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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국정원 대공수사단장 “간첩단, 3~4년 더 내사했다면 일망타진”

조선일보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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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국정원 대공수사단장 “간첩단, 3~4년 더 내사했다면 일망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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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수사 30년 경력의 하동환 전 국정원 대구지부장은 15일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한 혐의를 받는 석모 전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이 2심서 징역 9년 6월을 선고받은 데 대해 “국정원에 최소한 3~4년의 내사 기간만 주어졌더라면 충분한 범죄 증거를 확보해 간첩단 조직 전체를 일망타진했을 것”이라고 했다.

2023년 1월 국정원이 서울 영등포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던 모습. /뉴스1

2023년 1월 국정원이 서울 영등포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던 모습. /뉴스1


수원고법 형사 2-3부(재판장 박광서)는 이날 오후 간첩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석씨에게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9년 6월을, 전 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김모씨에게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전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 부위원장 양모씨와 전 민노총 산하 모 연맹 조직부장 신모씨 등 전 민노총 간부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석씨에게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했고 김씨에게는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 양씨에게는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었다.

이날 2심 선고가 나온 민노총 간첩단 사건은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유지하고 있을 때 진행한 마지막 간첩 수사였다. 하 전 지부장은 2020년 국정원 대공수사국 수사단장으로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등 ‘3대 간첩단’ 사건에 대한 내사를 지휘했다. 그는 이날 본지에 “2024년부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2023년에 한꺼번에 3대 간첩단 수사를 처리해야 해서 확실한 증거가 수집된 11명만 검찰에 넘긴 것이었다”며 “국정원에 최소 3~4년의 내사 기간만 추가로 주어졌더라면 세 간첩단의 북한 연계 용의자로 내사 대상이었던 약 100명에 대해서도 충분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 전 지부장은 “일반 국민은 북한 대남 간첩 활동의 위험성을 직접적으로 체감하지 못하지만 그 해악성은 결정적인 순간에 국가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며 “잠자다 연탄가스를 마시고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과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석씨는 2018~2022년 5년 동안 북한으로부터 지령문 90건을 전달받았고 북한에 24차례에 걸쳐 대북 보고문을 보냈다. 그는 민노총 간부들만 열람할 수 있는 ‘대외협력실’ 및 ‘정치위원회’ 내부 통신망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통째로 북한에 넘겨 민감한 조직 내부 동향을 북한과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20대 총선 직후에는 국회의원 300명 전원의 인적 사항을 북한에 넘겼다. 하 전 지부장은 “국회의원들을 테러나 포섭 대상이 되는 위험에 노출시킨 것”이라며 “세계 최고 수준의 해킹 기술을 가진 북한이 대한민국 의정 활동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방조한 것으로 노동 환경 개선이 아닌 대한민국의 내밀한 정보들을 북한에 제공한 명백한 간첩 행위”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수원지법 1심 재판부(재판장 고권홍)는 석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가 민노총에 가입하여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조합비를 납부해 온 전체 조합원들이 진정 원하던 것이었나”라며 “노동조합이 활동 과정에서 헌법에서 규정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이라는 반국가단체의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 그 존재 의의를 상실하게 된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민노총 가입 조합원 규모는 108만명에 달한다. 민노총 가입 정규직 노조원은 매달 1450원, 비정규직은 1250원, 최저임금 노동자는 860원을 조합비로 내는데 매년 약 190억원이 민노총 계좌로 입금된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되면서 간첩 수사 자체도 어려워졌지만 간첩 사범들의 고의적인 재판 지연 전술로 재판이 늦어지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하 전 지부장은 “최근 간첩 사범들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재판을 질질 끌며 법원을 골탕 먹이고 있고 국민참여재판 신청도 그 수법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공안 사건은 디지털 증거물 분석 과정 등 일반인이 유·무죄 여부를 파악하기가 대단히 어려워 대공 전문가의 영역이 많다”며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기각하면 피고인 측은 재항고를 해서 재판을 지연시키고 온갖 구실을 대며 재판부 기피 신청까지 하는데 간첩 사건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이므로 최대한 신속히 재판해 범행 전모를 밝혀내야 하는데 그 반대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번 민노총 간첩단 사건에서도 국민참여재판이 신청됐고 변호인단은 국보법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까지 했다. 2021년 9월 기소된 청주 간첩단은 3년 6개월이 지난 올해 3월에야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고 2023년 4월에 기소된 창원 간첩단은 재판부 기피 신청 등으로 인해 아직 정식 재판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하 전 지부장은 “2021년 청주 간첩단과 2023년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구속 피의자들은 재판 끌기를 통해 구속 기간 6개월이 만료돼 정식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모두 석방됐다”며 “공안 사건에 대한 재판 지연은 피고인의 불구속 상태 장기화를 초래해 증거 인멸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재판 결과까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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