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정규리그 1위 이끈 ‘농구 전설’
아산 우리은행을 2024~2025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에이스 김단비가 지난 1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뒤 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18년차에도 3경기 연속 30득점
“내가 무너지면 끝…셀프 압박
지금은 플레이오프 준비 생각뿐”
‘김단비만 막자.’ 이번 시즌 여자프로농구(WKBL)에서 아산 우리은행을 만나는 팀들이 공통으로 세운 전략이다. 매 경기 더블 팀 수비가 따라붙었고 모두가 막으려 했지만 김단비(35·우리은행)는 막히지 않았다. 늘 ‘마지막’을 각오하고 뛴 2024~2025시즌, 어느새 정규리그 정상에 도달했고 김단비는 살아 있는 ‘여자 농구 전설’이 됐다.
우리은행은 지난 16일 2024~2025시즌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을 조기 확정했다. 우리은행에는 15번째, 김단비에게는 7번째 정규리그 우승이다. 그러나 우승의 기쁨은 이미 지나갔다. 지난 19일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만난 김단비는 “플레이오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신한은행에서 데뷔한 김단비는 올해 데뷔 18년차다.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질주 본능은 20대 때보다 더 뜨겁다. 이번 시즌 평균 21.8득점 11리바운드 3.7어시스트를 기록한 김단비는 개막 직후 3경기에서 34득점, 34득점, 30득점을 기록하며 국내 선수 최초 단일 리그 3경기 연속 30득점 이상의 역사도 썼다.
‘신한은행 왕조’의 중심이었던 김단비는 이제 ‘우리은행 왕조’ 건설에 앞장서고 있다. 2022년 우리은행으로 이적한 뒤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지난 시즌에는 정규리그 2위를 하고도 최종 챔피언을 거머쥐었다.
우리은행은 지난여름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박혜진, 박지현, 나윤정, 최이샘 등 주축 선수들을 대거 떠나보내고도 올 시즌 극적인 상승세를 그리며 정규리그 1위에 올랐다. 김단비는 “지난 시즌 챔피언 결정전 때보다도 확률이 낮았던 우승이라 생각한다. 정규리그 우승 확정 순간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고 말했다.
선수층이 얇아진 만큼 김단비의 역할은 더 커졌다. 김단비는 “선수들이 많이 바뀌어 경험 많지 않은 후배 선수들이 경기를 뛰게 됐다. 내가 끌어가야 하는 입장이다보니 내가 무너지면 모두 무너진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를 많이 압박했다”고 말했다.
시즌 개막 직전인 지난해 10월, 김단비는 인터뷰에서 “우승도, 꼴찌도 여러 번 해 보면서 느낀 건 딱 하나다. 자고 일어나면 다 지나간 과거가 된다는 것”이라며 “끝나고 나면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적 같은 우승을 이뤄낸 지금도 마찬가지다. 김단비는 “정규리그 우승 뒤 자고 일어나니 ‘플레이오프 어떻게 준비하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말했다.
힘겹게 시즌을 버텨온 만큼 봄 농구에 대한 부담은 더 크다. 김단비는 “주변에서 ‘이러다 정규리그 우승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할 때도 나는 차라리 우승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승팀으로서 부담감을 안고 플레이오프를 치르기에는 우리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며 “한 단계씩 스텝업을 하는 게 우리에게 더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단비의 존재감을 보여준 상징적인 경기가 있다. 이번 시즌 김단비는 딱 한 번, 지난해 12월6일 신한은행전에 왼쪽 팔꿈치 부상으로 결장했다. 그날 우리은행은 1쿼터 0점, 여자프로농구 사상 최초의 한 쿼터 무득점을 기록했다. 김단비는 “선수들이 제게 의지하다 보니 부담도 있었을 테고 다들 조금 당황했던 것 같다”며 “그래도 2쿼터부터 잘해내는 걸 보면서 내가 없어도 선수들이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단비는 이번 시즌 출장한 모든 경기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나이가 들어도 꺾이지 않는 경기력의 비결을 물었다. 그는 “이제는 어린 선수들이 훈련하는 만큼 100%를 다 할 순 없지만 80~90%까지는 따라가려고 노력한다”며 “나이가 들어 회복은 더딜 수 있지만 오히려 농구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져서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최근 몇년간 김단비의 시즌 목표는 항상 같았다. ‘지난 시즌보다 더 나은 시즌을 만들자’는 것이다. 김단비는 우리은행에 입단한 이래 평균 득점과 리바운드를 꾸준히 높여 가며 자신과 약속을 지켰다. 한계가 없는 듯 질주해온 김단비는 35세인 올해 득점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김단비는 “이제는 ‘이 경기가 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뛴다”며 “이번 시즌보다 좋은 기록은 앞으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다음 시즌 목표는 다른 걸로 바꾸려고 한다”고 웃었다.
20년 가까이 코트를 누빈 김단비에게도 농구는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김단비는 “어렵게 정규리그에서 우승했는데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진다면 지금까지 여정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며 “그 우승이 헛되지 않게 플레이오프를 잘 뛰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언제나 마지막인 듯 뛰는 김단비에게 아직 끝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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