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도루왕'을 향해 달리는 두산 정수빈. 배영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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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정수빈의 어깨가 내년부터 조금 더 무거워진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붙박이 주전 3루수였던 허경민이 자유계약선수(FA)가 돼 지난달 KT 위즈로 이적했다. 2022년 NC 다이노스로 떠난 박건우에 이어 허경민마저 팀을 옮기면서 두산이 자랑하던 '1990년생 트리오'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두산에 남은 건 정수빈뿐이다.
최근 잠실구장에서 만난 정수빈은 "어릴 때는 데뷔(2009년) 때부터 함께한 건우, 경민이와 끝까지 한 팀에서 뛰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야구를 오래 하면서 선배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모습을 보니 '헤어짐'은 인생의 순리라는 걸 깨닫게 됐다"며 "이제 동기가 한 명도 없어서 외롭겠지만, 어쩔 수 없다. 앞으로 내 역할을 잘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때 '잠실 아이돌'로 불렸던 정수빈은 어느덧 팀 내 최고참급 선수가 됐다. 포수 양의지(37)와 외야수 김재환(36)에 이어 세 번째로 나이가 많다. 최근 트레이드로 두산에 온 스무살 외야수 김민석은 "어린 시절 가장 처음 유니폼에 이름을 새긴 선수가 정수빈 선배님이었다. 많은 걸 배우고 싶다"고 했다.
정수빈은 "그 얘기를 듣고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구나' 싶었다. 그래도 그동안 야구를 못한 것 같진 않아서 다행"이라며 "나 역시 어린 시절 이종욱(삼성 라이온즈 코치) 선배 같은 분을 보고 '닮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성장했다. 이제 다른 선수가 그런 말을 하니 기분이 묘하다"며 웃었다.
'마흔 살 도루왕'을 향해 달리는 두산 정수빈. 배영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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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빈은 데뷔 16년째를 맞은 올 시즌에도 건재했다. 지난해 신설된 KBO 수비상 외야수 부문을 수상했고, 도루 52개를 해내 데뷔 후 처음으로 50도루를 넘겼다. 그는 "어릴 때부터 수비로 칭찬을 많이 받았고, 나 자신도 자부심이 있어서 수비상은 꼭 받고 싶었다"며 "야구 관계자분들께 인정받은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특별한 이정표도 세웠다. 팀 후배 조수행(64개)과 함께 KBO리그 역대 최초의 '50도루 듀오' 탄생을 알렸다. 정수빈과 조수행이 합작한 도루 116개는 올 시즌 삼성(113개)·롯데 자이언츠(105개)·NC(104개)·키움 히어로즈(71개)·한화 이글스(69개)·KT(61개)의 팀 도루 수보다 많다.
정수빈은 "KBO 사상 최초의 기록이 우리 팀에서 나왔고, 그 안에 내 이름이 들어갔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웠다"며 "어릴 때는 팀 타격이 워낙 강해 도루를 자제하는 게 나았다면, 지금은 아무래도 예전보다 팀에 기동력의 힘이 더 필요한 시기다. 나 역시 그 부분을 생각하면서 더 많이 뛰려 했고, 감독님도 그렇게 주문하셨다"고 털어놨다.
2024 KBO 수비상 외야수 부문을 수상한 정수빈.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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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루 도루에 성공하는 정수빈(오른쪽).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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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정수빈은 자신의 '발'로 KBO리그에 뚜렷한 족적을 남길 생각이다. 역대 최고령을 넘어 최초의 '마흔 살 도루왕'에 오르는 게 꿈이다. 그는 지난해 도루 1위(39개), 올해 도루 2위였다.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주력이 녹슬기는커녕 도루 수가 더 늘었다. 정수빈은 "은퇴하기 전까지 '발이 느려졌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마흔에도 지금처럼 두려움 없이 뛸 수 있게 잘 극복하려고 한다"며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경쟁력 있는 선수로 남고 싶다"고 했다.
정수빈은 2021시즌을 앞두고 두산과 6년 최대 56억원에 사인했다. 두산은 '숫자'로 표현되는 기록 그 이상의 존재감을 보고 정수빈의 가치를 판단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투자는 확실히 성공적이다. 이제 남은 계약 기간은 2년이다.
두산 유니폼에 애착이 큰 정수빈은 '언제까지나 팀에 남고 싶다'는 말 대신 남다른 의미가 있는 목표를 꺼내 들었다. "두산 프랜차이즈 선수 최다 안타·경기·득점·도루·3루타 기록을 모두 내 이름으로 바꿔서 팀에 새 역사를 남긴 다음 은퇴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선수와 팬이 하나가 돼야 서로 시너지 효과가 난다. 팬분들도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며 "나 역시 내년에 더 열심히 뛰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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