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패배 후 日 총리
“전 국민 총 참회를” 물 타기
얼핏 보면 겸허한 반성 같지만
모두의 책임, 아무의 책임도 아냐
지금 국민의힘 분위기가 그 꼴
영남 의원들, 의총 분위기 주도
“잘잘못 떠나 일단 똘똘 단결” 설파
그렇게 물 타며 여기까지 왔다
“전 국민 총 참회를” 물 타기
얼핏 보면 겸허한 반성 같지만
모두의 책임, 아무의 책임도 아냐
지금 국민의힘 분위기가 그 꼴
영남 의원들, 의총 분위기 주도
“잘잘못 떠나 일단 똘똘 단결” 설파
그렇게 물 타며 여기까지 왔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무조건 항복한 직후 히가시쿠니 나루히코라는 인물이 총리 자리에 올랐다. 구 일본 육사와 육군 대학을 졸업하고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육군 대장 출신이지만 고위 황족이라 ‘패전 처리’ 내각의 수장이 된 것이다.
당시 일본은 맥아더 사령부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내각의 실권이 없었고 히가시쿠니 본인도 미 군정 당국과 잦은 갈등을 빚다가 54일 만에 물러나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히가시쿠니는 일본 천황과 군국주의 세력에 ‘일억 총참회론’이라는 탈출구를 제공했다.
히가시쿠니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군국주의와 침략 전쟁 자체에 대한 반성 대신 패전의 원인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군관민 전체가 철저히 반성하고 참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전 국민이 총참회하는 것이 우리나라 재건의 첫걸음이며, 국내 단결의 첫걸음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후 제국의회는 물론 여러 지식인이 나서 군벌 관료가 지도한 전쟁이지만 정계, 재계, 지식인, 일반 국민을 막론하고 책임을 면할 수 없으니 다들 조용히 과거의 행위를 반성하고, 깊이 자숙하며 신일본 건설에 매진하자고 힘을 보탰다.
당시 일본은 맥아더 사령부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내각의 실권이 없었고 히가시쿠니 본인도 미 군정 당국과 잦은 갈등을 빚다가 54일 만에 물러나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히가시쿠니는 일본 천황과 군국주의 세력에 ‘일억 총참회론’이라는 탈출구를 제공했다.
히가시쿠니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군국주의와 침략 전쟁 자체에 대한 반성 대신 패전의 원인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군관민 전체가 철저히 반성하고 참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전 국민이 총참회하는 것이 우리나라 재건의 첫걸음이며, 국내 단결의 첫걸음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후 제국의회는 물론 여러 지식인이 나서 군벌 관료가 지도한 전쟁이지만 정계, 재계, 지식인, 일반 국민을 막론하고 책임을 면할 수 없으니 다들 조용히 과거의 행위를 반성하고, 깊이 자숙하며 신일본 건설에 매진하자고 힘을 보탰다.
얼핏 보면 ’미망에 빠져 참혹한 전쟁을 일으키고 나라를 망친 현실 앞에서 모두가 반성하자‘는 겸허한 참회론 같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 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닌 것이 된다.
’일억 총참회론‘ 열풍이 분 이후 히로히토 천황은 이른바 ’인간 선언‘으로 불리는 연두 조서에서 “오랜 기간에 걸친 전쟁이 패배로 끝난 결과, 우리 국민은 자칫 초조함으로 흘러, 실의의 심연에 침륜(沈淪)되려는 경향이 있다. 궤격(詭激)한 풍조가 점차 거세져 도의를 지키는 마음이 몹시 쇠퇴하고, 그로 인해 사상 혼란의 징조가 있음은 참으로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책과 반성 대신, 전쟁의 원인에 대한 언급 없이 패전 이후 사회 혼란상을 우려하며 국민들을 훈계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도쿄 전범재판에 피고인으로 나온 일본의 군인·정치가들 대다수는 자신에게는 결정권이 없거나 전쟁으로 치닫는 분위기를 거스르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일본 정치학의 태두로 불리는 마루야마 마사오는 천황부터 군국주의자, 군부 지도자까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국민들과 ’평등하게‘ 짐을 나눈 이런 행태를 ‘무책임의 체계’라고 규정했다. 모두가 가해자가 되면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법이다.
오래전 일본 이야기를 장황하게 꺼낸 이유는 지금 국민의힘 분위기가 딱 그렇기 때문이다.
“선거 패배와 보수의 몰락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패배 이후 다 힘든데 네 탓 내 탓을 할 일이 아니다“ ”나도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분위기를 거스를 수 없었다“ ”똘똘 뭉쳤으면 이길 수도 있었는데 내부 총질 때문에 졌다”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져봤자 소용없다. 이재명 정부 앞에서 지금이라도 우리끼리 똘똘 뭉쳐야 한다”
이런 주장들은 국민의힘 판 ‘일억 총참회론’이다. 히로히토 천황의 고모부이자 육군 대장으로 군국주의와 패전을 책임져야 할 집단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히가시쿠니 나루히코가 나서서 자신들의 책임을 물 타기 한 것처럼 국민의힘에서도 친윤 중진들이 나섰다.
국민의힘에 작동되는 이런 ‘무책임의 체계’는 실은 꽤나 체계적이다. 의원총회에서 영남권중진 의원들이 초장부터 분위기를 잡고 “잘잘못을 떠나 일단 똘똘 단결”론을 설파한다.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반론이 일부 나오지만 수적 열세 혹은 “지금 당장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일, 모레, 1년 후에 국민은 또 달라진다”는 훈계에 가로막힌다. 그러다 이야기가 잦아들면 표결로 당론을 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거수 표결로 결정.
윤석열 탄핵 반대 당론, 김건희 특검 반대 당론, 채 상병 특검 반대 당론이 다 이렇게 정해졌다. 김문수를 끌어내리고 한덕수를 올리는 후보 재선출 절차를 비대위에 위임한 것도 의원총회다. 이처럼 국민의힘에선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있는 곳이 의원총회다. 당원 63% 지지로 선출된 대표도, 힘든 경선을 뚫고 뽑혀 당무 우선권을 가진 대선 후보도, 구원투수로 올라온 비대위원장도 의총과 당론 앞에선 힘을 못 쓴다.
하지만 의총과 당론은 사람이 아니니 책임을 질 수 없다. 일이 잘못되면 당론 결정에 참여한 의원들이 공평하게 N분의 1씩 책임을 지면 된다. 이번 주에도 국민의힘은 의총을 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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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 정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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