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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으로 돌아갈래” 버스 훔쳐 北 가려던 탈북민, ‘징역형 집유’

조선일보 고양=김수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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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으로 돌아갈래” 버스 훔쳐 北 가려던 탈북민, ‘징역형 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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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뉴스1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뉴스1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버스를 훔쳐 경기 파주 통일대교를 건너려던 30대 탈북민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희수)는 국가보안법위반(잠입·탈출)미수,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절도, 도로교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작년 10월 1일 오전 0시 45분쯤 경기 파주 문산읍의 한 버스 차고지에서 마을버스를 훔쳤다. 당시 버스 문은 열려 있었고 내부에 키가 놓여 있었다. A씨는 임진강을 횡단하는 통일대교를 건너 북한으로 넘어가겠다고 마음먹고, 훔친 버스를 몰고 통일대교를 향했다. 10분 후 통일대교 남단 검문소에 다다른 A씨는 하행 방향 바리케이드가 적게 설치돼 있는 것을 보고, 역주행했다. 당시 초소를 지키던 군부대 초병이 정지 신호를 했지만, A씨는 이를 무시한 채 초소에 있는 차량 차단용 바리케이드를 그대로 들이받은 후 북쪽으로 약 900m를 달렸다. 그러나 북단을 지키던 초소병들이 A씨가 몰던 버스에 총을 겨누며 제지했고, A씨는 결국 버스를 멈춰 세웠다. 이 과정에서 다친 사람은 없었다. A씨는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A씨는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서 태어나, 지난 2011년 11월 탈북했다고 한다. 그는 대한민국 영화 등을 시청했다는 이유로 북한 내 고향 주거지에서 추방 명령을 받았다. 그는 탈북 당시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도착했고,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 달 만인 같은 해 12월 한국에 입국했다.

A씨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립감, 건강 악화,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겪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북한에 거주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월북하기로 마음먹고 이같이 범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의 월북 계획은 2023년 7월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견학하던 주한 미군 소속 트래비스 킹 육군 이등병이 월북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A씨는 이 뉴스를 접하고, ‘판문점을 넘어 월북해야겠다’고 계획한 후 PC방에서 구글 어스 위성지도로 판문점의 위치를 검색하기도 했다.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에서 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에서 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A씨는 작년 9월 자신이 살고 있던 서울 관악구의 한 고시원에서 월세 미납을 이유로 퇴거를 요구받자, 곧바로 범행을 마음먹었다고 한다.


A씨는 월북 시도 전 주민센터에 방문해 담당 공무원에게 긴급 생계비 지원을 문의하면서 “나는 남한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북한에서 사는 것이 남한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고,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담당 공무원이 “북한으로 돌아가면 탈북에 대해 처벌받지 않겠느냐”라고 하자 “방법이 있다. 북한에 돌아갈 때 중국이나 다른 나라를 통해서 몰래 들어가면 안 되고, 언론에 노출되는 형태로 가면 된다” “차량을 탈취해서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가면 매스컴을 탈 것이고, 북한에서 남한 체제를 비판하면 나를 용서해 주고 다시 북한에서 살게 해 줄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북한에서는 하루 이상 굶어본 적이 없는데, 남한에서는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는 제 모습을 보니 돈이 없으면 죽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건강 악화와 경제적 어려움, 대한민국 사회에서 고립과 부적응, 북한에 거주하는 부모님과 남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며 “대한민국의 정치 체제에 대한 적대감이나 반국가단체로서의 북한을 찬양하거나 동조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이 사건 범행을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대한민국의 일반 국민이 보기에는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이 사건의 동기나 경위에서 드러나는 사정은 피고인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고 대한민국 사회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이 처한 현실을 일부 보여주는 것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로 이해된다”고 밝혔다.

[고양=김수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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