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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꼰대 운동권’의 선민의식

조선일보 김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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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꼰대 운동권’의 선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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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8일 유튜브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아내 설난영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튜브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8일 유튜브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아내 설난영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튜브


지난 28일 공개된 김어준씨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유시민씨는 이준석(개혁신당)·김문수(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차례로 비판했다. 친민주당 성향인 유씨 이야기라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김 후보 평가에 앞서 그의 아내인 설난영씨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에서 귀를 의심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 배우자는 설씨 인생에선 갈 수 없는 자리”라고 했다.

이날 유씨 발언을 요약하면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이었던 설난영이 학출(學出·대학생 출신) 김문수와 혼인하면서 스스로 고양됐다고 느끼고, 이후 국회의원·경기지사 사모님이 되면서 발이 공중에 떠 있어 제정신이 아니다’란 얘기였다. 고졸 노조위원장인 설씨가 만나기 어려운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 김 후보와 부부 연을 맺은 덕분에 신분 상승을 이뤘고 그 바람에 분수를 모르는 것 같다는 취지로 들렸다.

유씨는 1978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운동권 출신이다. 그는 ‘특권 없는 세상’을 내걸고 대통령이 된 상고 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 장관을 했고 ‘노무현의 후계자’란 말까지 들었다. 여상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의 아내 권양숙 여사도 유씨를 아꼈다. 그런 유씨가 김문수·설난영 결혼을 두고 “‘학출’ 노동자가 ‘찐노동자’하고 혼인한 것”이라고 했을 땐 말문이 막혔다.

유씨의 이름을 세상에 처음 알린 계기는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이었다. 이는 1984년 서울대 학생들이 교내에 있던 방송통신대생, 공무원 시험 준비생, 재수생 등을 정보기관 정보원으로 몰아 감금하고 폭행·고문한 사건이다. 서울대생을 부러워하던 피해자들은 정신 분열이나 대인기피증과 같은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 사건을 두고 유씨 내면에 선민의식 같은 게 자리 잡은 것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과거 유씨는 한 인터뷰에서 “왜 노무현을 평가해주지 않는가.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학벌·엘리트주의에 저항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유씨가 권양숙 여사에 대해서도 ‘인생에서 갈 수 없는 자리에 올랐다’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설씨에 대한 유씨의 평가를 듣고 나니 ‘꼰대’가 된 운동권 출신의 선민의식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김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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