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자기 집을 경품으로 내놓고 온라인 추첨을 한다고?

조선일보 김성모 기자
원문보기

자기 집을 경품으로 내놓고 온라인 추첨을 한다고?

서울흐림 / 29.4 °
[WEEKLY BIZ] [Trend Now] 경품 이벤트 열어 응모자 모집한 뒤 당첨자에게 집을 주는 구조
영국의 온라인 경품 플랫폼 '래플'에 올라온 부동산 경품 중 하나. 5파운드를 내면 태국 해변가에 위치한 풀옵션 빌라를 내건 경품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래플 홈페이지 캡처

영국의 온라인 경품 플랫폼 '래플'에 올라온 부동산 경품 중 하나. 5파운드를 내면 태국 해변가에 위치한 풀옵션 빌라를 내건 경품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래플 홈페이지 캡처


만약 단돈 1만원으로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경품으로 받을 수 있는 추첨에 응모할 수 있는 티켓이 팔린다면 어떨까. 한국에선 이 같은 일이 아직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일부 해외 국가에선 개개인이 자신의 집을 온라인 경품 사이트에 올린 뒤 경품 이벤트 참여 희망자에게 참여비 명목으로 유료 티켓을 파는 일이 신종 부동산 거래의 한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일정 수의 참여자가 모이면, 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에게 자신의 집을 경품으로 주는 구조다.

실제로 영국의 온라인 경품 플랫폼 래플(Raffall)에선 현재 16건의 부동산 경품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 그중 하나는 태국 코사무이 해변가에 위치한 풀옵션 럭셔리 빌라. 방 세 개에 수영장까지 딸린 이 빌라의 시세는 약 50만파운드(약 9억3000만원)인데, 이 경품 사이트에선 단 5파운드(약 9000원)짜리 경품 이벤트 티켓으로 이 집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영국 매체들은 “단돈 몇 파운드짜리 경품 티켓이 ‘꿈의 집’ 주인이 되는 열쇠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파는 사람까지 윈윈

경품 이벤트 당첨은 수십만 분의 일 확률을 뚫은 당첨자에게도 행운이지만, 집을 파는 사람 입장에서도 ‘대박’일 수 있다. 판매된 티켓 수만큼 수익이 올라가는 구조여서 전통적인 부동산 거래보다 더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북서부 항구 도시 슬라이고 인근의 별장을 유료 경품 방식으로 판매한 이멜다 콜린스씨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일반적인 부동산 시장을 통해 집을 파는 것보다 유료 경품 이벤트로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콜린스씨는 약 7000㎡(2100평) 규모의 부지에 지은 전원 별장을 매각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래플에 매물을 등록했다. 티켓 한 장 가격은 5파운드(약 9000원)였으며, 약 7개월 동안 최소 15만장이 판매되면 추첨을 통해 당첨자에게 해당 부동산을 양도하는 조건이었다. 지난달 22일 마감된 이 경품 이벤트는 참여자 목표치를 무난히 달성하며 종료됐고, 미국 시카고 출신의 캐슬린 스팽글러씨가 새 집주인이 됐다. 영국 언론들은 콜린스씨가 이 이벤트를 통해 최소 75만파운드(약 14억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했다. 콜린스씨가 NYT에 밝힌 집값이 대략 30만유로(약 4억7000만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티켓 판매만으로 기존 집값의 세 배 가까운 수익을 낸 셈이다. 물론 마케팅 비용과 제휴 수수료, 세금 등 부대 비용도 적잖았다. 콜린스씨는 “전문 마케터와 사진작가를 고용했고, 래플 플랫폼 수수료도 지급해야 했다”며 “이익 중 일부는 아일랜드의 양도소득세를 내고, 동물학대방지협회에 기부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유료 경품 이벤트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티켓 판매 수가 사전에 정한 목표치에 미달할 경우, 추첨을 해도 집을 넘기지 않을 수 있다. 콜린스씨의 사례에서도 만약 15만장을 넘기지 못했다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당첨자에게 전체 티켓 판매 수익의 50%를 지급하고, 10%는 래플에 플랫폼 수수료를 낸 뒤 나머지 40%와 집은 자신이 그대로 보유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집을 당첨자에게 넘기되, 대신 더 많은 티켓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를 선택할 수 있다. 현재까지 래플 플랫폼을 통해 실제로 부동산 소유권이 이전된 사례는 총 18건이다. 다만 래플 외에도 오메이즈(Omaze), 래플하우스(Raffle House) 등 유사한 유료 경품 플랫폼이 다수 운영 중이어서, ‘경품형 부동산 거래’가 하나의 대체 거래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기 논란 등 부작용도

그러나 유료 경품 티켓을 통한 부동산 매각 방식에는 부작용도 적잖다. “집의 위치가 공개된 데다 우리가 그 집에 실제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찾아오거나 위협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영국 랭커셔 지역에서 방 다섯 개짜리 40만파운드 상당의 주택을 유료 경품 방식으로 판매했던 제니퍼 매튜스씨는 당시 상황을 지역 언론인 ‘랭커셔 포스트(Lancashire Post)’ 등에 이렇게 설명했다.


매튜스씨는 4년 전 자신의 집을 경품 티켓 한 장당 2파운드에 총 45만2000장을 판매하며 큰 흥행을 기록했다. 그러나 당첨되지 않은 일부 참가자들이 온라인에서 해당 이벤트를 “사기 이벤트”라고 주장하며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판매를 마무리하는 데만 법률 비용으로 약 11만파운드를 들여야 했다.

한국에선 이런 경품 추첨식 부동산 거래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경찰청, 국토교통부, 법제처 등 관련 부처·기관들은 한국에서도 해당 거래가 가능한지 묻자 모두 “답변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신 글로벌 경제 트렌드를 담은 WEEKLY BIZ 뉴스레터로 당신의 시야를 넓히세요.

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

[김성모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