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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대선 승리’만 외치는 그들의 염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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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대선 승리’만 외치는 그들의 염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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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승리 당부' 윤석열의 미소
‘탄핵 반대’ 국민의힘 사과 없어
몰염치 끝판왕...반성부터 해야
윤석열(가운데) 전 대통령이 자신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사건 대리인단에 참여했던 김계리(왼쪽)·배의철 변호사와 함께 식사 도중 활짝 웃고 있다. 정확한 시점과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4일 헌재에서 파면된 이후 찍은 것으로, 김 변호사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윤버지(윤석열 아버지)라고 부르며 공개한 사진이다. 김계리 변호사 페이스북 계정 캡처

윤석열(가운데) 전 대통령이 자신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사건 대리인단에 참여했던 김계리(왼쪽)·배의철 변호사와 함께 식사 도중 활짝 웃고 있다. 정확한 시점과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4일 헌재에서 파면된 이후 찍은 것으로, 김 변호사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윤버지(윤석열 아버지)라고 부르며 공개한 사진이다. 김계리 변호사 페이스북 계정 캡처


지난해 12월 3일부터 넉 달간, 당시 대통령과 여당을 보며 가장 자주 떠오른 말은 ‘염치없음’이었다. 염치. ‘청렴할 렴(廉)’과 ‘부끄러워할 치(恥)’, 두 한자가 결합한 단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이렇게 정의한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그들에게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염치’란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최소한의 덕목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은 최소한의 염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준점이 될 상식과 윤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반성과 성찰의 능력은 필수적이다. 쉽지만은 않지만, 마냥 어렵지도 않다. 대부분은 어느 정도 염치를 알고, 어느 정도 염치가 있다. 이 사회가 그래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건 구성원들의 염치 덕분이다. 바로 이 염치의 실종이 ‘전직 대통령’ 윤석열과 ‘구여권’ 국민의힘이 보여 준 행태다.

우선 윤석열. 12·3 불법 계엄에 대한 그의 궤변을 일일이 복기할 필요는 없다. 두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직후 그는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선 준비를 잘해서 꼭 승리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파면된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가 할 말이 아니었다.

최근 공개된 사진 2장에서 ‘활짝 웃는’ 윤석열의 모습은 더 기이하다. 관저 퇴거 전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 자택 복귀 후 김계리·배의철 변호사와 각각 찍은 사진들인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국민에게 사과하는 마음이 있다면, 염치가 있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표정이다. 하긴, 정치 입문 5개월째였던 2021년 10월 ‘개 사과 사진’ 논란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그는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다.
18일 서울 강서구 ASSA아트홀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후보자 국민의힘 1차 경선 후보자 비전대회에 참석한 후보자들이 오른손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유정복 인천시장, 홍준표 전 대구시장,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안철수 의원, 양향자 전 의원, 나경원 의원, 이철우 경북지사, 한동훈 전 대표. 사진공동취재단

18일 서울 강서구 ASSA아트홀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후보자 국민의힘 1차 경선 후보자 비전대회에 참석한 후보자들이 오른손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유정복 인천시장, 홍준표 전 대구시장,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안철수 의원, 양향자 전 의원, 나경원 의원, 이철우 경북지사, 한동훈 전 대표. 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탄핵 반대’를 외친 것도 모자라, 지금껏 ‘1호 당원’ 윤석열과 절연하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도 없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하지 않았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헌재 결정 이튿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여당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두루뭉술하게 밝혔을 뿐이다.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다는 건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반성의 결과물이 아닌, 형식적 사과에 지나지 않았다. “윤석열 제명과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는 김상욱 의원의 호소는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날 것이다.

또다시 정권을 잡겠다고 나선 현재 모습은 더 꼴불견이다. 윤석열을 편들며 헌정 파괴를 방조했던 인사들은 경선에서 오직 ‘반(反)이재명’만 부르짖는다. ‘탄핵 찬성’ 입장에 선 인사들 역시 사과보다는 ‘이재명 때리기’에 열중한다. ‘한덕수 차출론’이 제기되고, ‘공정한 대선 관리’를 약속했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간 보기’ 모드에 들어간 것도 볼썽사납다. 권력욕만 넘치는, 몰염치의 ‘끝판왕’이다.

국민의힘은 대선 후보를 내지 않는 게 옳다. 오죽하면 민주당뿐 아니라 보수 진영(국민의힘 김웅 전 의원·박종선 대전시의원, 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오겠는가. 물론 정치의 생리를 감안하지 않은 순진한 생각이다. 그러나 헌재가 밝혔듯, 내란을 막은 건 민주주의 파괴에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 ‘순진한 시민들’이었다. 내란 책임이 있는 정당에 또 다른 순진함, 곧 염치를 기대하는 건 정말 무리인가.

김정우 이슈365부장 wooki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