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시즌 준비하는 ‘아이언 맨’ 임성재
‘아이언 맨’ 임성재(26)는 겨울을 맞아 국내에서 휴식 중이다. ‘아이언 맨’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얻은 애칭. 골프는 공이 잘 안 맞는 이유가 108가지나 된다는 이른바 ‘백팔번뇌’ 스포츠다. 우승한 선수가 다음 대회에서 예선 탈락하거나, 첫날 68타 친 선수가 다음 날 80타를 치기도 한다. 전반 9홀에서 9타를 줄였는데 후반 9홀에서 다 까먹기도 한다. 몸이 아픈데 최고 성적을 올리기도 하고, 컨디션은 좋은데 ‘이상하게’ 안 풀려서 망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임성재는 2019년 PGA 투어 데뷔 이후 6년 연속 페덱스컵 순위 30위까지만 진출하는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에 나섰다. ‘일관성의 제왕’이자 ‘돌부처’인 셈이다. 메이저 2승 포함 6승을 거둔 콜린 모리카와(27·미국)는 “임성재처럼 언제나 똑바로 치는 티샷 능력이 있다면 정말 골프가 쉬워질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래픽=김하경 |
임성재는 훈련을 통해 다져온 자신만의 스윙을 믿는다. 백 스윙 시작(테이크 어웨이)에서 일자로 잘 빠진 샤프트 궤도가 다운스윙 때 같은 위치로 움직인다면 실수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올해 그린 주변 30야드 이내 스크램블링(레귤러 온을 하지 못했을 때 파 이상 성적을 거두는 것) 능력 2위에 오를 정도로 쇼트 게임도 뛰어나다.
임성재는 미국에서 스윙 코치를 따로 두지 않았다. 고교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최현 코치에게 스마트폰으로 샷 영상을 보내 조언을 받고, 비시즌에 최 코치 팀에 들어가 함께 훈련하는 정도. 어린 시절부터 매 대회를 관찰한 아버지 임지택씨 의견도 도움이 된다. 건축 관련 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거의 매 대회 모든 샷과 퍼팅 패턴을 직접 분석해 충고한다. “샷이 어느 방향으로 치우치거나 짧거나 길거나 하는 패턴을 알면 경기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남의 말에 홀려서 갑자기 뭘 바꾸거나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평소 자기 경기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자신도 모르게 오는 변화를 잡아내 스윙 궤도나 타이밍이 일탈하지 않게 조정한다. 꾸준히 실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실력을 대회에서 발휘할 능력을 갖추는 게 핵심이다. 임성재는 “거창한 목표 대신 전 대회 예선 통과를 목표로 삼고,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 싶으면 필요한 변화를 주는 나만의 느낌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늘 투어 생활을 함께 해주는 아내가 고맙고 행복하다”고 했다. 미 뉴욕대에서 음악을 전공한 아내와 2년 전 가정을 꾸렸다. 심리적 안정감도 더했다.
올 시즌은 기복이 있었다. 시즌 개막전 더 센트리 대회에서 PGA 투어 72홀 최다 버디 기록(34개)과 함께 공동 5위에 올랐다. 시작은 좋았다. 그런데 이후 3개월은 부진했다. 컷 탈락이 잦아지고 40~50위에 머무르기 일쑤. 마스터스에도 컷 탈락했다.
임성재는 “의욕적으로 시작한 시즌이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와서 ‘슬럼프에 빠진 것 아닌가’ 두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샷이 잘 안 풀려도 좀처럼 타수를 잃지 않는 관리 능력이 최대 장점인 그답지 않았다. 드라이버를 잘 치면 아이언이 안 맞고, 그린에 공을 잘 올려놓으면 어이없게 짧은 퍼트를 놓쳐 보기를 하곤 했다. 실수가 이어지자 퍼팅을 할 때마다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과감히 변화를 선택했다. 마스터스 다음 대회인 RBC헤리티지에서 퍼팅 루틴을 바꿨다. “퍼팅 라인을 결정하면 최대한 빨리 치자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안 들어갈 텐데 생각보다 1초라도 더 빨리 치자’고 되뇌며 했다. 그런데 중장거리 퍼팅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성적이 급반등했다”고 했다. 정규 시즌을 9위로 마치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선전해 페덱스컵 7위로 창대하게 마쳤다.
올해 인상 깊었던 선수로는 스코티 셰플러(28·미국)와 마쓰야마 히데키(32·일본)를 꼽았다. 셰플러는 “우승 물꼬를 튼 뒤 자신감을 갖고 경기하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마스터스(2021년)에서 우승한 마쓰야마는 “큰 대회일수록 오히려 하나도 다르지 않게 준비하려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제 그는 내년이면 투어 프로 10년 차다. 한국과 일본 투어에서 2년, PGA 2부 투어 콘페리 투어 1년, 그리고 PGA 투어 7년째다. PGA 투어 통산 상금이 2989만9508달러로 3000만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페덱스컵 보너스와 이벤트 대회 상금은 제외한 공식 대회 상금만 따진 규모다.
한국인 PGA 투어 최다 상금 기록(최경주 3280만3596달러) 경신은 시간문제. 내년은 그에게 역사적인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올해의 교훈을 살려 늘 하던 대로 하겠다”는 말했다. 내년 1월 3일 하와이에서 열리는 2025시즌 개막전 더 센트리 참가를 위해 29일쯤 출국할 예정. 총상금 2000만달러 특급 대회라 임성재의 3000만달러 돌파 소식이 새해 벽두부터 전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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