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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했다, 트럼프 중동 순방 ‘신스틸러’ 된 카타르

조선일보 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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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했다, 트럼프 중동 순방 ‘신스틸러’ 된 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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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외교·안보 핵심 파트너로
2기 취임 이후 첫 중동 순방으로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 등 3국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카타르에 도착해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의 환대를 받으며 함께 활주로를 걸어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2기 취임 이후 첫 중동 순방으로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 등 3국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카타르에 도착해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의 환대를 받으며 함께 활주로를 걸어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첫 공식 순방이었던 중동 3국 방문이 15일로 마무리됐다.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의 세 나라는 모두 화려한 의전으로 미 대통령을 맞고 통 큰 투자를 약속해 트럼프와 우호적 관계를 다지고자 했다. 그중 이번 방문에서 단연 돋보인 나라는 3국 중 가장 작은 카타르였다는 평가가 많다. 트럼프 출국 전부터 4억달러(약 5610억원)짜리 보잉 747-8 항공기를 미국에 선물하기로 해 ‘신 스틸러(scene stealer·한순간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가 됐고 15일 정상회담 직후엔 보잉 항공기 210대를 포함해 미국과 2435억달러(약 340조원) 투자·구매 계약을 체결해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래픽=송윤혜

그래픽=송윤혜


카타르는 국토 면적이 한국 경기도 정도이고 인구는 약 310만명인 작은 나라다. 그나마 인구 상당수가 외국인 노동자로 ‘진짜 카타르 사람’은 30만명에 불과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중동의 두 대국 사이에 껴 있어 국가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끝없이 시달려온 카타르는 지난 수년에 걸쳐 미국과 적나라하게 밀착한 외교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카타르의 전략은 명확하다. ‘우리에겐 돈이 있고, 이 돈을 (미국과 관계 맺기에) 쏟아부을 용의가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국인 카타르는 20세기 중반 유전·가스전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진주 채집과 어업·무역이 주 수입원인 열악한 나라였다. 원유 값이 급등한 1970년대 오일 쇼크를 계기로 급속도 경제성장을 이뤘다. 원유를 판 돈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만1568달러(약 9964만원·2024년 기준)에 달하고 전체 인구의 약 10% 정도인 시민권자에겐 월 500만원이 넘는 연금과 각종 현금 수당 그리고 무상 주거·의료 등을 제공하는, 그야말로 ‘오일 부국(富國)’이다.

15일 카타르 도하 알우데이드 공군기지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을 들으러 온 미군 병사들을 향해 검지손가락을 앞세우는 특유의 동작을 하고 있다. 뒤로는 미군이 운용하는 군사용 드론과 대형 성조기가 보인다. /로이터 연합뉴스

15일 카타르 도하 알우데이드 공군기지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을 들으러 온 미군 병사들을 향해 검지손가락을 앞세우는 특유의 동작을 하고 있다. 뒤로는 미군이 운용하는 군사용 드론과 대형 성조기가 보인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갑’은 두둑한 나라이지만 대립하는 강대국(이란·사우디) 사이에서 끝없는 지정학적 불안에 시달리던 카타르는 21세기 들어 ‘미국과 밀착’을 핵심 안보 전략으로 삼았다. 15일 트럼프가 찾은 카타르 알우데이드 공군기지는 미군 중앙사령부 본부가 있는 중동 최대 미 군사 거점으로, 양국의 밀접한 안보 협력을 상징한다. 카타르는 80억달러 이상을 들여 기지를 건설한 후 사우디에 있던 미 공군기지를 2003년에 유치했다.

WSJ는 “미군 약 1만명이 주둔 중인 알우데이드 공군기지는 미국이 중동 전역에서 전쟁을 수행하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이 기지는 202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비롯해 이라크·아프간에서 수행된 다년간의 미군 작전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이번 순방 때 이 기지를 찾아 미군의 군용 드론(무인기) 앞에서 연설하면서 6세대 전투기 F-47 개발, 카타르와 420억달러 무기 거래 등을 발표했다. 카타르 정부는 “10년간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에 10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밝혀 ‘중동의 핵심 미군 주둔지’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래픽=송윤혜

그래픽=송윤혜


카타르는 미 정계와 교육계를 대상으로 한 전방위적 로비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때로는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막대한 돈을 미국에 쏟아부어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미 교육부에 따르면 카타르는 현재 해외 국가 중 최대 규모의 자금 지원국으로, 지난 15년간 코넬·조지타운·노스웨스턴대 등에 60억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또 전직 관료, 로비스트, 홍보 대행사를 고용해 자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도 한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로버트 메넨데스 민주당 의원은 카타르에서 고급 시계와 금괴 같은 뇌물을 받고 카타르 기업에 편의를 제공한 혐의로 지난해 기소되기도 했다. WSJ는 이를 두고 “미국 내 정치와 학문, 양 축을 아우르는 영향력 확보 시도”라고 평가했다.


‘돈’으로 다져진 카타르와 트럼프의 밀착은 이미 1기 때 시작됐다. 2017년 카타르는 중동 내 테러 단체를 지원하는 이란과 가깝다는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이집트 등에서 단교(斷交)를 당했다. 당시 트럼프도 “테러 자금 지원국”이라며 카타르 비난에 동조했지만, 카타르가 120억달러 규모 미국 전투기를 대량 구매하고 친트럼프 성향 미 매체에 5000만달러를 투자하는 등 전방위적 로비에 나서자 태도를 뒤집었다. 2021년 트럼프는 이 국가들과 카타르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내용의 ‘알울라 합의’를 중재했고 카타르는 이후 트럼프 일가의 든든한 자금 줄이 됐다.

그래픽=송윤혜

그래픽=송윤혜


실제로 트럼프의 최측근 중에 카타르와 하는 ‘거래’로 도마에 오른 인물은 적지 않다. 2기 법무장관인 팸 본디는 2019~2022년 카타르 정부를 위한 로비스트로 활동해 논란이 됐다. 그가 일한 회사는 카타르 정부에서 매월 11만5000달러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본디는 결국 법무장관으로서, 카타르가 최근 미국에 ‘선물’로 주겠다는 보잉 항공기에 ‘(이해 상충 등) 법적 문제가 없다’고 서명한 책임자가 됐다. 이 밖에 트럼프의 차남 에릭 트럼프는 카타르 국부 펀드와 함께 카타르에서 ‘트럼프 골프 클럽’을 개발하고 있고, 트럼프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의 가족회사는 운영하던 부동산이 위기에 빠졌을 때 카타르에서 거액을 투자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번 트럼프의 순방에서 카타르의 존재감이 유난히 부각된 것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강석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는 “트럼프는 1기(2017~2021년) 때와 마찬가지로 첫 방문지로 사우디를 선택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카타르였다.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전쟁 종식, 이란 핵 협상 등에서 성과를 내고자 하는 트럼프가 볼 때 하마스·이란과 모두 가까운 카타르는 최고 상대”라고 했다. 김 교수는 “사우디·UAE에 비해 약소국인 카타르도 ‘중재자’를 자처하며 영향력을 표출하고 몸값을 키우는 것이 전략적인 선택”이라며 “군사적으로도 카타르는 미군에 안보를 크게 의존하고 있어 양국 간 협력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카타르는 실제로 최근 수년간 ‘중동의 중재국’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족과 헤어진 아동 송환 문제를 중간에서 조정했고, 지난 1월에 이어 지난 13일엔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협상을 중재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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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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