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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빙선이 바다얼음이 떠 있는 북극해를 가로지르고 있다. 픽사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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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민 |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이재명 정부가 부산과 포항을 북극항로의 거점 항만으로 개발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기후위기로 북극 해빙이 줄어들며 열리고 있는 이 항로는 아시아-유럽 간 물류 시간을 기존 수에즈 운하 경유 노선 대비 30~40% 단축할 수 있어 산업 전략 차원에서 매력적이다. 러시아는 이미 원자력 쇄빙선을 앞세워 북동항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의 북극 버전인 ‘빙상 실크로드’ 구상을 추진 중이다. 한국이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과학적 현실부터 분명히 직시하자. 북극은 지난 40년간 전지구 평균보다 3~4배 빠른 속도로 온난화되고 있으며, 특히 11월을 중심으로 한 초겨울 온난화는 지구 평균의 5배 이상에 이른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수록된 기존 기후모델들이 해빙 감소 속도를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해왔다는 점이다. 극지연구소를 비롯한 국내외 과학자들이 위성 관측 자료와 현장 관측 데이터로 모델을 보정한 최신 연구들은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파리협정의 야심 찬 목표인 저탄소 시나리오 아래서도 2030년대 후반에서 2040년대 초반 사이에 처음으로 얼음 없는 북극을 볼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후위기 대응의 근본적 딜레마와 마주하게 된다. ‘탄소중립 2050’을 내건 대한민국이 기후위기의 직접적 결과인 북극 해빙 감소를 산업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북극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기후를 조절하는 핵심 장치이자 인류 전체의 공공재다. 또한 북극 해빙은 태양 복사열을 반사하는 지구의 거대한 냉각 시스템 구실을 하며, 이것이 사라지면 온난화가 더욱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선박 운항과 주변 지역의 인간활동이 늘어날수록 검댕(블랙카본) 침착, 선박 배출가스 증가로 인해 해빙은 더 줄어들고, 생태계 교란 역시 불가피하게 초래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북극항로 개발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북극항로는 결국 열릴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개발 여부’가 아니라 ‘개발 방식’이다. 기후위기 대응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중국은 재생에너지 시장을 주도하면서도 석탄화력 기반 생산을 지속하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집권 이후 화석연료 생산과 소비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이런 모순적인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은 한국만의 흔들리지 않는 기후위기 대응 방식을 찾아야 한다.
북극항로 개발 자체가 탄소중립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친환경 선박 기술, 검댕 저감 기술, 탄소중립 항만 운영, 수소연료전지 선박 개발 등으로 설계된다면 오히려 기후 리더십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독특한 장점을 갖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과 엘엔지(LNG) 운반선 기술력, 그리고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바탕으로 친환경 북극 항해의 선도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은 인공지능(AI) 기반 해빙 예측 시스템, 스마트 항만 기술, 극지 환경 모니터링 기술 등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을 북극항로 개발에 접목한다면 단순한 항로 확보를 넘어 지속가능한 북극 이용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실용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 아래 북극에서 우리가 보여줄 모습은 한국의 기후외교 역량과 기후위기 대응 진정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탄소중립 2050을 향한 여정은 보다 전략적 유연성을 겸비한 역동적 과정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도 글로벌 기후위기 어젠다에 끌려다니기보다는 우리에게 맞게 재해석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고유한 길들을 모색해야 할 때다. 북극항로 개발을 둘러싼 이 시대적 고민이 바로 그러한 전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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