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미제라블(2012)의 한 장면. 유튜브 채널 고디(@godi119) 갈무리 |
육상효 | 점프컷
“국민은 정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브이 포 벤데타, 2005) 했다. 하지만 2024년 12월3일 이 나라의 정부는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인간은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다”(라이온 킹, 1994)고 했지만, 그날의 정권은 과거를 외면했고, 과거로부터 배운 시민들은 국회로 몰려왔다.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지만, 다음에 일어날 일은 바꿀 수 있다”(내 이름은 조, 1998)고 시민들은 믿었고, “폭력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고, 존엄함을 유지할 때만 진정으로 승리할 수 있다”(그린북, 2018)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시민들은 맨손으로 군인들의 총 앞에 모였다. 동원된 군인들 대부분도 시민을 상대로 싸우지 않았다. “신을 섬기고, 가족을 사랑하고, 조국을 지켜라”(트로이, 2004)라고 트로이의 병사들에게 외치던 헥토르의 말이 왜 군인의 명예인지 그날의 젊은 병사들은 알고 있었다.
계엄은 해제되었지만,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청년 세대도 같이 나왔다. “나가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라. 네 엄마와 나도 노력했다”(허공에의 질주, 1988)는 말을 부모들한테서 들은 듯했다. “불은 번진다, 우리가 타면 같이 불타는 것”(헝거게임: 모킹제이-파트1, 2014)이란 말처럼 뜨거웠다. “의회가 바로 국민이었다. 국민이 선택하고, 국민을 대변해야 하는 의원”(글래디에이터, 2000)들이 탄핵을 의결했다.
헌법재판소 법정에 나온 대통령은 “대통령이 하면 어떤 것도 불법이 아니”(프로스트 VS 닉슨, 2008)라는 말을 반복했다. 질문과 관계없이 자신의 치적에 대한 자랑과 황당한 변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현실과 영화 속에서 같았지만, “난 국민을 실망하게 했고, 나의 친구들을, 나의 조국을, 무엇보다 우리의 정부 시스템을 실망하게 했다. 그리고 그 정부에서 일할 꿈을 가진 수많은 젊은이를 실망하게 했다. 난 평생 그 짐을 안고 가야 한다. 나의 정치적 생명은 끝났다”(〃)고 한 닉슨의 말을 탄핵 법정에 선 한국의 대통령에게 기대할 수는 없었다. “당신은 진실을 원하지 않아. 당신만의 진실을 만들고 있을 뿐”(메멘토, 2000)이라는 말이 그가 법정에서 하는 일을 설명했다.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었다. 현실이 감당하기 어려울수록 사람은 더 왕성하게 자신의 기억을 조작한다. 영화 속 주인공 가이 피어스는 온몸에 기억의 단서들을 문신해 기억력을 보완했지만, 그는 손바닥에 왕(王) 자를 써놓고 토론회에서 할 말들을 찾았었다.
몇몇 증인은 “당신들은 진실을 감당할 수 없다”(어 퓨 굿 맨, 1992)는 태도로 진실을 독점하려 했다. 독점의 명분은 기밀의 유지나 공공의 안녕이었다. 그러나 참군인들이 있었다. 그들에겐 “진실만이 진정한 공공의 이익이고, 명예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모든 것이다”(〃)라고 외치는 젊은 군법무관 톰 크루즈의 모습이 보였다. 한 변호사가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을 보고 싶다고 했다. “아빠와 함께 길가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가는 파란색 차들을 세는”(업, 2009) 것처럼, 심심하고 특별하지 않은 일상들이 복원돼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헌재의 심의는 속내를 모르는 채 길어졌다. “의심이 없이 오직 확신만 있다면, 믿음은 필요가 없다”(콘클라베, 2024)는 말이 우리 안에서 시험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로마라는 꿈이 단지 나라가 아니라 공화국으로 실현돼야 한다”(로마제국의 몰락, 1964)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이 여기서 다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일부 사람만 가질 수 있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었다,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어야”(괴물, 2023) 했다. “고객도, 소비자도, 서비스 이용자도 아니고, 게으름뱅이도, 무임승차자도, 거지도, 도둑도 아니고, 주민등록번호도 아니고, 관공서 컴퓨터 화면 속 점 하나도 아닌 시민”(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 한명 한명이 광장에 모여서 만들어낸 혁명이었다. 그들이 그날 부른 노래는 “결코 다시는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이들의 노래”(레 미제라블, 2012)였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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