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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윤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연구위원장 |
역대 당선인 가운데 복무 기간 단축 공약을 실천한 이는 한 사람,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복무 기간을 4개월 줄이겠다고 한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고심 끝에 절반만 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18개월 복무를 공약했으나 취임 후 폐기했다. 국가 안보를 최종 책임져야 할 국군 통수권자로서 사안을 냉정히 본 결과다.
복무 기간 단축 논리는 이렇다. 젊은이들에게 경제활동 시간을 더 많이 보장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식이다. 기술 집약형 과학기술군으로 전력을 보강하면 된다는 논리도 편다. 복무 기간이 짧은 징병제 국가들의 사례와 군사 대국 미·중·러의 지상군 대규모 감축을 예로 들기도 한다.
이런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력 단절 기간을 줄여 경제활동 시기를 앞당기는 조치라고 하지만, 기간이 짧아 통계적으로 유의성이 없다는 객관적 평가가 타당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지상군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줄이면서 과학기술군으로 전투력을 보완한다고 했는데 부대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감군에 따른 부대 해체만 있었다. 준비 없이 복무 기간부터 단축한 데다 첨단 무기만 갖추면 ‘정예화’군이 된다는 발상이 낳은 문제다. 강한 군대 육성과는 다른 결과다. 복무 기간 단축은 그만큼 신중함이 필요한 과업이다. 복무 기간 단축은 산악 지역 작전 환경과 함께 전 인민의 무장화에 7년 이상 복무로 전술 전기에 능한 120여 만 북한군과 맞서야 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구 소련의 엘리트 부대 ‘40군’이 아프간 전쟁에서 패퇴하고, 최첨단 과학기술군 미군이 이라크 안정화 작전에서 지상군 병력 부족으로 고전하고 작전에 실패했다는 역사적 교훈을 주목해야 한다.
또 저출생이 심각한 병력 수급 문제를 초래하고 있음을 외면해선 안 된다. 복무 기간 단축에 따른 입영 기준 하향 조정은 병력 자원의 질적 저하로 연결돼 전투력 약화로 이어진다. 나라의 안전을 염려한다면 후보들은 먼저 야전 지휘관들의 현장 목소리부터 귀담아들어야 한다. 복무 기간 단축에 따른 빠른 병력 순환은 숙련병 구성비의 저하와 연결된다. 신병의 기초 전투 기량이나 주특기는 모두 1년이 되어야 숙련 단계에 접어든다. 절반 이상의 고참 선임병이 부대를 구성해야 강한 부대가 된다. 소총병은 신병 훈련 후 몇 주면 전투 준비가 된다는 무지한 주장은 용납할 수 없다. 대부대 기동 훈련 2회는 참여해야 진정한 정예병이 된다는 야전군 전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복무 기간 단축은 신중하게 들여다보고 정교하게 접근할 사안이다. 앞으로 대선에 나설 후보들은 복무 기간 단축으로 표심을 잡겠다는 생각에 앞서, 전투 임무를 수행할 현장 지휘관들 목소리를 경청하는 게 순서다. 출산율 하락에 따른 신병 자원 부족으로 오히려 복무 기간을 늘려야겠다는 후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대선 캠프의 국방 전문가들이 득표에 기여해야 한다는 초조감에 손쉬운 복무 기간 단축안을 내놓는데, 후보가 여기에 넘어가선 안 된다. 전투력을 보장할 자질을 갖춘 신병의 규모와 복무 연한을 연계해 복무 기간을 결정해야 함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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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윤 한국군사과학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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