI 100조 투자, 제대로 써야 글로벌 시장 주도권 확보”

서울구름많음 / 25.7 °
AI 인프라 구축 국가 주도 필요
컴퓨팅ㆍ데이터ㆍ전력 역량 집중
AI 계약학과 확보⋯양자도 대비
GPU 등 HW 국내 생산 구축
첨단산업에 에너지믹스도 중요
정책기조 규제→진흥으로 전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빌딩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빌딩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를 관통한 메시지는 실용주의였다. ‘유연한 실용정부’ ‘실용적 시장주의’ ‘실용외교’ 같은 표현이 반복됐다. 이 대통령이 국정 철학을 분명히 드러냈음에도 시장은 아직 기대감과 우려를 교차하고 있다. 보수 정권은 규제를 완화하고, 진보정권은 강화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간 진보 진영이 기업의 압박 수위를 높여온 만큼, 어찌 보면 업계의 자연스러운 선입견이다. 더불어민주당 4선 국회의원이자, 문재인 정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박영선 전 장관은 다른 입장이다. 국가 정책은 보수와 진보, 노동계와 경영계를 넘나드는 실용적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이재명 정부 출범에 대해 “기업의 특권을 인정해주는 ‘기업 친화적 정권’이 아닌, 기업의 미래를 위한 것들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 전 장관은 최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 빌딩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AI 시대에 새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재명 정부에 제안한다…‘논스톱 AI’ 밑그림은

윤석열 정부는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나 정책 마련이 비교적 부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와 거대 야당의 오랜 갈등으로 관련 정책에 속도를 낼 수도 없었고, 정부가 연구개발(R&D)을 대거 삭감하며 학계와 기업에 빨간 불이 켜지기도 했다. 뒤처진 만큼 새 정부에서는 체계적인 정책 마련과 전폭적인 투자로 AI 산업에 활기를 찾아줘야 한다.

박 전 장관은 이재명 정부의 AI 구상을 구체화하자는 취지로 ‘논스톱 AI’를 제안했다. 이를 통해 국민 개개인의 AI 비서인 ‘AI 에이전트’ 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김대중 정부 시절 ‘원스톱 서비스 행정’에서 시작된 것이다. 박 전 장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보기술(IT) 시대를 열었고, 덕분에 우리가 20년을 쉽게 먹고살 수 있었다”며 “그 20년의 인터넷 고속도로에서 행정의 핵심은 ‘원스탑 전자 정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각각의 원스톱 시스템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것이 바로 AI 기술”이라고 언급하며 “행정서비스 뿐 아니라 각 회사, 개인에게 AI 에이전트로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의 시대는 PC에서 모바일, 클라우드 순서로 흘러가고 있다. 박 전 장관은 우리가 클라우드 기술 확보에서 한 발 뒤처졌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로 늦어진 대규모 투자와 규제를 꼽았다. 그는 “중대한 안보의 문제에 대해서는 보안을 유지해야 하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 규제를 풀어서 정보가 교류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가치가 있는 정보들을 교류하게끔 물꼬를 터서 클라우드의 활용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개발을 위한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박 전 장관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GPU를 포함한 슈퍼컴퓨터를 꾸리는 전문 ‘아키텍처(설계자) 팀’을 잘 꾸려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경고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광주의 ‘국가 AI 데이터센터’를 떠올렸다. 이어 “당시 아키텍처가 두세 차례 흔들리며 지나친 간섭을 받았고 결국엔 원래 기획하던 방향과 다르게 진행이 됐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빌딩에서 티타임을 갖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빌딩에서 티타임을 갖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전력은 AI의 필수…“안정적 수급에 주력해야”

AI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원활한 전력 수급이 뒷받침돼야 한다. 당장 SK하이닉스와 관계사들이 입주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우선적으로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박 전 장관은 “용인 클러스터에서 필요한 전력 10기가와트(GW)는 750만 가구가 사용하는 전력 양이며 이는 수도권 전력의 4분의 1 수준인데, 이것으로는 부족할 것”이라면서 “이 중 확정된 것은 3GW로, LNG를 주요 전력원으로 활용해서 생산해내겠다는 것인데 용량을 한참 더 늘려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진보 진영인 이 대통령은 친환경 재생에너지의 개발은 계속 이어가야 하지만, AI와 첨단산업 전력 확보를 위해 원전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5월18일 대선 토론회에서도 “원전을 활용하되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 가야 한다”며 “기기 전력원으로서의 원전을 완전히 중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 전 장관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재생에너지는 전력 공급을 일정하게 보장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면서 “소형모듈원자료(SMR)도 좋지만 이 기술은 조금 더 시간을 갖고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니, 부분적으로 원전 에너지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AI 투자 100조, 쓰려면 제대로 써야

이재명 정부는 AI에 100조 원의 재정을 투입해 글로벌 기술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국가의 주도로 AI 조직과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이다. 박 전 장관 역시 최소 100조 원은 투자해야 한다고 봤다. 미국 빅테크 기업 5곳이 지난해 투자한 액수가 약 450조 원에 달한다. 여기에 견주려면 적어도 100조 원을 투자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다만,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 디테일한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 전 장관은 100조 원을 투자해야 할 곳으로 △컴퓨팅 파워 △데이터 △전력을 나열했다. 그는 “단순히 100조 원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이 3대 축을 중심으로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컴퓨팅 파워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슈퍼컴퓨터 보유 대수를 늘려야 에이전트AI 시대를 리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슈퍼컴퓨터 보유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8위(13대)를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도 GPU 등 핵심 하드웨어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내 AI 반도체 개발과 생산 구축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데이터와 관련해선 정부 주도로 데이터 생산과 유통, 활용 등 전반에 걸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를 단순히 저장하는 개념을 넘어서, 이를 활용해서 소프트웨어로 개발한다는 의미다. 박 전 장관은 “데이터의 저장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얼마를 투자할 것이며 여기에 인력 양성을 어떻게 할 거냐는 부분까지 계획에 포함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AI 기술 발전을 위해선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되 친환경적인 부분도 놓칠 수 없다. 박 전 장관은 “원전의 폐기물 처리문제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RE100등을 고려하면 무탄소 전력비중확대 속도가 너무 늦지 않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며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위해서는 원전은 물론 전체 에너지 포트폴리오에서 어느 정도의 에너지 믹스가 적정한지 공개적 전문가 토론과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전 장관은 100조 원을 AI 산업에 투자하되, 양자컴퓨터에 대한 미래도 대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최근 IBM은 ‘2029년까지 오류가 없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박 전 장관은 “2029년이면 4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 시간 내에 상용화를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면서 “이는 정부가 나서서 준비해야 한다. 양자컴퓨터와 기존의 슈퍼컴퓨터의 하이브리드 체제를 구축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AI 경쟁력 확보에서는 인력에 대한 투자도 중요한 부분이다. 박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반도체 계약 학과를 늘렸던 것처럼 AI 계약 학과를 확보하고 수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AI 연구를 이어가고 인재를 육성하는 지방 대학에는 인센티브를 주며 지방 대학의 쇠퇴도 막아야 한다. 인구 분산 효과는 덤”이라고 덧붙였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빌딩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빌딩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AI 시대 정부의 역할이란 “뒷받침하고 판 깔아주는 역할”

박 전 장관은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 추진을 위한 조직을 현실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AI 정책 수립 조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국가는 이런 플랫폼만 깔아주고 뒤에서 부추기는 역할만 하는 것”이라면서 “여기에서 활동하는 민간 기업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연대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소기업벤처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자평하면서도 아쉬운 점을 털어놨다. 박 전 장관은 “2022년 즈음 삼성과 네이버가 ‘한국 소버린 AI’를 만들기 위해 힘을 합쳤고 네이버의 칩 설계 팀과 삼성의 시스템 반도체 팀이 협업하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되지 못했다”며 “중소기업벤처부를 더 오래 이끌었다면 조정 역할을 하며 두 기업을 지원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매우 아쉽다. 이것을 성공했다면 우리가 소버린 AI에서 앞섰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으로서 팹리스 업체의 성장을 도운 것은 주요 업적으로 꼽았다. 당시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에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고 설계 분야를 키우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러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대신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암(Arm)의 최대 주주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나서서 흔쾌히 투자를 결정했다. 박 전 장관은 “당시의 투자 자금이 지금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정부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여기에서 성공한 기업은 우리나라 팹리스 기업 퓨리오사와 리벨리온이다.

[이투데이/이수진 기자 (abc123@etoday.co.kr)]

▶프리미엄 경제신문 이투데이 ▶비즈엔터

이투데이(www.etoday.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