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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 고통,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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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 고통,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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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급등기, 저가 상품이 고가 상품보다 3배 더↑
지난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코로나19 이후 저가 상품 가격이 고가 상품보다 더 크게 오르는 ‘칩플레이션’(cheapflation)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칩플레이션은 가격이 낮다는 의미의 ‘칩’(cheap)과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이는 고물가 시기 저렴한 상품을 주로 소비하는 취약계층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컸다는 의미로, 소득계층간 인플레이션 불평등이 심화됐다고 볼 수 있다.

한은은 18일 ‘팬데믹 이후 칩플레이션(Cheapflation)과 인플레이션 불평등’ 보고서에서 2020년 1월~2023년 9월 가격이 싼 저가(1분위) 상품의 가격은 16.4% 상승했으나 고가(4분위) 상품의 가격은 5.6% 상승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싼 상품의 가격이 비싼 상품보다 3배 가량 많이 오른 것이다.

이번 분석은 대한상공회의소의 데이터를 활용, 2019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가공식품 81개 품목을 조사해 적용했다. 예를 들어 같은 라면이라도 브랜드마다 다른 가격, 판매처마다 다른 가격을 반영해 가격 수준별 상승률을 계산했다.


분석 결과, 저가와 고가 상품간 가격 상승률 격차는 2020년 코로나 이전에는 미미했으나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물가가 급등하자 격차도 커졌다.

특히 가공식품의 물가상승률이 10%로 정점에 달했던 2023년 2월의 경우 저가 상품 상승률은 8.2%였으나 고가 상품의 가격 상승률은 3%에 그쳤다. 2021년 2월만 해도 고가와 저가 상품의 가격 상승률 격차가 1.5%포인트에 불과했으나 2년이 지난 시점에 5%포인트 넘게 벌어졌다. 그만큼 저가 상품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의미다.

한은은 저가 상품 물가가 더 많이 오르면서 소득분위별 체감(실효) 물가상승률 불평등도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2019년 4분기~2023년 3분기 소득상위 20%인 5분위 계층의 누적 체감 물가상승률은 11.7%였으나 소득하위 20%인 1분위 계층의 누적 체감 물가상승률은 13.0%로 더 높았다. 저소득층이 저가 상품을 더 많이 사면서 저소득층의 ‘물가 고통’이 고소득층보다 상대적으로 컸다는 의미다.


한은은 칩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 급등을 꼽았다. 저가 상품이 대체로 원재료 조달 비용을 낮추기 위해 국내산 재료보다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수입 원자재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당시 글로벌 공급 정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수입 물가는 급격히 상승했다. 물가가 오르자 저가 상품으로 수요가 몰려 해당 상품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더 높아졌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다만 물가 상승률이 떨어지는 디스인플레이션 시기에는 상품 가격대별 상승률 격차도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강철 한은 물가동향팀 차장은 “통화정책으로 물가안정 기조를 유지하는 게 저소득층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길”이라며 “정부는 정책 측면에서 물가 급등 시기에 수입 원자재 가격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할당관세를 실시하거나 중·저가 상품에 집중해 선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