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머니투데이 언론사 이미지

[기고]보험도 혁신이 필요하다

머니투데이 안철경보험연구원 원장
원문보기

[기고]보험도 혁신이 필요하다

서울맑음 / -3.9 °


스마트폰을 그저 '전화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는 시간보다 음악 감상, 금융거래, 건강 체크 등에 쓰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스마트폰은 단순한 통신 수단을 넘어 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라이프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한국은 매년 100억 달러 넘는 스마트폰을 수출하며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다. 1988년 처음 무선전화기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발전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시 국내 제조사들은 기술력 부족으로 품질 논란에 시달렸고 소비자 신뢰를 얻지 못했다. 결국 1995년 삼성은 품질 혁신을 선언하며 불량 제품을 전량 소각하는 '애니콜 화형식'을 단행했다. 이는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한국 휴대폰 산업이 질적 도약을 이루는 상징적인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험산업은 어떠한가? 보험은 여전히 '위험보장'이라는 전통적 역할에 머물러 있지만 변화와 혁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푸르덴셜생명은 대졸 남성 설계사를 내세워 종신보험과 재무설계를 결합한 영업 모델을 도입했다. 2000년대에는 라이나생명이 텔레마케팅을 활용해 비대면 건강보험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온라인 자동차보험(AXA), 변액유니버셜보험(메트라이프), 달러보험(AIG), 저해지보험(ING) 등 혁신 상품이 등장하며 시장에 신선한 변화를 불러왔다.

이처럼 초기의 혁신은 외국계 보험회사들이 주도했다. 그러나 이들의 도전은 국내 보험회사들에 자극이 돼 신상품 개발을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 개발된 CI(중대질병)보험을 비롯한 다양한 건강보험 상품이 해외 보험회사들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한국은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전통적 보험시장은 사실상 포화상태다.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는 지속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1인 가구 증가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인해 보험 수요도 달라지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보험회사들의 잇따른 한국 시장 철수는 위기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미래 성장성과 수익성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과도하고 경직된 규제 환경이다. 보험이 스마트폰처럼 진화하려면 지금과 같은 규제 중심의 시장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험회사는 단순한 위험보장을 넘어 건강관리, 노후생활 지원, 자산관리, 기후위험 대응까지 고객의 삶 전반을 관리하는 서비스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보험회사가 고객의 건강 데이터와 금융 데이터, 라이프로그 데이터를 연결해 생애주기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시대가 열려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게 하려면 규제를 선제적으로 개혁하고 보험회사의 사업영역을 획기적으로 확장하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즉 보험산업에도 '화형식'이 필요하다. 낡은 규제와 관행을 과감히 불태우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제도적 토대를 다시 마련해야 한다. 보험이 '위험보장'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스마트폰처럼 '삶의 필수 인프라'가 되는 미래, 그것이 한국 보험산업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혁신의 방향이다.

안철경 보험연구원 원장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