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갈등을 겪는 부부의 사례만을 방송에 담는 이혼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두고 “자극적인 모습으로 시청률만 올리려 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방송이 싸움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혼과 관련한 올바른 인식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진은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에 출연한 정대세, 명서현 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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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혼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방송가 또한 이혼이라는 소재를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자극적인 부부 갈등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이혼에 부정적 인식을 덧씌우고 가족 해체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미디어가 갈등 위주의 편집 대신 한부모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되짚어보고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극단적인 부부 갈등만 초점…시민단체 “자녀들은 두 번 충격”
이혼 소재의 예능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시민단체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이혼 등의 이유로 발생한 한부모가정을 지원하는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전미현 고양시지부 회장은 28일 본지에 “방송을 통해 사회적으로 개선점을 시사하는 게 아니라 자극만 줘서 시청률만 올린다”며 “이혼을 안 한 분들이 볼 때는 ‘저런 걸로 이혼할 수 있구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작 이혼한 당사자들이 방송을 본다면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먼저 출연진의 선정 기준을 지적했다. 일상적으로 보기 힘든 극히 극단적인 사례의 대상자들이 주요 사연으로 선정된다는 것이다. 전 회장은 “매우 극단적인 사례로 이혼을 하는 사람만 출연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하고 있다”고 자녀 정서에 끼칠 영향을 걱정했다. 그는 “유튜브가 발달한 시대에 자녀들이 부모의 심각하고 적나라한 모습을 다 본다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자녀들은 두 번의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라며 “부부는 헤어지면 남이지만 부모와 자녀는 영원히 끊어질 수 없다. 자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방송 콘텐츠는 심의를 받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일침했다.
JTBC '이혼숙려캠프'를 통해 갈등을 공개한 부부의 모습. 이들은 쉴 새 없이 서로 욕하고 몸싸움까지 하는 모습으로 '투견 부부'라고 불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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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JTBC ‘이혼숙려캠프’를 통해 눈만 마주치면 싸워 ‘투견부부’라는 별명을 얻은 부부는 서로 도 넘은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고, 쌍방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에게 집에서 배변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싸움으로 인해 경찰 신고까지 수차례 들어왔다.
지난해 방송된 MBC ‘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에서는 의붓아버지가 거부 의사를 여러 차례 드러낸 딸을 성추행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사회적 논란을 빚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방송분에 법정 제재인 ‘주의’를 의결했다. 또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은 정대세 부부가 가상 이혼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어린 아들이 “슬프다”고 우울한 모습을 보여 아동 학대 논란을 불렀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일상생활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 회장은 “사실 평범한 쇼윈도 부부들도 주변에 많이 있지 않나, 이런 부부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며 “그런 사례를 보여주는 방송을 시청하며 오히려 ‘나는 그에 비하면 100점짜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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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안 하는 것만이 답?”
이혼 결심을 돌아보게 한다는 기획의도에도 문제점을 짚었다. 전 회장은 “극단적인 갈등을 겪다가 다시 합쳐서 살아가는 게 답이냐”라고 반문했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 결심하는 건 본인의 선택이자 자유인데 오로지 이혼율을 낮추고자 이혼이 나쁘고 불행하다는 인식을 조장한다는 지적이다. 전 회장은 “이혼은 용기 있는 선택일 수도 있다. 이혼 대신 가정을 유지하면서 상처를 자식한테 대물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강조했다.
방송들의 기획의도에는 ‘결혼은 최선이고 이혼은 무조건 피해야 할 수단’이라는 전제 조건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방송들을 보면 누가 결혼을 하고 싶겠나. 저럴 바에는 이혼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하는 게 상책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라고 일침했다.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 이혼은 무조건 부정적이라는 인식을 주기보단 부모와 자녀 모두 새출발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결론이다. 미디어가 부정적인 갈등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선진국 사례를 들여다보는 등 한부모가정에게 절실한 지원이 무엇일지 인식 개선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
◆“긍정적인 방식 고민해야” 전문가 지적
미디어 전문가 사이에서도 자극적인 이혼 콘텐츠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저널리즘을 연구하는 홍남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미디어 전문 월간지를 통해 이혼 예능을 두고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 고조와 갈등의 순간은 방송을 통해 극화되고 과장된다”며 “이혼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거나 누군가의 귀책 요소를 찾는 과정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여기에 방송이 이혼의 책임 판단을 시청자에게 넘겨 출연자를 악플 등의 적나라한 비판에 노출시키는 결과를 야기한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이혼 예능이 부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와 다르게 싸움과 갈등 위주의 편집으로 자극적인 재현을 반복한다고 문제 삼았다. 방송가를 향해 홍 교수는 “삶의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개인에게 힘을 부여하고, 가족의 다양한 모습과 소통의 여러 방식을 제시하는 등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위한 재현의 새로운 상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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