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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의 2024~2025시즌의 목표는 간명하다. 통합우승 5연패. 이미 챔프전 8연패에 빛나는 삼성화재도 이뤄내지 못한 ‘전인미답’의 영역인 통합우승 4연패를 이뤄낸 대한항공은 자신들이 창조한 역사를 한걸음 더 더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통합우승의 전제조건인 정규리그 1위가 쉽지 않아 보인다. 28일 기준 V리그 남자부 선두는 현대캐피탈. 21승2패, 무려 91.3%의 승률로 승점 61을 쌓았다. 그야말로 ‘독야청청’ 현대캐피탈이다. 대한항공은 승점 47, 15승8패로 뒤쫓고 있지만, 격차가 너무 크다. 무려 14 차이로 벌어져있다.
29일 4라운드 맞대결을 포함해 현대캐피탈과의 일전을 세 차례 남겨두고 있다. 3경기 모두 승점 3을 챙기면 승점 5 차이까지 좁힐 순 있다. 남은 차이는 다른 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 지금의 현대캐피탈을 보면 대한항공이 아니면 이겨내기 쉽지 않은 최강전력이다. 그러니 정규리그 1위 탈환은 사실상 물건너 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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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겨야 한다. 29일 맞대결에서 패해 승점 3, 아니 승점 2라도 헌납하면 아주 자그마한 희망마저도 사라지고 그대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랬던 ‘천적관계’는 올 시즌 들어 완벽하게 뒤집혔다. 1~3라운드 맞대결에서 모두 현대캐피탈이 승리했다. 1라운드 3-2, 2라운드 3-1, 3라운드 3-0까지. 당할 수 있는 스코어로 모두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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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뒤집혔을까. 지난 네 시즌 동안의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사이엔 선수단 재능의 총합에서 꽤 큰 간극이 있었다. 대한항공은 1985년생 동갑내기이자 V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NO.1, NO.2를 다투는 세터들인 한선수-유광우가 있어 경기력 기복이 그리 크지 않다. 여기에 곽승석-정지석으로 이어지는 공수겸장의 아웃사이드 히터들이 양질의 리시브와 쏠쏠한 공격력을 보탠다. 김규민-조재영이 버티는 미들 블로커진도 항상 리그 최고 수준의 방패를 형성한다. 이러한 코어 라인에 임동혁, 정한용, 김민재 등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태생의 젊은 선수들의 재능이 매 시즌 더해지면서 최강의 토종 선수진을 구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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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수 제도가 자유계약이 아닌 트라이아웃 제도로 진행되다 보니 팀들 간의 외국인 선수의 기량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이렇게 되면 토종 선수층이 두터운 팀이 무조건 유리하다. 이러한 외인 제도의 수혜를 가장 크게 본 게 대한항공이다. 가장 강한 토종 선수층, 그렇다 보니 외국인 선수의 기량이 다른 팀 선수들에 비해 크게만 떨어지지 않으면 토종 선수들로 그 차이를 메울 수 있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면서 매년 다른 팀들을 압살하며 통합우승 4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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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올 시즌 들어 현대캐피탈에 의해 깨졌다고 보면 된다. 먼저 대한항공에 이어 두 번째 정도였던 현대캐피탈의 토종 선수들의 재능의 합이 대한항공과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올라선 게 확실하다. 대표적인 예가 이제는 V리그 남자부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한 허수봉이다. 허수봉을 중심으로 올 시즌 들어 처음으로 주전에서 밀려나 ‘슈퍼 서브’로 활약하고 있는 전광인, 미들 블로커진의 최민호-정태준, 리베로 박경민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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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세터 싸움에서 현대캐피탈이 이제 대한항공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점도 크다. 최근 몇 년간 김명관-이현승 체제로 세터를 운영하던 현대캐피탈은 한선수-유광우의 대한항고에게 철저하게 밀렸다. 그랬던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개막 직전에 KB손해보험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황승빈을 데려왔다. 대한항공에서 2014년 데뷔해 2021년까지, 오랜기간 한선수의 백업 세터로 뛰던 황승빈은 2021∼2022시즌 삼성화재로 트레이드되면서 백업에서 벗어나 주전 세터로 도약했다. 그러나 우리카드, KB손해보험까지 매년 팀을 옮겨 다니는 ‘저니맨’ 신세를 면치 못했다. 기량은 주전급인데, 항상 트레이드의 조각으로 쓰였던 설움이 있었던 황승빈은 올 시즌 현대캐피탈이라는 ‘우승 도전팀’에 합류해 프로 데뷔 11년만에 그 재능을 꽃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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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한방. 역대 최고의 외인으로 꼽히는 레오(쿠바)가 현대캐피탈에 합류했다는 점이 크다. 20대 초반 삼성화재에서 뛰던 3년간 V리그 코트를 혼자 힘으로 초토화시켰던 레오는 30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V리그로 돌아왔다. OK저축은행에서 세 시즌간 뛰며 지난 시즌엔 챔프전 준우승까지 혼자 힘으로 이끌 정도로, 아직은 트라이아웃에서 뽑을 수 있는 최강급의 외인이다. 이런 레오를 OK저축은행의 오기노 마사지 감독은 자신의 배구철학과 맞지 않다며 재계약을 하지 않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다시 시장에 나온 레오는 트라이아웃 2순위 지명권을 받아든 현대캐피탈의 품에 안겼다. 행운에 행운이 거듭된 레오의 합류, 현대캐피탈에겐 화룡점정이었다. 이미 토종 선수들의 재능의 합도 대등해진 상황에서 레오가 요소마다 확률높은 공격력을 때려주니 현대캐피탈이 대한항공을 1~3라운드에 모두 승리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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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에겐 아직 믿을 구석이 있다. 1~3라운드는 자신들이 내세울 수 있는 최강의 조합으로 맞붙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트라이아웃 전체 1순위로 뽑은 요스바니가 어깨부상으로 단 2경기 만에 이탈했고, 4라운드부터 다시 돌아왔다. 여기에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리베로 포지션도 4라운드부터 팀에 합류한 이가 료헤이(일본)로 지워내고 있다. 대한항공으로선 요스바니와 료헤이가 합류한 ‘완전체’로 29일 현대캐피탈과 처음 맞붙는 셈이다.
이처럼 많은 의미가 담긴 29일 현대캐피탈-대한항공의 맞대결이다. 올 시즌 남자부 정규리그 1위의 향방을 결정지을 한 판일지도 모를 두 팀의 맞대결은 29일 오후 2시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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