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2명, 워싱턴서 피살… 용의자 “팔레스타인 해방” 외쳐

용의자, 시카고 거주 30세 남성
정확한 범행 동기는 파악 안돼
숨진 피해자는 약혼 앞둔 커플
유대인 행사 마치고 나오다 참변

21일 미국 워싱턴 한복판에서 주미 이스라엘대사관 직원 2명이 피살됐다. 사건 현장에 한 남성이 이스라엘 국기를 감싼 채 앉아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2명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 한복판에서 총격으로 숨졌다. 용의자는 30대 남성으로 체포 당시 “팔레스타인 해방”이라고 외쳤다.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완전한 해체를 목표로 대규모 지상작전 ‘기드온의 전차’를 수행하는 와중에 벌어졌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외교관을 겨냥한 범죄에 유대계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과 이스라엘 당국은 이번 사건을 ‘반유대주의적 테러’로 규정했다.

미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소속 직원 2명은 이날 오후 9시쯤 워싱턴 소재 ‘수도 유대인 박물관’에서 행사를 마치고 나오다 총격에 사망했다. 숨진 피해자들은 약혼을 앞둔 커플로 당시 동료들과 미국 유대인위원회(AJC)가 주최한 청년 전문가-외교관 대상 리셉션을 마치고 귀가 중이었다.

예히엘 레이터 주미 이스라엘 대사는 “피해 남성은 이번 주 예루살렘에서 여자친구에게 청혼하려고 반지를 구입했다”며 “아름다운 커플이었다”고 CNN에 전했다. 워싱턴 중심부에 위치한 박물관은 연방수사국(FBI) 사무소 및 검찰청과도 가깝다. 백악관에서도 불과 2㎞ 떨어져 있다.

"30세 용의자 단독 범행'... 증오범죄로 다뤄질 듯

용의자는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의 엘리아스 로드리게스(30)다. 범행 직전 박물관 인근을 배회했으며 피해자들이 포함된 일행에게 접근한 뒤 총을 겨눴다. 그는 총격 직후 박물관으로 들어간 뒤 보안요원에게 뛰어가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경찰이 도착하자 "내가 가자지구를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실토했다. 파멜라 스미스 워싱턴 메트로폴리탄 경찰청장은 브리핑에서 “이번 사건은 단독 범행으로 용의자는 체포된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워싱턴 경찰과 FBI 합동 조사를 받고 있다.

용의자의 정확한 신분과 범행 동기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수사 당국은 그가 체포 당시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Free Palestine)”라고 반복적으로 외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병력 10만 명을 투입한 ‘기드온의 전차’ 작전을 개시한 지난 16일 이후, 가자 주민 수백 명이 숨지면서 이스라엘을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고조되던 시점이기 때문이다. FBI는 이번 사건이 증오범죄로 다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 "반유대주의, 끔찍한 결과 목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1일 예루살렘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재점령을 목표로 최근 시작한 '기드온의 전차' 작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이 작전이 끝나면 가자지구의 모든 지역이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루살렘=AP 뉴시스

이스라엘은 사건 발생 후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반유대주의의 끔찍한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며 “전 세계 이스라엘 공관에 보안 조치를 강화하고 직원들에 대한 경호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니 다논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본인의 엑스(X)와 CNN 인터뷰에서 “외교관들과 유대인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행위가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공격일 뿐만 아니라 미국 자체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미 당국은 엄정한 대처를 강조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비겁하고 반유대적인 행위”라며 “책임자를 추적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자정을 넘겨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끔찍한 워싱턴 살인사건은 반유대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이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 증오와 극단주의가 미국에서 자리 잡을 곳은 없다"고 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