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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원경’태종 이방원의 후궁정치, 원경왕후를 흔들까?[서병기 연예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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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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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tvN X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원경’이 첫 방송부터 차주영(원경)-이현욱(이방원) 왕가 부부의 휘몰아치는 애증 서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1회가 6일 저녁 8시 50분 tvN에서 방송됐고, 티빙에서는 6일 선공개된 1-2화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원경’은 이방원 부부의 애증사로 출발한다. 방원이 왕이 되는 데는 처가인 여흥민씨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왕자의 난’ 거사를 앞두고 두려움에 휩싸인 남편 방원의 곁에서 “오늘 밤 역사는 분명 우리 편”이라며 갑옷을 입혀준 이는 아내 원경이었다.

그렇게 왕권을 이뤄낸 두 사람은 “모든 것을 함께 나누자”고 약속했고, 뜨겁게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태종이 된 이방원은 처가가 두려웠다. 궐내엔 처가 민씨와 함께 이룬 공동정권이란 뒷말이 돌았고, 신하들은 막강한 사병을 거느리며 “천하를 발 아래 두었다”는 원경의 아버지 민제(박지일)의 눈치를 살폈다.

게다가 동생 민무구(한승원)와 민무질(김우담)은 방원을 앞에 두고도 “중전께서 사내로 태어났으면 임금님이 되셨을 것”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다.

특히 중군총제로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여강군’ 민무구는 방원으로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존재.

방원은 왕이 되고난 후에는 만인지상이고자 했다. 중전도 자신의 신하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편이 왕이 되는데 지분이 적지 않은 원경왕후는 때로는 남편과도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를 원했다.

하지만 왕과의 부부관계는 쾌락이 아닌, 왕자 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궁중법도다.

“왕실의 합궁의 목적은 오로지 생산에 있사옵고, 만에 하나 중전마마께옵서 주상전하의 복 위에 있는 망극한 일은 절대 아니 되오며, 절대 쾌락으로 즐기시면 아니되옵니다.”

숙직상궁이 왕과 중전이 성행위를 하는 방 앞에 앉아 이렇게 외치고 있다. 하지만 원경왕후는 이미 이 법도를 어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는 임금이라 해도 원경에게는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아닌, 부부의 관계로서의 욕망추구권을 가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태종 이방원은 이런 원경왕후를 어떻게 대처했을까? 한마디로 후궁을 계속 들이는 것으로 중전의 기를 누르고 버릇을 고쳐주려고 했다. 이른바 ‘후궁정치’다.

태종은 후궁을 들이는데 진심이었다. 재위 18년간 후궁 18명. 한 해에 한 명씩 후궁을 들여 1년에 한 명꼴이다. ‘채홍사’(採紅使)라는 직책을 만들어 전국을 찾아다니게 해, 아예 ‘조선 미녀(흥청) 오디션’을 수시로 열었던 연산군도 재위 12년간 후궁 10명을 들였다.

후궁을 한 명도 두지 못한 조선왕도 있다. 병자호란의 패배로 소현세자와 그 동생인 봉림대군(효종)은 청나라 심양에 인질로 잡혀가 있었는데, 그때 심양에서 봉림대군의 외아들로 태어난 현종은 15년의 재위기간중 후궁이 한 명도 없다. 숙종의 엄마이자 중전인 명성왕후 김씨(김육의 손녀)의 질투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후궁은 왕의 자녀를 낳고, 왕비를 도와 내명부 업무를 처리한다. 하지만 부부간 사이를 좋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임금은 숙면을 핑계로 밤마다 이 처소, 저 처소로 옮겨다니지만, 당하는 중전 입장에서는 평화로울 수가 없다. 방원의 경우 기가 센 민씨 집안에 살면서 숨이 막혔다고 했으니, 후궁은 이에 대한 도피처로도 활용됐을 것이다.

그럼 태종의 후궁정치는 성공했을까? 원경왕후를 흔들어놨을까? 아무리 합법적이라 해도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합궁하는 데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질투유발작전은 일단 성공이다.

태종은 침소에서 원경으로 부터 “이렇게 참담하게 될 줄 알았다면 집안을 동원해 당신을 왕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뛰쳐나가 채령(이이담)과 긴 밤을 보낸다.

채령은 원경의 최측근 나인이다. 원경이 오래전 미천한 신분 출신인 어린 채령을 구해내 자신을 보좌하게 한 궁녀다. 태종은 “그대(원경)에게 치욕을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다”며 원경을 자극하며, 화를 키웠다. 영국 헨리 8세의 수법과 비슷하다. 로마 교황청과 맞서며 결혼을 6번이나 했던 헨리 8세는 주로 왕후를 돌보는 베이비시터(보모)와 사랑에 빠졌다. 베이비시터와 결혼하고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다음 베이비시터를 찾았다. 현 왕후에게는 더욱 참담한 일이다. 차라리 중전과 관련 없는 인물이었으면 충격이 조금은 덜했을 것이다.

채령도 중전을 끝까지 보좌하며 은혜를 갚고 의리를 지키고 싶지만 ‘승은상궁’의 운명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왕을 자주 자신의 처소로 오게 하면 힘이 실리고, 만약 아기씨라도 낳으면 종4품이다. 욕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극중 채령은 주상전하가 귓볼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걸 좋아한다는 걸 전해듣고 실천에 옮긴다.

뿐만 아니라 방원은 임금이 되기 전의 시기나 그 시기에 살던 집을 의미하는 잠저(潛邸) 시절 자신의 아들(이비, 경녕군)을 낳아 키우던 영실(이시아) 모자를 궁으로 들이라고 명령한다.

원경왕후에게는 치욕적이다. 드라마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매년 한 명씩 후궁이 들어올때 마다 원경은 이런 더러운 기분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전을 향한 태종의 질투유발 작전은 성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가 스포일러인 사극에서 이 작전은 절반의 성공에 그치게 된다.

이 작전이 크게 성공하려면 원경왕후가 극단의 맨붕에 빠져 아무 것도 못하게 되어야 한다. 술로 밤을 지새워야 한다. 그래야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다.

민씨는 18세의 나이로 두 살 연하의 이방원과 결혼한 이듬해인 1383년(우왕 9년)에 정순공주를 낳고 남편이 정안군 시절 요절한 세 명의 아들 등 총 12명의 자식을 두었다. 자신의 남동생인 민무구와 민무질이 죽은 뒤에도 태종과 자식을 낳았다.

방원은 민무구, 민무질 외에도 원경의 셋째 남동생 민무휼과 넷째 남동생 민무회까지 죽였다. 방원은 총 4명의 처남을 죽였다. 남동생 4명을 죽인 남편, 용서되는가? 여흥 민씨는 조선 중기까지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그러지 않다가는 씨가 마를 정도였다.

원경은 양녕이 장남으로 알려져있지만, 양녕을 낳기 이전에도 3명의 아들들을 낳아 모두 어려 사망했다. 3남인 세종 아래로도 딸인 정선공주와 아들인 성녕대군을 낳았다.

이방원의 후궁정치가 본궤도에 올랐던 기간에도 중전과 합궁을 해 부부금슬은 계속 유지됐다. 남편이 후궁과 밤을 보내는 와중에도 계속 회임했던 원경왕후는 더욱 여장부, 여걸 소리를 들을만 했다.

극중에서도 오히려 원경은 승은을 입은 채령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 널 취한 사람의 잘못이다. 그런 잠자리라면 승은을 내려주셨다고 해서 기뻐할 일이 아니다. 널 업신여겼다. 노여워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하는 대범한 논리구조를 보였다.

태종과 원경왕후가 함께 잠든 서울 서초구 내곡동 소재 헌릉(獻陵)은 좌우 쌍릉(雙陵) 형태다. 살아서 많이 다퉜으니 죽고나서는 싸우지 말라는 자식의 효심이 담겨있는 게 아니다. 원경왕후는 태종보다 2년 먼저 사망했다. 이들 부부가 쌍릉이 된 데에는 죽어서 나란히 묻히겠다는 태종의 의도가 담겨있다.

조선왕릉은 쌍릉이 거의 없다. 세종과 소헌왕후가 합장된 영릉(英陵)과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가 합장된 홍릉(洪陵)처럼 부부를 합장하거나,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에 위치한 선릉(성종과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처럼 재실을 공유하는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태로 안장돼 있다. 쌍릉은 원경이 후궁정치를 하는 태종과 끝내 멀어지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좌일 수도 있다. 그래서 둘의 관계를 ‘애증’이라 할만하다.

드라마가 태종의 후궁정치를 다루다 보니, 수위가 매우 높다. 특히 OTT인 티빙에서는 19금(禁)을 달고 꽤 자극적이고 야한 장면들을 내보내고 있다.

절망과 분노로 얼어붙어 밤을 지새운 원경, 무너진 자존심에 왜곡된 마음으로 채령과 영실을 여인으로 품어 ‘이상한 승리감’에 도취하는 방원, 이들 부부의 치열한 갈등은 더욱 휘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방원의 부친인 이성계(이성민)는 ‘왕자의 난’을 통해 아들이자 세자인 이방석을 이방원이 죽이자, “뒤틀린 모든 것을 되돌려놓겠다. 나의 대의는 증오다. 내 그 용상을 지옥으로 만들어줄 것이다”면서 분노를 크게 표출시킨다. 이성계는 심야에 복면을 쓴 심복 원복(박기덕)을 침투시켜 방원-원경 부부를 죽이려고 했다. 그럼에도 태종 이방원은 자객의 살해 위협 앞에 주저 없이 원경을 먼저 보호할 정도다. 이들 부부의 사랑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배우 차주영은 최명길과 박진희와는 또 다른 원경왕후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 초반이라 그 연기력을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차별화는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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