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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한국 여자 유도 최초 ‘그랜드슬램’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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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남녕고 2학년 17세 이현지

최중량급 주니어 무대 세계 최강… 4월 亞선수권 우승 ‘퍼즐 첫 조각’

이달 국가대표 1차 선발전도 정상

‘181㎝-133㎏’ 압도적인 체격에… 유럽 선수들과 붙어도 힘 안밀려

동아일보

제주 남녕고 2학년 이현지는 한국 여자 유도 선수 최초의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올해 4월 아시아선수권 우승으로 그랜드슬램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현지가 작년 8월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국제유도연맹(IJF) 세계유소년선수권에서 우승한 뒤 포효하는 모습. 사진 출처 IJF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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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싶다.”

올해 고교 2학년인 유도 선수가 이렇게 말했다. 당차 보이지만 다소 과한 목표 설정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현지(17)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현지는 올해 4월 아시아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르며 그랜드슬램 완성에 필요한 퍼즐 네 조각 중 하나를 이미 챙겼다. 그랜드슬램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걸 말한다.

한국 여자 유도에 ‘슈퍼 유망주’가 등장했다. 제주 남녕고 2학년 이현지가 주인공이다. 최중량급(78kg 초과) 선수인 이현지는 주니어 무대에선 이미 ‘무적(無敵)의 선수’다. 9월 아시아청소년선수권과 10월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모두 우승했다. 성인 무대에서도 실업팀 선배들을 잇달아 꺾으며 유도계를 놀라게 했다. 이현지는 이달 초 열린 2025년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엄다현(29·고창군청) 신지영(25·순천시청) 김수민(25·경남도청)을 차례로 꺾고 우승했다. 세 경기에서 모두 한판승을 거뒀다. 올 3월 트빌리시 그랜드슬램에선 2021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소네 아키라(24·일본)를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3위를 차지했다. 이현지는 “내 주특기는 허리후리기, 발목받치기다. 잡기 기술도 빠른 편”이라며 “내 기술이 아직까지는 노출이 덜 돼 통하는 것 같다. 태극마크가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기 위해선 초심을 잃지 않고 더 노력해야 한다”며 자신을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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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17년 제주컵 국제유도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뒤 아버지 이치훈 씨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이때 이미 아버지와 체격 차이가 거의 없어 보인다. 씨름 선수였던 아버지의 키는 180cm다. 이현지 선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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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유도를 시작했다. 아버지 이치훈 씨(48)는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킬 수 있어야 한다”며 딸이 어릴 때부터 수영, 합기도, 역도 등 여러 운동을 배우게 했다. 씨름 선수였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이현지는 어려서부터 체격이 남달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키 157cm, 몸무게 60kg이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전국소년체육대회를 연속 제패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22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우승했고, 고교 1학년이던 지난해엔 한국 유도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이름을 남겼다.

이현지의 가장 큰 무기는 압도적인 파워다. 키 181cm, 몸무게 133kg으로 최중량급에서도 큰 편인 이현지는 유럽 선수들과의 대결에서도 힘의 우위를 앞세워 경기를 주도해 나간다. 웨이트트레이닝도 스쾃 최대 중량 180kg, 데드리프트 230kg, 벤치프레스 100kg(1회 기준)으로 합계 510kg에 이른다. 여자 선수들 사이에선 보기 드문 수치다. 이현지는 훈련할 때도 남자 중량급 선수들과 주로 대결한다. 현후익 남녕고 코치(40)는 “현지는 근력과 기술이 아주 뛰어나다. 아직 실전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지금까지 해온 대로 연습하면 된다’는 말을 자주 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현지는 올해 파리 올림픽에 출전했던 국가대표들의 훈련 파트너로 프랑스를 다녀왔다. 이현지는 “올림픽 출전 선수들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 훈련을 돕기 위해 온 다른 팀 선수들과도 대결한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현지가 태어난 제주도에는 유도부가 있는 고교가 남녕고 한 곳뿐이어서 훈련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현지는 “파리 올림픽 기간에 국가대표 허미미 언니, 김하윤 언니를 옆에서 보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파리 올림픽 최중량급에서 동메달을 딴 김하윤은 이현지가 넘어야 할 산이다. 이현지는 그동안 김하윤과 두 번 맞붙어 1승 1패를 기록하고 있다. 김하윤은 올림픽 메달리스트 자격으로 이달 초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은 건너뛰었다. 내년 3월 열리는 2차 선발전에 나선다. 이현지는 “하윤 언니는 최중량급에선 보기 드물 정도로 좋은 발기술을 가졌다. 아직 언니에게 배울 게 많다. 좋은 경쟁자로 승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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