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진스키 前국가안보보좌관 전기 북토크
美 외교 거목 키신저와 ‘세기의 라이벌’
30년 전 北·중·러 밀착 내다봐… “놀라운 예측”
美 외교 거목 키신저와 ‘세기의 라이벌’
30년 전 北·중·러 밀착 내다봐… “놀라운 예측”
1977년 1월 21일 지미 카터 대통령 취임 첫 날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오른쪽)에게 보고하는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좌관./백악관 via CNP |
“카터(전 미국 대통령)와 즈비그는 자주 논쟁했고 때론 서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카터가 ‘언제쯤 포기하는 법을 배우겠느냐’고 메모를 보내도 즈비그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물러서지 않았어요. 그러면 대통령이 사과하고 다시 부드러운 태도로 돌아갔죠. 두 사람은 ‘슈프림 코트(Supreme Court·연방대법원)’라고 불렀던 백악관 코트(court)에서 테니스도 많이 쳤습니다. 안보 참모에게 전권을 줄 생각이 없는 오늘날 트럼프와 루비오(현 국무장관)의 관계와는 한참 달랐어요.”
13일 미국 워싱턴 DC 아스펜연구소에서 에드워드 루스(오른쪽)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와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부장관이 대담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
13일 미국 워싱턴 DC 아스펜연구소에서 열린 ‘즈비그(Zbig): 미국 최고의 선지자 브레진스키의 인생’ 출간 기념회에서 저자인 에드워드 루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가 말했다. 이 책은 냉전 종식기 미국 외교를 이끌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1928~2017)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생애를 조명한 전기(傳記)다. 브레진스키는 동시대에 활동한 헨리 키신저(1923~2023) 전 국무장관 등과 함께 미국 외교의 거목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날 1시간에 걸친 대담 사회를 본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부장관은 “올해 나온 외교 정책, 현대 정치 관련 도서 중 가장 중요한 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행사에는 로버트 헌터 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주재 미국 대사 등 카터 정부에서 브레진스키를 보좌한 옛 동료들도 참석했다.
브레진스키는 키신저와 자주 비견된다. 독일 출신 유대인인 키신저가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고 미국으로 건너온 난민 출신이었다면, 브레진스키는 폴란드 외교관의 아들로서 소련과 나치가 조국을 갈라놓는 과정을 지켜봤다. 루스는 “키신저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데 올림픽 선수급이었다면 브레진스키는 바보들을 용납하지 않았다”며 “누군가가 바보라고 생각되면 말[言]로 베어버렸고, 그래서 언론과 이 도시(워싱턴 DC)에 많은 적을 만들었다. 우리가 20~21세기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사상가 중 하나인 그에 대해 더 주목하지 못했던 이유”라고 했다. 실제로 키신저에 대한 책은 넘쳐나지만 브레진스키는 그 명성에 비해 관련 저술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냉전 시대 미국 외교를 이끌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왼쪽)와 헨리 키신저 전 국가안보보좌관. /뉴스1 |
루스는 “그들(브레진스키와 키신저)은 친구이자 적(敵), 경쟁자이면서 백악관 앞 프랑스 레스토랑 ‘상 수시’에서 함께 식사하는 영화적 관계였다”며 “오늘날 워싱턴에서 그런 수다스럽고도 적대적인 우정을 상상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키신저가 먼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 국가안보보좌관(1969년)과 국무장관(1973년)이 됐다. 루스는 “브레진스키는 그때 외국 이름과 억양을 가진 사람이 거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야망을 품게 됐다”며 “문구점에서 공책을 사다가 자신이 국가안보보좌관이 되면 정부에 영입할 사람을 기록했고, 그 목록에 오른 이들 절반을 결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데려갔다”고 했다.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되기 전 교수 시절 브레진스키가 자신이 쓴 모든 글을 언론과 상원 의원실에 보낸 일을 언급하며 “그의 야망과 열정, 집중력은 정말로 놀라운 것”이라고 했다. 2017년 브레진스키가 세상을 뜨자 키신저는 유족에게 쓴 편지에서 “내가 소중히 여긴,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이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1979년 2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앞줄 왼쪽)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미 카터(가운데) 당시 대통령과 헬기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카터의 외교 책사 브레진스키는 이집트·이스라엘의 1978년 평화 협정을 이끌었고 이듬해 미·중 수교에도 기여했다./AP 연합뉴스 |
브레진스키와 카터의 관계도 흥미롭다. 외교·안보에 문외한이었던 조지아 주지사 시절, 카터는 브레진스키가 기업가 데이비드 록펠러와 1973년 설립한 비정부 협의체 ‘삼극위원회’를 통해 ‘속성 과외’를 받았다. “브레진스키의 열렬한 학생”을 자처하는 카터를 향해 브레진스키가 “미국인들은 학생을 뽑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리더를 원한다”고 바로잡았다고 한다. 브레진스키는 퇴임 후에도 이라크 전쟁 등 현안에 목소리를 높이며 거의 모든 대통령을 비판했다. 루스는 “때로는 야유받았던, 외롭지만 용감한 목소리였다”고 했다. 그래도 카터와는 평생의 친구로 남았다.
2014년 7월 9일 브레진스키 전 미국가안보보좌관이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증언하는 모습.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는 2017년 5월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AP 연합뉴스 |
브레진스키는 저서 ‘거대한 체스판’(1997)에서 “잠재적으로 (미국에)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중국·러시아·이란의 거대 동맹이 형성되는 일”이라며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중국이 주도하고 러시아가 추종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 국가들이 밀착하면서 예측은 현실화되고 있다. 루스는 “소련 붕괴 이후 자유·민주 진영이 승리 분위기에 젖어 있던 30년 전에 브레진스키는 이미 러시아·중국·이란·북한 등의 ‘동맹’을 내다봤다”며 “그야말로 놀라운 예측”이라고 했다.
외교·안보 분야 베테랑 기자인 루스는 2017년 5월 브레진스키가 별세하기 직전까지 11년 동안 약 30차례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유족들로부터 브레진스키의 일기장과 편지, 의회 도서관에 보관된 방대한 문서까지 전달받아 저술한 이 책은 참고 문헌 목록만 45쪽이 넘는다. 루스는 “많은 인터뷰를 거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생각했지만 (일기장을 보고) 정말 놀랐다”며 “역사의 초고(草稿)처럼 흥미진진했다”고 했다.
신간 '즈비그(Zbig)' 표지.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폴란드 출신의 미국 정치학자로 외교관 부친을 따라 프랑스·독일·캐나다 등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대를 졸업했고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8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지미 카터 행정부 때인 1977~1981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냉전 시대 미국의 이익을 중시한 현실주의 외교 전략가로, 도덕 외교를 지향했던 카터와 종종 갈등을 빚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 장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미국 외교의 3대 거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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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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