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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멀어진 연구개발…‘스마트 조선소’의 역설 [전문가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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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멀어진 연구개발…‘스마트 조선소’의 역설 [전문가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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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3월 14일 도쿄서 재무장관회의 개최 합의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디지털 트윈을 활용한 가상 조선소 ‘트윈포스(TWIN FOS)’를 통해 조선소 공정 상황을 실시간으로 살펴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제공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디지털 트윈을 활용한 가상 조선소 ‘트윈포스(TWIN FOS)’를 통해 조선소 공정 상황을 실시간으로 살펴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제공


10년 가까운 위기를 겪은 조선업이 순항하고 있다. 최근 3년 간 해외로부터 수주가 늘어나 수주 잔고가 그득하고, 실적은 호전되고 있다. 트럼프 2.0 시대가 시작되며 미국 해군함정 교체 수요를 가져올 거란 기대도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엘엔지(LNG·액화천연가스)선박은 여전히 수주가 잘 된다. 엘엔지 생산설비 등 해양플랜트도 본격적으로 수주 바람이 불고 있다. 일감이 많아지자 업계는 지난 2~3년 간 조선소에 인력이 모자라다고 아우성을 쳤고, 법무부는 특례를 통해 이주노동자 활용을 전체 인원의 20%에서 30%로 상향하고, 이들 중 상당수를 숙련기능인력(E-7)으로 할당했다.



이제 조선업계는 다시 2000년대의 영광을 대한민국에 가져올 것인가? 당장의 선박 수출은 잘 될 수 있겠지만, 양질의 생산직 일자리에 대한 전망은 부정적이다. 또 지도를 펼쳐보자면 울산, 거제, 영암 등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과 조선소의 연결이 점차 헐거워지고 있다. 일자리 문제와 지역과 조선소의 연결 문제가 결과적으로 혁신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손끝 숙련에서 나오는 혁신





조선업은 자본집약적인 장치산업이며 노동집약적인 산업이지만, 동시에 기술집약적인 산업이다. 조선소 야드(현장)는 많은 생산직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용접을 비롯한 조선업의 모든 공정은 여전히 생산직 노동자의 손끝 숙련에 의존한다. 엔지니어링 관점에서도 제품의 구상부터 최종 생산직 노동자가 작업할 도면까지 만들어 내는 설계 엔지니어의 숫자가 만만치 않게 투입된다. 도면이 나온다고 끝은 아니다. 엔지니어는 선박을 건조하면서 발생하는 공정 문제를 생산직 노동자와 함께 해결하거나, 주문주 그리고 기자재를 공급하는 회사와 지속적으로 회의를 열고 다양한 기술적 쟁점에 대해서 토론한다. 조선업은 실험실이 아닌 선박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혁신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고숙련 생산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아이티(IT)산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처럼 고기량 설계 엔지니어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언제나 현장에서 거대한 크레인이 움직이고 노동자의 용접불꽃이 튀는 것만 같은 조선소에서도, 기술적 변화는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정부와 기업에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을 적용하는, 미국 인공지능 회사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이하 팔란티어)의 주식이 하루 만에 20% 넘게 급상승한 적이 있다. 전분기 실적이 시장 예상보다 높았고, 알렉스 카프 최고경영자(CEO)가 제시한 향후 매출과 이익 기대치가 시장의 기대치를 웃돌았기 때문이었다. 미국 국방부 예산 삭감 등으로 인해 다시 주가가 떨어지긴 했지만, 한국인이 주식을 많이 보유한 기업 중 하나이다.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이하 현대중공업)은 팔란티어와 함께 스마트 조선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스마트 조선소는 조선소에서 산출되는 설계, 생산 공정 데이터를 수집하여 데이터 플랫폼에 구축한다. 조선소는 데이터를 가지고 인공지능의 추론 기능을 활용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보조하거나, 디지털 트윈을 통해 현장-가상 현장의 동기화로 시뮬레이션, 최적화된 도면 제작 등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 현장 노동자는 브이알(VR·가상현실) 등을 활용해 작업장의 미시적 상태를 확인하고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다. 팔란티어는 파운드리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 수집과 통합을 담당하고, 온톨로지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과 추론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아예 스마트 조선소 담당팀의 이름이 팔란티어 추진팀이다.






현장이 아닌 인공지능에게 묻는다





현대중공업 뿐만 아니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모두 스마트 조선소 추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들은 20년 넘게 노동집약적인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며 다양한 방식의 혁신을 탐색해 왔다. 1990년대부터 용접 로봇을 개발하거나, 자동화 선반을 통해 강재의 절단 가공에 적용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제조업체 트렌드에 발맞춰 전사자원관리시스템(ERP)을 도입해 경영정보, 기술정보, 생산정보, 구매정보 등을 통합해 전산으로 관리해 오기도 했다. 스마트 조선소는 조선소의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혁신의 연속선상에 있다.



스마트 조선소는 기술혁신 관점에서 보면 생산직 노동자와 엔지니어에 의해 현장에서 벌어지던 협업 공간을 온라인으로 이동시킨다. 일본과 독일은 현장 노동자와 엔지니어의 물리적 거리를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야 혁신이 가능하다며 생산조직을 운영해왔고, 한국 조선소도 그랬다. 하지만 스마트 조선소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현장의 중요성은 축소된다. 자동차 사례처럼 일본과 독일식 생산방식은 인공지능의 물결 속에서 구닥다리로 간주되고 있다. 일본식 생산혁신 기법인 린 생산, 전사적 품질 경영(TQM)이나 미국의 6시그마는 이미 유물이 됐다.



전사자원관리시스템 도입기 엔지니어들은 현장의 도면 수정 요구 메시지를 컴퓨터로 읽다가 자전거를 타고 현장으로 나갔다. 스마트 조선소가 구축되면 엔지니어는 현장의 수정 요구가 오기 전에 디지털 트윈을 보며 실시간으로 공정 상황을 확인하고, 난관이 발생할 곳을 예측하거나, 대응할 솔루션을 현장 담당자가 아닌 인공지능에게 질의하게 될 것이다. 현장과의 협업은 형해화될 수 있다.



기술적 변화는 엔지니어의 수도권 배치라는 지리적 문제와 맞물려 있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를 시도할 당시 현대중공업은 판교에 글로벌 연구개발(R&D)센터(GRC)를 짓기로 결의한다. 노동조합과 지역사회의 반발이 있었지만 연구개발센터는 2020년에 착공해 2022년 말에 완공했다. 기존에 수도권에 근무하던 에이치디현대 연구개발 엔지니어 외에도 울산 조선소에서 근무하던 설계 엔지니어의 상당수가 이미 연구개발센터에 배치되었고, 앞으로 설계 엔지니어는 이전 배치되거나 수도권에서 충원되어 판교에 배치될 것이다. 연구개발센터가 현대적인 아이티(IT)회사를 모방한 외관과 배치, 고급화된 케이터링 서비스를 갖추고 판교 소재 하이테크 기업과의 협업 환경을 고려하면 엔지니어들의 만족도는 높다. 아직 연구개발센터 근무자 중 많은 숫자가 울산 동구로 출장을 가지만, 기술적 변화는 점차 이들의 근무 지역을 판교와 수도권에 묶게 될 것이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위치한 블록운반팀 VR 교육장에서 ‘VR 기반 트랜스포터 시뮬레이터’를 통해 트랜스포터 운행 실습이 진행되고 있다. 한화오션 제공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위치한 블록운반팀 VR 교육장에서 ‘VR 기반 트랜스포터 시뮬레이터’를 통해 트랜스포터 운행 실습이 진행되고 있다. 한화오션 제공




숙련 노동자를 다시 육성할 수 있을까





에이치디현대만의 일이 아니다. 조선 3사 모두 수도권 연구개발 및 엔지니어링 센터 건립을 완료했다. 삼성중공업은 판교에, 한화오션은 일단 시흥에 자리를 잡았다. 업계는 입을 모아 ‘우수한 공학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있어야만 한다고 강변한다. 이제 국내 제조대기업이 30년간 매진해 온 구상(연구개발, 엔지니어링, IT통합, 전략 등)과 실행(생산)의 분업은 조선업에서 완성됐다. 스마트 조선소는 이러한 공간분업 관점에서의 의사결정을 기술적으로 완결성을 갖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점 제조업의 메카였던 울산으로부터 시작해 여수와 목포에서 종결되는 남동임해 공업지역은 바야흐로 구상 부문을 모두 빼앗긴 채 생산기지로서 확정되는 상황이다.



제조대기업의 연구개발 부문과 설계 부문을 다시 생산거점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대기업 투자 유치를 바라는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 기존 글로벌 공급망을 유지하고 이주 노동자를 용이하게 공급받는 것은 관세전쟁과 지역질서로의 전환 과정에서 어려워질지 모른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해결할 수 없는 조선업 현장 고유의 문제가 더 크게 불거질 지도 모른다. 그 때 다시 숙련 노동자를 지역에서 육성하겠다고, 또 엔지니어를 현장에 배치하겠다고 할 것인가. 제조업 기반이 허물어진 뒤 이를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미국에서 보고 있다. 따라서 우선 조선업이 누적해 온 생산직들의 숙련, 엔지니어와 생산직들의 협업 방식이라는 무형 자산, 현장의 중요성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재발견하느냐가 중요해 보인다. 연구자 뿐만 아니라 노동 쪽의 관심도 필요하다. 지역혁신정책 관점에서도 대기업 유치보다는 공급망의 허리를 담당하는 소·부·장 혁신클러스터 구축을 통해 어떻게 기회를 조직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절실해 보인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



편집자주 : 독자들에게 경제를 살펴보기 위한 지도책을 제안한다. 인구학적 전환, 공간분업의 전개, 탈추격기의 제조업 혁신이라는 3가지 난관을 함께 아우르는 지도책을 통해 단순히 신문에 나오는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문제가 아닌, 우리의 삶과 연관된 문제로서 제조업의 현주소를 함께 살펴볼 수 있길 기대한다. 문화인류학과 과학기술학을 차례로 전공한 양승훈 교수는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했고, 현재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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