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환 기자) 일본전 대패 이후 신태용 감독을 압박하는 듯한 에릭 토히르 인도네시아축구협회(PSSI) 회장의 발언이 신태용 감독에게 동기부여가 됐다는 분석이다.
토히르 회장은 인도네시아가 안방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0-4 대패를 당한 뒤 신태용 감독을 비롯해 모든 코칭 스태프들이 경기 내용 및 결과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신태용 감독의 퇴진을 외치는 팬들의 부정적인 여론과 겹치면서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신태용 감독의 위기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중동의 강호 사우디아라비아를 2-0으로 꺾고 다시 한번 자신을 증명했고, 이곳저곳에서 제기하던 신 감독의 경질론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사우디아라비아전 승리 후 인도네시아가 전술적으로 잘 준비된 덕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맞지만, 토히르 회장의 압박 아닌 압박이 동기부여로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은 19일(한국시간)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 위치한 붕 카르노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C조 6차전 홈 경기에서 자국 대표팀 슈퍼스타 마르셀리노 페르디난의 멀티골을 앞세워 2-0 승리를 거뒀다.
승점 3점을 추가한 인도네시아는 C조 최하위에서 3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3위 인도네시아부터 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중국까지 승점이 6점으로 동일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네 팀들 중 득실차(-3)가 가장 낮고, 득점(6골)은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은 인도네시아가 3위를 차지했다.
3차예선 돌입 후 5경기에서 무승(3무 2패)을 거두고 있던 인도네시아에도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신태용 감독은 인도네시아의 현실적인 목표가 3~4위를 차지해 4차예선에 오르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2위 호주와의 승점 차도 1점에 불과하기 때문에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 월드컵 본선으로 직행하는 2위 자리도 노릴 수 있는 상황이다.
'신태용 매직'이 다시 한번 힘을 발휘했다. 인도네시아는 전반 32분 특기인 날카로운 역습으로 사우디아라비아 골문에 선제골을 꽂아넣더니, 후반 12분 상대 숨통을 끊는 추가골까지 터트리며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2-0 쾌승을 거뒀다.
그 중심에는 인도네시아 대표팀의 슈퍼스타 페르디난이 있었다. 인도네시아가 자랑하는 유망주이자 인도네시아 태생 선수로는 최초로 유럽에서 뛰게 되어 인도네시아 팬들 사이에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페르디난은 전후반 각각 한 골씩 뽑아내 사우디아라비아전 승리의 주역이 됐다.
페르디난은 전반 32분 역습 상황에서 전력으로 질주해 상대 페널티 지역까지 침투했고, 라그나르 오랏망언이 내준 컷백 패스를 침착한 오른발 감아차기 슛으로 연결해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후반 12분에는 집중력이 빛났다. 페르디난은 상대 골문 근처에서 한 차례 슈팅을 시도한 것이 사우디아라비아 수비에 막히고 흘러나오자 이를 재차 슈팅으로 이어가 추가골까지 기록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교체카드를 적극적으로 뿌리면서 반격을 노렸지만 결국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인도네시아에 무릎을 꿇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인도네시아, 나아가 아세안축구연맹(AFF) 소속 국가에 패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페르디난의 맹활약은 인도네시아 팬들에게도 다가오는 의미가 크다. 인도네시아 대표팀은 최근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 선수들을 귀화시켜 대표팀으로 데려오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데, 대표팀 전체가 네덜란드 출신 선수들로 구성될 수 있는 상황에서 페르디난의 활약은 인도네시아 본토 태생 선수들과 팬들의 자존심을 올려줬다는 평가다.
경기 후 신태용 감독은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감사하다"면서 "오늘 원 팀으로 잘 플레이했고, 팬들도 하나로 뭉쳐서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선수들이 잘 해줬다. 우리는 두 골보다 더 많은 골을 넣을 수도 있었다"면서도 "이 결과에 대해 선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신태용 감독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팀 압박이 좋은 걸 고려해 3-5-2 시스템으로 전환해 최전방에 두 명의 공격수, 그리고 중원에 세 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한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짚었다. 신 감독은 "내가 지시한 대로 선수들이 잘 따라왔다"며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는 일본전 대패 후 인도네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전을 치르기에 앞서 토히르 회장이 신태용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들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경기 결과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왔다.
토히르 회장은 일본전 대패 후 현지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신태용 감독만이 아니라 모든 코칭 스태프들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일본전 대패로 인해 신태용 감독의 자리가 위험해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한편, 난감한 상황에서 축구협회의 회장이 내놓을 수 있는 원론적인 답변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인도네시아 매체 'Voi'는 "신태용 감독은 에릭 토히르 회장의 최후통첩이 동기부여가 됐다고 인정했다. 토히르 회장은 일본에 0-4로 패배한 이후 코치와 선수들을 위협했다. 신태용 감독은 토히르 회장의 발언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져오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신 감독은 토히르 회장의 불안감이 적절한 시기에 드러나 동기가 됐다고 했다"며 신 감독의 발언을 주목했다.
'Voi'에 따르면 신태용 감독은 토히르 회장의 발언에 대해 "아마도 그가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걱정해서 그런 것 같다"며 "그래서 (최후통첩을 날리며)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러나 그 시기가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도 좋은 때"라면서 "그 발언만이 아니라 선수들의 능력도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선수들이 스스로를 평가하고 단합하는 것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승리하는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김환 기자 hwankim14@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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