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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의 함께 신문 읽어요] 대통령도 함께 읽어요

조선일보 조수빈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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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의 함께 신문 읽어요] 대통령도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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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에겐 편지를 쓰고 싶다. 낯부끄러운 말도 또렷이 남길 용기가 생기니까.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김광진의 ‘편지’에 얽힌 일화를 아는가. 전 연인에게 보낸 이별 편지가 아니란다. 짝사랑한 여인의 결혼 소식을 듣고, 조용히 두고 간 마음을 글로 썼다. 뭉근하게 전하던 순수가 우리에게도 존재했다. 편지를 간직하고 있다면 기억은 흐려져도 감정은 살아있다. 편지는 달콤함만 담진 않는다. 서운함, 미운 감정, 상처 될 말도 곱씹다 보면 진심을 안다. 듣기 싫은 말도 정중하게 전하는 미학.

신문이 그랬으면 좋겠다. 입으로 떠들어대 봤자 손바닥 뒤집듯 하는 세상, 종이에 눌러 쓴 문장은 그나마 오래간다. 인쇄된 활자에도 마음은 있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 쌓이고 배달되고, 보관되었다 꺼내 읽어보는, 편지를 열 때의 설렘처럼, 신문도 기다림을 품을 수 있다.

대선이 끝났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장기는 잘 알려져 있다. 공장에서 팔을 다쳐 딱 30분 일찍 퇴근하게 됐는데, 그 짬을 공부에 쏟아 학업을 마치고 고시에 합격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리스크를 피하려고 출마했다, 비판한다. 그러나 지지한 이들은 생존력과 추진력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삶 자체를 절박한 편지로 읽은 사람이 꽤 있다.

낙선했지만, 편지로 마음을 얻은 후보들도 있다. 김문수 후보는 지사 때 민원인 이름을 손으로 적어 답장을 했단다. 이준석 후보는 총선 때 손 편지를 주민들에게 보냈다. 이번 대선 때도 홍보지 봉투엔 손 글씨체를 새겼던데 참 그답다, 생각했다.

편지 같던 약속은 종종 흐트러진다. 소통은 불통이 되고, 언론의 쓴소리는 ‘격노’로 돌아오고. 아주 예전에 청와대 홍보실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뉴스 스크랩’이라 들은 적 있다. 분초를 다투는 대통령이지만, 그렇게라도 민심을 읽으려는 노력이었으리라.

지금은 매체가 너무 많아져 그럴 수 있을까. 다양한 채널이 생기면 더 많은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어떤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자기 확신을 강화한다. 제 발로 알고리즘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익숙하지만 결코 넓지 않은 방. 듣기 좋은 말만 들리는 방. 그래서 절실하다. 끝내 동의하지 못해도, 일단 읽고 듣는 자세. 그것이 리더의 자질 아닐까.


신문도 완전할 순 없지만 책임 없는 말과는 다르다. 생각이 달라도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목소리다. 직언은 어려울 때 더 빛난다. 사랑하니까 충고도 할 수 있다. 신문을 민심의 편지라 보고, 대통령이 읽는다면 어떨까. 신문은 각자의 관점으로 위기를 진단하며 해법을 고민한다.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면, 다른 신문을 교차로 읽어봐도 좋다. 어쩌다 대통령이 신문에 답장을 보낸다면 더 좋겠다. 여러 사람의 소망을 담은 글이 대통령 눈에, 국민 눈에 머무는 상상을 해본다.

문제를 덮는 것은 쉽다. 그러나 사회를 개혁한 힘은 불편한 말들이었다. 단점을 공격하는 사람이 나의 스승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 말을 건넨다. 신문 함께 읽어요. 대통령도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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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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