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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저작권보호원장 "K-콘텐츠 성장, 저작권 보호와 함께"[기고문]

연합뉴스 최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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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저작권보호원장 "K-콘텐츠 성장, 저작권 보호와 함께"[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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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해피엔딩' 토니상 석권 쾌거…국내 창작자들의 생태계는 암울
저작권 침해물에 대한 처벌 수위 높여야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 원장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 원장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우리나라의 창작 뮤지컬 '어쩌다 해피엔딩'이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인 토니상을 석권하면서 또 한번 K-콘텐츠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불법 복제물의 범람으로 국내 창작자들은 창의력과 생계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 원장은 K-콘텐츠가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연합뉴스에 보내왔습니다.]

K-콘텐츠 지속 성장, 저작권 보호와 함께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다 해피엔딩'이 공연계 아카데미상인 토니상을 휩쓸었다. BBC는 "한국이 미국 엔터테인먼트계에서 가장 중요한 4대 상인 에미상, 그래미상, 오스카상, 토니상을 모두 수상했다"고 크게 보도했다. 이 외에도 노벨 문학상, 그라모폰상 수상 등 우리 문화사에 영광의 순간들이 이어지며 감동과 자부심을 주고 있다. K-컬처에 담긴 우리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며 글로벌 소프트파워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K-컬처의 지속 성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K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미국 토니상 작품상 등 6관왕  (서울=연합뉴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한국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ending)이 8일(현지시간) 미국의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상의 뮤지컬 작품상, 극본상, 작사·작곡상, 무대디자인상, 연출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공연. 2025.6.9 [NHN링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K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미국 토니상 작품상 등 6관왕
(서울=연합뉴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한국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ending)이 8일(현지시간) 미국의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상의 뮤지컬 작품상, 극본상, 작사·작곡상, 무대디자인상, 연출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공연. 2025.6.9 [NHN링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외국 OTT 플랫폼이 지난해 국내에서 9천억 가까운 매출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영업이익도 2023년보다 44% 넘게 수직 상승하는 등 독주하고 있는 현상을 보면, 누구를 위한 IP인지 헷갈린다. 막대한 제작비를 지원하는 것도 큰 역할이지만, 작품이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해도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추가 수익이 미미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다. 외국 OTT에 기대지 않고 우리 콘텐츠를 우리 스스로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저작재산권 보호 기간이 70년이다. 독자적인 IP 확보를 통해 창작자들이 제대로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볼 문제도 있다. 지난해 한국저작권보호원이 발간한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콘텐츠 불법복제물 이용률은 (감소세이기는 하나) 여전히 19.1%에 달한다. 이용자들이 불법복제물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료이거나 매우 저렴해서(29.1%)'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경제적 선택'일 수 있으나, 창작자들의 창의력과 생계를 위협하며 문화 생태계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의 높은 문화 수준과 K-컬처의 세계적 인기, 콘텐츠 산업의 눈부신 성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문화를 향유하고 지키는 태도와 저작권 보호에 대한 시민의식은 아직 가꾸어갈 부분이 많다. 진정한 문화강국의 기반은 바로 그 자세에 있다. 이에 보호원은 다양한 저작권 보호 인식 제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K-저작권 지킴이' 캠페인이다. 콘텐츠 소비자, 창작자, 기업이 함께 참여해 직접 저작권 보호 활동을 펼치는 대규모 국민 참여 캠페인으로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올해는태국에서 해외 저작권 지킴이를 새롭게 발족하고, 대학생 저작권 지킴이의 참여를 늘리는 등 규모를 키웠다. 가수 10cm 등 인기 아티스트들도 동참해 캠페인 홍보에 힘을 보탠다. 올해 2회째를 맞는 '대한민국 저작권 보호 대상'도 오는 11월 시상을 앞두고 있다. K-콘텐츠 저작권 보호와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을 찾아 그 헌신에 감사를 표하는 상으로서 의의가 크다.


한국은 2008년까지 미국 무역대표부(USTR) 스페셜 301 보고서의 '지식재산권 감시 대상국'으로 분류됐다. 외적 인기와 경제 논리에만 몰두하고, '저작권 보호'와 그를 통한 '창조성 수호'라는 본질을 경시한다면, 문화 강국의 꿈은 잠시 피어오른 신기루처럼 금방 사라질 수 있다. 저작권 침해 적발과 그에 따른 사후 대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들의 저작권 인식 개선이 가장 중요한 선결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적 흐름에 따른 대응도 중요하다. 보호원은 점점 지능화, 국제화 되는 저작권 침해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AI 등 신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언어별 침해 정보 자동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세계 각국의 언어로 유통되는 불법 K-콘텐츠 침해 정보를 10개 언어권으로 나누어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삭제하는 조치를 수행하고 있으며, 빅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불법 사이트를 적발하고, AI에 기반한 저작권 포렌식 수집 도구 개발에 착수하는 등 저작권 침해 대응 역량을 첨단화 하고있다. 세계적인 K-콘텐츠 저작권 침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해외 행정·수사기관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탓에 '국제 공조 수사 지원 플랫폼'도 개발 중이다. 개발이 완료되면, 인터폴과 문화체육관광부, 보호원 등이 실시간으로 저작권 범죄 증거와 수사 증거를 공유하며 함께 쓰는 수사 인트라넷으로 활용 가치가 높을 것이다. 저작권 보호 시스템과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외국에 전수해 상생하는 방안도 꾸준히 추진 중이다.

또 한 가지, 제도적 관점에서 생각해볼 주제가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과 저작권 침해 범죄의 법정형 상향이다.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 제도는 가해자의 고의·악의적 행위가 드러났을 경우, 실제 입은 피해액을 넘어서는 배상액을 부과해 '범죄예방'과 '억지'를 목적으로 하는 손해배상 방식이다. 현재 미국, 중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6개국이 이미 저작권 침해에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손해배상액의 일정 배수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도입하는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최근 저작권 침해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누누티비' 운영자에게 징역 3년, 범죄수익 7억 원 추징의 1심 판결이 났다. 추정 피해액만 5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불법사이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과 소액의 추징금에 그친 것은 현행 처벌제도의 미흡함을 드러냈다는 것이 법조계와 산업계의 중론(衆論)이다. 관련해 비판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으며,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던 콘텐츠 기업과 창작자 단체들 역시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미국은 3억5천670만 달러(4천830억원)의 손해 배상액을 기록한 판례(Oracle Corp. v. SAP AG)가 유명하며, 손해배상과 별개로 5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U.S. v. Artur Sargsyan)도 많다. 이에 비해 우리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저작권법 제136조 1항)에 처할 수 있으나, 그마저도 기소유예 처분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역으로 그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고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K-컬처의 세계적 인기 속에 한국은 지난해 저작권 무역수지 33억 5천만 달러(약 4조9천억 원) 흑자를 달성했다. 저작권은 이미 국가 경제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다. 문화강국에 걸맞은 제도 보완과 중요한 가치(저작권 보호와 문화 수호)를 훼손하지 말라는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꿈 꾼 "아름다운 문화의 나라"는 이제 '글로벌 소프트파워 5대 강국'으로 도약하고자 한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창조성 등 정신적인 것들에 전 세계가 반응하고 교감한다는 것은 매우 감동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저작권 보호를 위한 다각적인 접근과 노력이 우리 문화의 뿌리를 더욱 튼튼히 하고, K-컬처가 세계 문화의 표준을 다시 쓰는 기반이 되기를 바란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 원장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 원장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 원장

서울대 철학과 졸업, 미국 듀크대 정책학 석사.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국민소통실장·해외문화홍보원장·대변인·미디어정책국장 등 역임. 주미미국대사관 문화원장·주뉴욕총영사관 문화홍보관으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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