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왼쪽 맨 앞),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오른쪽 앞에서 세번째)) 등이 영국과 EU 간의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과 유럽의 안보동맹이 약화하는 상황에서 영국과 유럽연합(EU)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5년 만에 관계재설정에 합의했다.
19일(현지시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런던에서 정상회담을 열어 이같이 합의했다.
합의안은 방위·안보 협력, 러시아의 위협 등 지정학적 도전에 맞선 협력, 다양한 현안에 대한 공동의 이해 등 3가지로 구성됐다.
방위·안보 협력에는 EU가 추진하는 1500억유로(약 235조원) 규모의 ‘재무장 계획’에 영국이 동참할 길을 신속히 모색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양측은 또 군사정보 공유, 해상·우주 안보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양측은 또 경제·무역 측면에서 내년 만료되는 어업 협정을 2038년까지 연장해 상대방 수역 내에서 조업할 권리를 12년 더 유지하기로 하고 농축수산 수출품에 대한 검역을 완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EU 어민이 영국 수역에서 조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영국은 EU 어민의 영국 수역 조업권을 장기간 연장하는 것을 꺼려 4년 연장을 원했지만, 농산물 검역 완화와 에너지 협력을 위해 양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BBC는 “영국 정부는 이번 결정이 어업인들의 분노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면서도, 영국이 잡은 생선을 EU 시장에 판매하는 것이 더 쉬워질 것이라는 논리로 어민들을 설득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U는 여전히 영국의 최대 교역 상대지만,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EU 수출은 21% 감소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합의로 영국에 2040년까지 90억파운드(16조7000억원) 가까운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또 영국 학생과 EU 학생의 교육 교류 및 청년 이동 활성화를 위해 향후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내용을 합의안에 담았다. 이민과 관련해선 양측이 불법·탈법적인 영국해협 횡단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출신국·경유국과 협력할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언급이 초안에 포함됐다.
영국과 EU의 이번 합의는 지난 1월 트럼프 정부 출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유럽을 둘러싼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7월 영국 총선에서 EU에 더 우호적인 노동당이 보수당의 14년 집권을 끝낸 것도 이번 합의를 가능하게 한 배경이다.
BBC는 “대서양의 안보 규범이 뒤흔들린 상황에서 핵무기 보유국 영국과의 국방 협력 강화는 EU에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양측의 패키지 합의는 향후 이어질 협상에서 EU 학생들의 영국 명문대 진학 등 그간 EU가 고민해 온 다른 문제를 다룰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타머 총리는 “이제 앞을 바라볼 때다. 오랜 논쟁과 정쟁에서 벗어나 상식과 실용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이번 합의가 영국 경제 성장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우리는 한 페이지를 넘겨 새로운 장을 열고 있기에 엄청난 날”이라며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는 시기라 중요하다. 우리는 생각이 비슷하고 가치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영국 제1야당 보수당과 극우 성향 영국개혁당 등 야권은 이번 합의에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노동당 정부의 관계 재설정 시도가 EU에 항복하는 것이자 브렉시트를 지지한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해왔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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