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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中企 다니는 20대 여성은 왜 권영국에 투표했나

조선일보 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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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中企 다니는 20대 여성은 왜 권영국에 투표했나

서울맑음 / 32.7 °
권 득표율 1% 미만, ‘이대녀’는 5.9%
영등포·당산 등 원룸촌서 높아
국힘과 민주, 장·중년 자산층 주도
자산 없는 청년 불만 투표로 보여
고마운 분이 사무실 한편을 내주어 일주일에 며칠은 영등포구의 한 지식산업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아파트형 공장이라는 옛 명칭이 무색하게 젊은 여성이 동년배 남성 이상으로 많다. 점심시간이 되면 오래전 공장이 빼곡했던 골목 식당에 해사한 청년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다. 맛있는 밀크티나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며 거리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이 지식산업센터에 입주한 기업은 AI·위성 등 첨단 분야 스타트업, IT 대기업의 계열사는 물론 콘텐츠, 디자인, 전자상거래, 컨설팅 등 지식 서비스 업종이 많다. 이곳에 와보니 ‘산업 도시 서울’을 누가 떠받치고 있는지 잘 알게 됐다.

통계는 20~30대 여성들이 수십 년 전 이곳에 있던 그 또래 여공이 했던 역할을 이어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4월 서울에서 18~34세 고용보험 가입자는 여성이 83만1000명, 남성이 67만9000명이다. 특히 50인 미만 중소기업 근로자는 여성(30만8000명·여성의 37.1%)이 남성(22만1000명·32.5%)보다 꽤 높은 비율로 많다. 비수도권 지역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상경하고, 다수가 중소기업에 다니기 때문이다. 청년층 첫 일자리를 지역별로 쪼개보면 서울(27.0%)의 비율은 경기도(24.4%)를 앞선다(한국고용정보원 청년패널 기준).

하지만 이들이 서울에서 ‘산다’고 말하긴 적잖이 어색하다. 지금은 근처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머무르다,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면 경기도 베드타운으로 이주하는 게 일반적인 궤적이다. 물려받을 재산이 없고, 치솟은 자산 가격을 따라잡기엔 소득이 턱없이 부족하다. 영등포동, 당산1동, 양평동 일대에는 청년이 거주하는 원룸과 노년이 머무르는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함께 있다. 문래동, 신길 3~5·7동 같은 아파트 밀집지의 주류가 40~50대인 것과 사뭇 다르다. 영등포구의 복도식 아파트도 지식산업센터에서 일하는 20~30대의 소득으론 언감생심이다.

이번 대선에서 상당수의 젊은 유권자가 4번이나 5번을 찍은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60~70년대생과 40~50년대생 고자산 계층이 주도하는 정당이 됐기 때문이다.

20대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2024년 총선 대비 0.1%포인트(지상파 3사 출구조사 기준) 느는 데 그쳤다. 대신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5.9%가 표를 던졌다. 권 후보(0.98%)가 1992년 백기완 민중당 후보(1.00%)의 득표율에 못 미칠 정도로 참패했다는 걸 감안하면, 젊은 여성의 표심은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을 의미할 것이다.

영등포구에서 권 후보가 득표를 많이 한 곳은 한결같이 앞서 거론한 원룸·오피스텔 밀집지다. 서울 전체를 봐도 대학가나 성산동 같은 진보 강세 지역을 제외하면 1인 가구 집중 거주지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역시 명문대 바로 앞 지역을 빼면 가산동(금천구), 독산1동(금천구), 영등포동같이 청년 남성 노동자가 많은 지역에서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평창동, 압구정동, 한남동 같은 부유층 거주 지역에서는 도리어 민주당 초강세 지역 수준으로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2017년 대선에서 개혁 보수를 표방했던 유승민 후보가 해당 지역에서 득표율이 높았던 것과 확연히 다르다.

20대의 투표 행태는 성별, 계층, 학력을 떠나 불만이 팽배해 있음을 드러낸다. 특히 이름 없는 기업에서 일하며 주소지만 서울일 뿐, 실상은 서울에 고용된 존재로 살아가는 다수의 청년들까지 정치적 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다. 몇몇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 연금·젠더 같은 의제에 매몰된 결과로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기존 정당이 현상 유지에 급급한다면, 다음번 선거에서 90~00년생들이 만들어낼 정치적 충격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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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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