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약체 이끌고 미쓰비시컵서 강호 신태용호 인니와 3-3 깜짝 무승부
하혁준 라오스 축구대표팀 감독 |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너희들 부자 만들어줄게!' 했더니 눈빛이 바뀌더라고요."
라오스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동남아시아 최대 축구 축제 2024 아세안(ASEAN) 미쓰비시일렉트릭컵(이하 미쓰비시컵)에서 '깜짝 2무'의 성적을 낸 하혁준(54)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라오스는 세계 축구의 변방인 동남아에서도 최약체로 분류되는 팀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186위에 불과하다.
이런 라오스 감독으로 지난 8월 부임한 하 감독은 불과 4개월 만에 치른 국제대회인 미쓰비시컵에서 인도네시아(3-3), 필리핀(1-1)을 상대로 예상 밖 무승부를 지휘해내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 감독의 '친한 형'이기도 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 올라가 있는 동남아의 강호다.
필리핀은 이번 미쓰비시컵에서 4강까지 오른 '다크호스'였다.
라오스 대표팀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2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하 감독은 "일단 선수들의 체력이 너무 부족했다. 20m를 오가는 셔틀런을 우리나라 중학생들이 50회 정도 하는데, 라오스는 국대 선수들이 40회밖에 못 했다"며 '한숨'부터 나왔다던 첫 훈련을 떠올렸다.
일단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 하 감독은 훈련기간을 늘려달라고 라오스축구협회를 설득했다.
골 넣고 기뻐하는 라오스 선수들 |
미쓰비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최소 3개월은 필요하다고 요청했으나 선수들 소속팀이 받을 재정적 부담 탓에 이뤄지기 어려웠고, 결국 하 감독이 확보한 훈련기간은 '25일'에 불과했다.
체력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과제는 선수들의 '투쟁심'과 '의지'를 일깨우는 일이었다고 한다.
라오스 대표팀 선수들에게 축구는 '생업'과 '취미' 사이 어딘가에 있는 활동이다.
대부분 선수가 '투잡'을 뛰며, 상당수는 축구를 동호회 활동 수준으로 배운 대학생들이다.
인도네시아전에서 라오스의 두 번째 골을 넣은 등번호 '10번'의 에이스 파타나 폼마텝은 택시 기사가 본업이다. 오전에 사납금을 다 채워야 오후 대표팀 훈련에 참여할 수 있었다.
미얀마와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넣은 토니 웬파세웃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8개 구단으로 구성된 라오스 리그에서 '세미프로 구단'이라 할 만한 팀은 상위 3팀에 불과하다고 한다.
애초 축구로 성공한다는 것 자체가 라오스 선수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였다.
이런 선수들에게 '축구로 부자가 되는 로드맵'을 제시한 하 감독이다.
이 로드맵은 실제 '현실'이 되고 있다. 미쓰비시컵을 마친 뒤 라오스 핵심 선수들을 두고 태국 무앙통 유나이티드 등 '동남아 빅클럽'들의 영입 제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하 감독은 "동남아가 축구 열기가 높다지만, 라오스 축구팬들은 유럽 축구 중계를 보지 라오스 대표팀 경기엔 관심이 없었다더라"면서 "이번 미쓰비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 대표팀 인기가 많이 올라갔다. 우리가 따낸 승점 2점은, 라오스 축구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승점 2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역 시절 프로 무대도 밟지 못한 하 감독은 사실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지도자는 아니다.
동아대를 졸업하고 실업축구 한국주택은행에서 2년 정도 뛰다 무릎 부상으로 일찍 현역 생활을 접었다.
이후 일본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장쑤 쑤닝(중국) 피지컬코치, 수원 삼성 피지컬코치 등을 거쳤다.
하혁준 라오스 축구대표팀 감독 |
성인팀 감독을 맡은 건 2023년부터 올해까지 홍콩 리소시스캐피털을 이끈 게 처음이다.
아시아 변방에서 3년째 사령탑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하 감독이다.
"착하기만 한" 라오스의 제자들에게 승리욕을 심어주면서, 하 감독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됐다.
다음 목표는 오는 12월 열리는 동남아시안게임(SEA게임)에서 라오스를 결승에 진출시키는 것이다.
라오스축구협회 관계자들마저도 실현이 어려운 목표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고 한다.
하지만 하 감독은 정말 자신 있는 눈치다.
"인도네시아랑 3-3으로 비긴 걸 두고 어떤 팬이 SNS에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신태용 감독이 삼류 감독한테 발렸다'라고…. 저 아직 삼류인가 봐요. 하하. 더 잘해서 더 유명해지겠습니다!"
a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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