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장편 ‘치유의 빛’ 펴낸
소설가 강화길 인터뷰
소설가 강화길 인터뷰
강화길(39) 소설은 가혹하다. 특히 여성에게 그렇다. 그런데 세상은 더하다. 이 때문에 독자는 소설에서 어른거리는 ‘폭력의 실루엣’을 조건반사로 직감한다. 그가 그린 ‘고통의 세밀화’가 피부에 와 닿듯 생생해 몸서리칠 때도 있다. 이상한 소문과 지독한 집착, 히스테리가 폭죽처럼 사방에서 터진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스릴러 장르에 녹여내는 서스펜스의 조율사. 그는 ‘한국형 여성 고딕 스릴러’라는 독특한 장르를 일군다. 2012년 등단 이후 일관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박완서 키드’를 자처하는 그는 한국 여성 소설의 계보를 잇는 작가다. ‘대불호텔의 유령’ 이후 4년 만에 장편 ‘치유의 빛’(은행나무)을 펴낸 그를 서울 연희동에서 만났다.
‘치유의 빛’은 ‘몸’과 ‘통증’에 관한 이야기다. 사춘기 시절 갑작스레 살이 찐 지수는 자신을 “언제 어디서든 눈에 띄는 거대한 덩치. 덩어리”라고 느낀다. 성인이 된 지수는 사춘기 시절 트라우마로 극단적 거식과 폭식에 시달리고, 날개뼈 아래의 통증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일을 관두고 고향 ‘안진’에 내려온 지수는 사이비 종교 단체를 연상케 하는 치유 센터 ‘채수회관’을 찾고, 그곳에서 고통에 관한 ‘최초의 기억’을 더듬는다.
강화길은 자신을 “늦게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여성들 마음의 근원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고, 그게 제 마음의 근원이기도 해요. 모르니까 쓴다고 생각해요.” /고운호 기자 |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스릴러 장르에 녹여내는 서스펜스의 조율사. 그는 ‘한국형 여성 고딕 스릴러’라는 독특한 장르를 일군다. 2012년 등단 이후 일관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박완서 키드’를 자처하는 그는 한국 여성 소설의 계보를 잇는 작가다. ‘대불호텔의 유령’ 이후 4년 만에 장편 ‘치유의 빛’(은행나무)을 펴낸 그를 서울 연희동에서 만났다.
‘치유의 빛’은 ‘몸’과 ‘통증’에 관한 이야기다. 사춘기 시절 갑작스레 살이 찐 지수는 자신을 “언제 어디서든 눈에 띄는 거대한 덩치. 덩어리”라고 느낀다. 성인이 된 지수는 사춘기 시절 트라우마로 극단적 거식과 폭식에 시달리고, 날개뼈 아래의 통증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일을 관두고 고향 ‘안진’에 내려온 지수는 사이비 종교 단체를 연상케 하는 치유 센터 ‘채수회관’을 찾고, 그곳에서 고통에 관한 ‘최초의 기억’을 더듬는다.
집필 기간은 넓게 잡으면 8년. 소설가는 “보통 (책이 나왔을) 때보다 조금 더 기쁘고 신난 상태”라며 웃었다. 2018년 문학 잡지에 연재한 글을 재작년 겨울 이후 새로 쓰다시피 했다. 그는 “몸이 아파서 쉬는 동안 소설이 내 안에서 정리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통증을 거쳐 나를 들여다보고, 통증을 유발하게 된 무언가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용서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은행나무 |
‘한국형 여성 고딕 스릴러’라는 영리한 수식은 작가 자신이 만든 것이다.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 고딕적 요소가 있는 소설을 유년 시절 즐겨 읽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어린 시절의 첫 독서 경험이 제 작업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강화길이 정의하는 고딕 소설은 “폐쇄된 공간 안에서 그 공간을 벗어나고자 하는 화자가 있고, 그런 화자의 의지와 맞물리는 악의 세력–초자연적이거나 연인·친족 같은 실존하는 악인–과 저항하는 갈등이 있는 것”. 흔히 중세의 성이나 웅장한 저택 등이 인물을 억압하는 장치로 쓰이는데, ‘치유의 빛’에선 그것이 ‘몸’인 셈.
몸과 통증을 향한 주인공의 극단적 집착에 독자는 ‘왜 이렇게까지?’라며 궁금해할 수 있다. 작가는 “그 질문이 중요하다”고 했다. “고딕 소설의 결말에서는 성이나 저택이 무너지거나 불타는 식으로 이야기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지수는 내 몸을 파괴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지만, 낫기 위해 노력하는 지수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애썼어요.”
서울 연희동 카페에서 만난 소설가 강화길. /고운호 기자 |
강화길은 언제까지 여성의 이야기를 쓸까. 여성 서사를 쓰지 않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물었다. “없어요.” 단호하고 짧은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10년 넘게 여성 서사에 천착한 작가가 보기에 여성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그는 2017년 발표한 ‘다른 사람’ 이야기를 꺼냈다. 데이트 폭력을 다룬 장편소설. 그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영원한 생명을 얻길 바라지만, 진심으로 그 소설이 잊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고 했다. “소설에 드러나는 폭력에 공감하는 여성들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읽힌다는 것이 작가로서는 복잡한 마음이 들어요.”
그의 소설엔 지방 소도시 ‘안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2016년 발표 단편 ‘니꼴라 유치원’을 시작으로 10년째. 편안 안(安)을 쓸 것 같지만, 안진의 여성들은 편안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지독한 아이러니를 담은 말놀이 같다. 강화길은 “‘징하게 쓰는 작가’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다. 징그럽거나 지독하다는 뜻의 방언이다. 그는 안진을 구석구석 거닐며, 징하게 여성들을 살피고 있다.
소설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가상 도시 안진에 대해 소설가는 "내가 느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일종의 오브제"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
☞고딕 스릴러
18~19세기 서양에서 유행한 ‘고딕 소설’을 원류로 한다. 중세 건축물이 주는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핵심.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 등이 고전으로 꼽힌다. 요즘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인간의 이상 심리 상태를 다루는 섬뜩한 소설 등을 가리킬 때도 쓴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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