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성용 전 금호그룹 명예회장 고인 뜻 기려 손열음 추모 음악회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고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금호문화재단 |
올해는 ‘한국의 메디치’로 불렸던 고(故) 박성용(1932~2005) 전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20주기가 되는 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39)이 23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고인을 기리는 특별한 추모 음악회를 연다. 1998년 고인과의 첫 만남에서 연주했던 곡과 2005년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 생전 꼭 들려드리고 싶었던 곡들을 모아서 연주하는 것이다.
박 전 회장은 1977년 설립된 금호문화재단을 통해서 손열음뿐 아니라 피아니스트 김선욱·선우예권, 바이올리니스트 고(故) 권혁주 같은 젊은 음악가 발굴과 육성에 애썼던 후원자다. 그는 “매주 두세 번씩 음악회에 간다” “쇼팽과 모차르트, 바흐에 빠진 음악광”이라고 말할 만큼 소문난 음악 애호가였다. 1993년부터 명품 고악기를 구입해서 젊은 연주자들에게 무상 대여하는 ‘악기 은행’ 제도를 운영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임지영·김봄소리 같은 연주자들이 이 제도를 통해서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서 데뷔한 연주자들도 2000여 명에 이른다.
또 지휘자 로린 마젤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에게 한국 젊은 연주자들을 소개하는 등 헌신적인 예술 후원 활동을 펼쳐서 ‘한국의 메디치’나 ‘한국의 에스테르하지’(하이든을 후원한 헝가리의 귀족 가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98년 예술의전당 이사장,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 초대 이사장, 2003년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까지 문화 후원과 관련된 일은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이 같은 공로로 2004년 독일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받았으며, 2005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2003년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 마젤이 내한하자 손열음과의 만남을 직접 주선했던 건 유명한 일화다. 이듬해 손열음은 뉴욕 필 내한 공연의 협연자로 선정됐다. 손열음은 10일 영상 인터뷰에서 “가까이서 만나 뵌 고인은 언제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퍼주고도 더 줄 것이 없을까 애태웠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생전 박 전 회장은 자신의 집무실에 있던 뵈젠도르퍼 피아노를 손열음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당시 손열음은 리스트의 ‘위로 3번’을 연주했고 박 전 회장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 피아노를 보관하고 있는 손열음은 “그분의 눈물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기억했다.
이번 추모 음악회에서도 손열음은 박 전 회장과 인연이 있는 곡들을 모았다. 처음 만난 날인 1998년 금호영재콘서트 첫 독주회에서 연주했던 차이콥스키의 명상곡,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넉 달 전인 2005년 1월 마지막 음악회에서 연주했던 라벨의 ‘라 발스’ 등을 연주하는 것이다.
이날 음악회 후반에는 박 전 회장 앞에서 연주한 적이 없었던 슈만의 피아노 독주곡인 ‘크라이슬레리아나’를 연주한다. 손열음은 “고인께서 살아계셨다면 가장 들려드리고 싶었던 곡”이라며 “고인께서 세상을 떠난 뒤 지난 20년간 제 성장 과정과 지금의 음악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선곡했다”고 말했다.
손열음은 현재 음악계 선후배들과 ‘고잉 홈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관현악 전곡 연주회를 펼치고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챙기고 배려하는 마음 역시 고인에게 배운 것 같다”고 했다.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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