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5 (월)

“선수는 즐겁게, 스트레스는 감독 몫”… 이범호의 ‘친구 리더십’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새 감독의 새 리더십
MZ 선수, 눈치 안 보는 환경 조성
내가 틀렸다 생각되면 설명·사과
김도영, 훌륭한 인물로 성장 기대

리그 2연패를 향하여
경쟁보다 분업… 선순환하게 준비
부상 대비 대체선수·필승조 구상
이의리 돌아올 내년 6월쯤 승부수


‘친구가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스승이 될 수 없다.’ 올해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를 통합우승으로 이끈 초보 사령탑 이범호(43) 감독의 리더십은 ‘형님’보다 ‘친구 같은 스승’을 뜻하는 사우(師友)에 가깝다. 그의 철학은 현역 시절에 기반한다. KBO리그 정규시즌 통산 2001경기 1727안타 329홈런의 ‘스타 선수’ 출신인 이 감독은 명확한 위계질서 속에서 지도자들에게 질책을 들었던 경험을 통해 선수들을 위한 방식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부임 첫해 리그 정상에 오르는 성과를 이뤘다.올 시즌을 앞두고 2년 총액 9억원의 조건에 국내 최연소 사령탑으로 KIA 지휘봉을 잡은 그는 우승 이후 3년 최대 26억원에 재계약했다. 팀 문화를 탈바꿈한 지도력을 인정받아 국내 최고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이 감독은 “이번 계약도 기쁘지만 1980년대생 감독 타이틀을 처음 달았을 때의 의미가 더 컸다. 구단이 검증되지 않은 젊은 지도자를 과감히 발탁했기 때문에 저는 성적을 통해 보답해야 한다”며 내년 리그 2연패를 다짐했다. 그를 24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서울신문

지난 18일 2024시즌 통합우승 기념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신문 본사를 방문한 이 감독의 모습. 박지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범호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형님’이라는 평가가 많은데 ‘친구’에 가까워 보인다.

“명칭이 중요한 건 아니다. 선수 때 많이 혼나고 2군행도 통보받으면서 오히려 그런 압박이 개인 성장을 방해한다는 걸 배웠다. 특히 MZ세대는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아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그래서 선수들이 눈치 안 보고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지난 2월 호주 스프링 캠프 도중 갑작스레 지휘봉을 잡았다.

“타격코치로 운동하는 모습을 봤을 때 선수들의 의지만 꺾이지 않으면 높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철저하게 선수 중심으로 시즌을 준비하면서 팀 분위기를 안정시켰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감독직을 맡았지만 최고의 선수단, 프런트를 만나 자신 있게 시즌을 치렀다. 덕분에 지도자의 덕목을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서울신문

이범호(오른쪽) KIA 타이거즈 감독이 현역 선수였던 2017년 10월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두산 베어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만루 홈런을 친 뒤 껑충 뛰며 환호하고 있다. 당시 KIA는 4승1패의 성적으로 정상에 올랐다. 이후 7년 만에 KIA 사령탑에 오른 이 감독은 부임 첫해 권위의식을 내려놓는 ‘친구 리더십’으로 구단에 열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고졸 신인 출신 김도영(21)이 데뷔 3년 차에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거듭났는데.

“팀을 맡고 나서 도영이에게 안타를 치고 도루하기보다는 한 번에 홈런을 때리라고 했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질책하지 않을 테니 빠른 배트 속도를 살려 장타력을 뽐내 보라는 의미였다. 내년 성적이 더 좋아질 수도, 하락할 수도 있지만 도영이는 야구 잘하는 선수를 넘어 훌륭한 인물로 성장할 것이다. 올해가 그 출발점이다.”

-정규시즌 중 실책을 저지른 김도영을 교체하기도 했는데.

“문책성이 아니고 집중력과 체력 상태를 보고 판단한 결정이다. 선수가 실수했다고 뺀 경우는 한 번도 없다. 항상 모든 구성원이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했다. 제가 틀렸다고 생각하면 연습 때나 쉬는 시간에 선수에게 다가가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했다.”

서울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MBTI는 무엇인가.

“혈액형 세대라 잘 모른다(웃음). 주변에서 MBTI를 물어보면 그냥 O형이라고 답한다.”

-외국인 투수, 국가대표 좌완 이의리가 줄부상당했던 위기도 있었다.

“매년 부상 선수가 많아 머릿속에 차선책을 그리고 있었다. 황동하, 김도현에게 선발 자리를 믿고 맡겼는데 기대에 부응해 줬다. 내년에도 둘 중 한 선수가 양현종, 윤영철과 선발진을 채울 것이다.”

-불펜 핵심 장현식이 LG 트윈스로 이적했는데.

“현식이는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떠날 때도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대체 선수를 찾는 건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필승조는 부상까지 고려해 5명 이상으로 꾸릴 계획이다. 무한 경쟁보다는 분업화가 중요하다. 경쟁이 과열되면 선수들에게 욕심이 생겨 팀 분위기가 망가질 수 있다. 어차피 주전만으로 시즌을 치를 수는 없다. 주전과 후보가 각자 자기 역할을 인지하고 선순환할 수 있게 준비하겠다.”

-정규시즌 평균자책점 1위(2.53) 제임스 네일을 붙잡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빅리그 복귀를 노리는 네일이 12월 메이저리그(MLB) 구단과 협상을 시작하면 같은 달 중순 재계약 윤곽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네일은 꼭 잡고 싶다. 금액 등 협상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외부 자유계약선수(FA) 2명을 영입한 한화 이글스를 포함해 다들 약점을 보완하고 있어서 그에 맞춰 대비해야 한다.”

-내년에도 선수들이 즐거운 야구를 지향할 것인가.

“선수들이 즐거워야 열심히 뛸 수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팀이 많이 이기고 팬들도 행복해진다. 스트레스는 나를 비롯한 코치진이 떠안으면 된다. 더그아웃 에너지가 항상 충만할 수 있도록 선수들의 기분과 컨디션을 살피겠다. 젊은 자원을 육성해 장현식의 공백을 메운 다음 이의리가 돌아오는 내년 6월쯤 2연패의 승부수를 띄우겠다.”

서진솔 기자



    ▶ 밀리터리 인사이드

    - 저작권자 ⓒ 서울신문사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