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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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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특급’들은 ‘몰빵 배구’에 특화? GS칼텍스 실바 “지원이가 올려주면 때려야 한다… 다만 나는 레오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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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84번의 공을 상대 코트로 때려야했다. 팀 공격의 절반이 넘는 57.14%를 책임졌다. 어쩔 수 없었다. 14연패에 빠진 팀을 구하기 위해선 가장 확률 높은 옵션인 본인이 많이 때려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경기 뒤 오른쪽 어깨에 대고 있는 아이싱은 승리의 훈장 같았다. 눈물겨운 투혼으로 GS칼텍스의 14연패를 끊어낸 지젤 실바(쿠바) 이야기다.

GS칼텍스는 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첫 경기에서 선두 흥국생명을 세트 스코어 3-2(25-19 25-18 22-25 21-25 15-13)로 꺾었다.

시즌 시작을 3연패로 했다가 지난해 11월1일 페퍼저축은행을 상대로 첫 승을 거뒀던 GS칼텍스는 이후 14경기를 내리 졌다. 1승17패로 전반기를 마감한 GS칼텍스는 후반기 첫 경기에서 시즌 2승째를 챙겼다. 67일 만에 맛본 달콤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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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실바의, 실바에 의한, 실바를 위한 경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날 실바는 V리그 개인 한 경기 최다인 51점을 몰아쳤다. 공격 성공률도 57.14%로 시즌 평균보다 10%를 훌쩍 넘게 높았다. 그만큼 실바가 공 하나 하나를 정성껏 때렸다는 것의 방증이다.

실바 역시 사람이었다. 공격 점유율이 75%에 달했던 3세트에는 세트 막판 연속으로 공을 네트에 때리며 지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4세트에는 지친 표정으로 다리를 매만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팀 승리를 위해 자신에게 올라온 공은 최선을 다해 처리했고, 거함을 무너뜨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당연히 경기 뒤 수훈선수 인터뷰의 주인공은 실바였다. 엄마가 자랑스러웠던지 딸 시아나도 인터뷰실을 찾았다. 당당히 인터뷰석에 앉아 엄마의 담담한 인터뷰를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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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바는 “이겨서 너무 기분이 좋다. 떨렸지만, 이날 승리를 통해 우리 팀은 한층 더 성장한 것 같아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4세트 다리를 매만졌던 장면에 대해선 “괜찮다. 올 시즌 부상이 유독 많아 힘겨운 시즌이지만, 몸 상태는 점점 올라오고 있다”며 웃었다.

GS칼텍스 감독은 연패 탈출을 위해 지난 1주일 간의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 강훈련을 실시했다. 이 감독 스스로도 “시즌 중에는 좀처럼 하지 않는 강도의 훈련이었다. 잘 따라와준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할 정도였다.

실바도 ‘CRAZY’(미친)이라는 형용사를 써가며 훈련 강도를 설명했다. 그는 “감독님 말이 맞다. 정말 미친 듯이 훈련했다.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시아나와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울 정도였다”라면서 “그래도 오늘 승리로 그간의 강도 높은 훈련을 보상받았다. 이런 순간을 위해 그렇게 훈련을 한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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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생인 실바는 GS칼텍스 선수 중 최고령이다. GS칼텍스는 비시즌 동안 베테랑 정대영, 한수지가 은퇴하면서 1990년대 초반생인 실바가 곧바로 최고참이 됐다. 한국 선수들은 1998년생인 우수민과 안혜진이 최고참이었다가 흥국생명과의 트레이드로 합류한 김미연이 1993년생으로 최고참이 됐다. 김미연을 제외하면 모두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생으로 포진되어 있을 정도로 어린 팀이다.

이들이 지독한 성장통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실바는 늘 푸른 소나무처럼 강력한 파워를 동반한 공격으로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발목과 무릎 부상 때문에 전반기에 4경기 결장한 것을 미안해하는 ‘모범 외인’ 실바다. 실바는 “연패 기간에 심적으로 힘들었다. 내가 경기에 뛰지 못하는 상황도 있어서, 더 속상했다”며 “오늘 연패를 끊었으니 후반기에는 우리 팀이 더 많이 이겼으면 좋겠다. 몸 관리를 잘해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면서 팀 성장을 돕는 게 나의 후반기 목표”라고 밝혔다.

이날 실바가 기록한 51점은 V리그 여자부 개인 한 경기 최다 공동 1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이 부문 최다 기록은 매디슨 리쉘(과거 IBK기업은행), 엘리사 바실레바(과거 흥국생명)가 작성한 57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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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점이 커리어 최고 기록이냐는 질문에 실바는 “필리핀리그에서 4~5년 전쯤에 기록한 56점이 최고 기록”이라고 답했다. ‘V리그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에 도전해 보라’는 취재진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말 너무한 것 아니냐’라고 항의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언젠가 신기록을 세울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실바는 쿠바 출신이다. 남자부 현대캐피탈의 레오도 쿠바 출신이다. 레오도 공을 많이 때리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점유율을 올릴수록 더 공격력이 살아나는 선수다. ‘쿠바 출신들은 공을 많이 때리는 것을 즐기는 것 아니냐’라는 질문에 실바는 “쿠바 선수들은 ‘공 더 줘, 때리게 올려줘’라고 말을 많이 하곤 한다. 나 역시 (김)지원이가 올려주면 때려야 한다. 그렇지만 나는 레오와는 다르다. 정말 다르다. 많은 공을 때리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장충=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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