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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3000만원 후원하시면 회장직 드릴게요” 회장 출연금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체육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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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만원 후원하시면 저희 체육단체 회장 자리 드리겠습니다.”

한 체육대학 교수가 모 단체로부터 받은 제안이다.

스포츠월드

신명주 대한사격연맹 회장이 지난 7월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31대 대한사격연맹 회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월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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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회장이 될 수 있는 세상’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체육계의 현주소다. 대부분의 체육 단체들은 회장의 출연금에 의존해서 운영되고 있다. 회장이 출연금을 많이 내면 해당 종목의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만 회장이 없거나 출연금을 많이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선수에게 돌아갈 지원금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밀리기까지 한다.

실제로 대한사격연맹의 처한 상황이 그렇다. 2002년부터 20년 넘게 회장사를 맡아 온 한화그룹이 지난해 11월 사격계를 떠나면서 사격연맹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기 불황 속에 회장사를 맡을 기업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고, 어렵게 지난 6월 경기도 용인시에서 종합병원을 운영하던 신명주 병원장을 신임 회장으로 추대했다. 회장사의 규모가 줄었으니, 지원도 줄었다. 그럼에도 한국 사격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썼다.

출연금 3억원을 약속한 신 회장이 떠났다. 병원 직원 임금 체불 사태가 공론화되자 출연금을 내지 않고 사퇴했다. 수십억원대 임금 체불한 신 전 회장은 수백억대의 부동산을 처분해 변제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으나, 법리상 임금체불 피해자들의 미지급금 등을 순차적으로 갚는 게 먼저이기 때문에 사격연맹이 실제 출연금을 받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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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주 대한사격연맹 회장이 지난 7월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31대 대한사격연맹 회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월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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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러니 새 회장을 찾기도 쉽지 않고, 파리 올림픽 사격 메달리스트들의 포상금 지급도 미뤄지고 있다. 사격연맹은 연맹 진흥기금에서 재원을 마련해 올림픽 메달리스트 7명과 지도자에게 3억1500만원의 올림픽 포상금을 주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이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심의를 통과해야 유용할 수 있다. 정해진 기한 없이, 포상금 지급이 늦어지고 있는 배경이다. 사격 연맹 관계자는 “문체부에서 승인 후 바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감독들을 통해 선수단의 양해를 구한 상황이다. 문체부의 최종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처럼 체육 단체가 휘청이는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능력 있는 회장사가 들어오지 않거나, 후원사를 섭외하지 못하면 단체를 안정적으로,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는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안세영(삼성생명)에게 후원사 신발, 용품을 사용할 것을 강제한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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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용 대한민국족구협회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민수 충북족구협회 사무국장, 김종민 대한킥복싱협회장, 이민규 대한사격연맹 차장, 김병철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 위원장, 김택규 대한배드민턴 협회장, 민경국 스포츠 에이전시 대표, 장재근 진천선수촌 촌장, 홍 대한민국족구협회장.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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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체육 단체 관계자는 “어려운 경기에 대기업들도 체육 단체 지원을 축소하고 있다. 인기 있는 양궁도 올림픽, 아시안게임에서 잠깐 반짝 주목을 받을 뿐이나 회장사가 탄탄하니 기반을 다져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다”면서 “비인기 종목은 더욱 족쇄가 채워진다. 어렵게 회장을 모셔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단체의 회장이 될 때 재산이나, 채무를 필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회장의 후원을 받지 못하면 후원사를 섭외해야 하는데, 후원사라면 당연히 스타 선수가 용품을 사용하길 원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수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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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수 국회 문화체육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등 국정감사를 개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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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이 출연금을 얼마나 내는지, 스폰서를 얼마나 끌어오는지에 따라 단체의 지원 차이가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능력 있는 회장이 계속 권력을 쥐게 된다. 이는 정부가 규정한 ‘스포츠 4대 악’ 중 조직 사유화가 일어나는 배경이기도 하다. 병폐들은 고칠 필요가 있다.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국민들은 지난달 열린 국정감사에서 체육 단체장들을 향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국회의원들을 기억한다. 지적하는 것만이 그들의 역할이 아니다.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들이 해야할 일이다. 국회의원, 정부, 체육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체육 단체들이 올바르게 존립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왔다.

최서진 기자 westji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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