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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유준상 기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전설적인 타자 중 한 명인 리키 헨더슨이 세상을 떠났다.
AP통신은 22일(이하 한국시간)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자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드오프로 여겨지는 헨더슨이 폐렴 증상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인근 병원에 입원했다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향년 65세.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에 따르면, 이날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성명을 통해 "헨더슨은 여러 세대의 팬들에게 도루와 리드오프의 정석이었으며, 가장 사랑받는 애슬레틱스 선수 중 한 명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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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2월 25일 시카고에서 태어난 헨더슨은 7살 때 오클랜드로 이사했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 농구, 미식축구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미국프로풋볼(NFL)에 진출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야구를 택했고, 자신의 고향 팀에서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7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애슬레틱스의 4라운드 지명을 받은 헨더슨은 1979년 빅리그에 데뷔했으며, 20년 넘게 빅리그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오클랜드, 토론토 블루제이스, 오클랜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뉴욕 메츠, 시애틀 매리너스, 보스턴 레드삭스, LA 에인절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력도 화려하다. 그는 통산 3081경기에 출전해 10961타수 3055안타 타율 0.279 297홈런 1406도루 2295득점 출루율 0.401 장타율 0.419의 성적을 남겼다. 올스타에 10회 선정됐으며, 1990년 아메리칸리그 MVP, 실버슬러거 3회 수상, 월드시리즈 우승 2회, 골드글러브 1회 수상 등을 경험했다. 특히 1980년(100개), 1982년(130개), 1983년(108개) 단일 시즌 100도루 고지를 밟으면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대도로 발돋움했다.
1991년 5월 2일에는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939번째 도루를 만들면서 1960~1970년대에 활약한 루 브록(938개)을 뛰어넘고 빅리그 통산 도루 1위로 올라섰다. 이후에도 도루 468개를 추가하는 등 오랫동안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녔다. 현역 은퇴 후에도 가치를 인정받은 헨더슨은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오른 2009년 94.8%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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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헨더슨과 함께 우승을 경험한 오클랜드는 "헨더슨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마음이 아프다. 애슬레틱스 팬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이 상실감을 느낄 것"이라며 "헨더슨은 역대 최고의 야구선수 중 한 명이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구단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선수였다. 경기장에서의 업적이 그 자체를 말해준다"고 애도를 표했다.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헨더슨은 가장 뛰어나고 사랑받는 선수였다. 속도, 힘, 엔터테인먼트를 상징하며 경기를 이끌었다. 많은 팬들로부터 존경받았다"며 "메이저리그를 대표해 그의 가족, 친구, 전 팀동료들, 애슬레틱스 팬들, 전 세계 팬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리키 헨더슨의 아내인 파멜라 헨더슨은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리키 헨더슨은 경기장 안팎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겸손하고, 또 정직하게 살았다. 야구에 대한 그의 사랑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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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 EPA/연합뉴스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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