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상명대학교 교수 |
최근 금융위와 금감원에서 2%대로 저조한 퇴직연금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근로자가 투자책임을 지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서 적립금의 100%를 주식에 투자토록 허용하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 현재 퇴직연금제도를 책임지는 고용노동부는 수익성과 안정성을 고려하여 적립금의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최대 70%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양대 금융당국은 문제의 본질은 물론 어렵게 얻는 경험도 잊은 것 같다. 첫째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위험자산 투자 한도가 아니라 430조원 적립금의 90%가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형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2005년 제도 도입 이래 원리금보장형 비중을 줄이려는 정책들은 노후자금만큼은 손실위험을 피하려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요지부동에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그 밑바탕에는 자본시장에 대한 불신이 강하게 깔려있다. 따라서 100% 주식투자를 허용한들 실적배당형에 있는 나머지 10%인 40조원에서 약간의 움직임이 있겠지만 변동성까지 커지면서 기대만큼 성과가 나올지 의심스럽다.
둘째 20여 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증권회사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퇴직연금 도입이 증시에 긍정적일 것이란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었다. 당시 양대 노총은 노동자의 은퇴자금을 증시부양에 이용한다면서 맹비난을 퍼부으면서 자칫 제도 도입이 무산될 뻔했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양대 금융당국의 주장이 밸류업을 지원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란 오해를 살까 우려된다.
퇴직연금이 발달한 영미권에서조차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인에게 노후자금을 주식에 넣으라고 종용한 적이 없다. 만일 주식 비중이 높다면 수탁자가 적립금을 관리하는 기금 내 현상이고 이조차도 주식과 채권 등의 비중을 전략적으로 조정하는 밸런스펀드나 타깃데이트펀드(TDF)의 틀 안에서 나타난다. 우리처럼 계약형태의 DC에서도 개별 근로자는 투자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안정성이 고려된 펀드 등에 투자한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오르려면 원리금보장형에 쏠린 적립금이 실적배당형으로 이동해야 하나 지금처럼 개인이 온전히 투자책임을 지는 구조에서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근로자가 투자에 관심이 없더라도 퇴직급여를 믿고 맡기면 노후생활 자금으로 불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운용체계 변화가 필요하다. 즉 퇴직연금에서 도입, 운용, 지급까지 전문성과 책임성있는 수탁법인이 일괄 관리하는 기금형이 하루빨리 허용돼야 한다. 퇴직연금기금에서 합리적인 투자원칙에 따라 전문적인 운용이 이루어진다면 엄격한 적립금 운용규제 없이도 안정성과 수익률을 도모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2022년에 설립되어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30인 이하 사업장을 위한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이 7%에 가까운 수익률을 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미권에서는 연기금이 자본시장을 통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이후 기업의 성과가 자본차익이나 배당 등을 통해 근로자의 연금액을 불리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면서 경제성장을 도왔고 끝내 연금자본주의가 꽃을 피운다. 하지만 우리 자본시장은 퇴직연금을 포함해 누구라도 기꺼이 주식 보유를 늘릴만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 주식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제거돼 그 가치가 제자리를 찾는다면 누가 떠밀지 않아도 주식 수요는 늘게 돼있다. 이 점에서 진정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 금융위와 금감원이 전념해야 할 과제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김재현 상명대학교 교수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