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하자마자 현대캐피탈에 13년 만의 KOVO컵 우승을 안기고, 개막 후 4연승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필립 블랑 감독은 “경기 전 만난 블랑 감독은 “우리팀에게 올 시즌 첫 관문이 다가온 것 같다.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두 팀이 만났다.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길 바란다. 승리하고 돌아가고 싶다”라면서 “한국전력은 조직력이 좋은 팀이다. 공격이나 수비에서 여러 시스템을 가져가는 팀이다. 우리 선수들이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는지 지켜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워낙 경기력이 막상막하인 데다 풀 세트 접전을 많이 치르는 팀이다보니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접전 양상이 예상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결과는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기선을 제압한 것은 한국전력이었다. 한국전력을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스타 서재덕이 첫 리시브를 깔끔하게 받아낸 뒤 야마토의 완벽한 토스를 받아 타점과 힘이 동반된 퀵오픈으로 현대캐피탈 코트를 두드렸다. 이어 엘리안이 이단 연결되어 올라온 공을 현대캐피탈의 쓰리 블로킹을 앞에 두고도 완벽하게 뚫어낸 뒤 신영석의 서브득점까지 터지며 3-0으로 앞서나갔다.
싱겁게 경기가 흐르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드는 순간, 현대캐피탈 선수들의 눈빛이 변했다. 신펑의 오픈 공격으로 이날 경기 첫 득점을 올린 뒤 곧바로 허수봉의 서브득점이 터지며 2-3으로 추격하며 단숨에 경기를 접전 양상으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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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은 11-9에서 단숨에 연속 5득점을 만들어내며 1세트를 완벽히 장악했다. 신펑의 오픈 공격과 허수봉의 이날 두 번째 서브득점, 레오의 오픈 공격, 최민호의 오픈 공격과 블로킹까지 연달아 터지면서 유관순체육관의 분위기를 확 올렸다. 한국전력도 타임아웃 뒤 연속 3득점에 성공하며 16-12까지 따라붙었지만, 불붙은 현대캐피탈의 경기력을 제압하지 못했다. 현대캐피탈은 1세트에만 블로킹 5개와 서브득점 3개를 터뜨리며 25-15로 압도적인 점수차로 1세트를 잡아냈다. 1세트 현대캐피탈의 공격 성공률은 68.75%, 한국전력은 39.13%에 불과했다.
현대캐피탈의 기세는 2세트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2-1에서 허수봉의 서브가 한국전력의 리시브 라인을 완벽히 흔들었다. 허수봉의 강서브를 받은 임성진의 리시브가 그대로 현대캐피탈 코트로 넘어온 것을 이준협이 최민호에게 완벽한 속공 토스를 올렸고, 최민호는 전광석화처럼 이를 처리해냈다. 반면 한국전력 신영석의 속공은 코트 밖으로 벗어났고, 레오의 오픈 공격까지 터지며 5-1로 달아나며 기선을 제압했다.
한국전력도 이대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4-7로 뒤진 상황에서 엘리안의 서브득점이 터졌다. 한국전력의 기세가 오르려는 시점에서 신펑이 이준협의 백토스를 받아 완벽한 라이트 후위공격을 성공시키며 다시 분위기를 현대캐피탈쪽으로 가져왔다. 11-7에서는 허수봉이 한국전력의 차세대 간판스타인 임성진의 파이프(중앙 후위 공격)을 블로킹해내며 임성진을 코트 밖으로 쫓아냈다.
임성진은 1세트에도 신펑과의 1대1 공격에서도 블로킹을 당하는 등 1세트 3득점을 했지만, 공격 효율이 0%였고, 2세트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권영민 감독은 그를 뺄 수밖에 없었다. 권 감독은 서재덕 대신 구교혁, 미들 블로커 전진선 대신 정성환 등 백업 선수들을 넣은 뒤 14-16까지 따라붙었다.
추격해온 한국전력의 불을 끈 것은 현역 최고의 원포인트 서버로 꼽히는 이시우였다. 18-15에서 코트에 들어선 이시우는 전매특허의 스파이크 서브로 한국전력 리시브 라인을 흔들었고, 야마토가 열심히 따라가 엘리안에게 공을 올렸지만 엘리안의 스파이크는 블로커들의 터치 없이 코트 밖으로 한참을 벗어났다. 권 감독은 이시우의 서브 타이밍을 흔들고자 타임아웃을 썼지만, 이시우의 서브는 또 한 번 한국전력 리시브를 흔들었고, 공격 시도 없이 현대캐피탈에게 공을 넘겨줬고, 이는 곧 허수봉의 시원한 퀵오픈 득점으로 연결됐다. 이어 이시우의 강서브가 또 한 번 터졌고, 박승수의 공격을 최민호가 블로킹해냈다. 순식간에 21-15로 점수차가 벌어졌다. 서브득점은 없었지만, 원포인트 서버가 어떻게 경기 양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시우타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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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를 잡은 현대캐피탈은 이후 안정적으로 리드를 이어갔고, 김주영의 서브범실로 2세트도 25-17로 손쉽게 잡아냈다.
3세트 들어 한국전력은 현대캐피탈의 타오르던 분위기에 제동을 걸었다. 원동력은 블로킹이었다. 5-4박빙의 리드에서 현대캐피탈 토종 에이스 허수봉의 두 번의 공격을 야마토와 신영석이 잡아낸 게 컸다. 이어 서재덕의 노블록 시간차 공격이 터지며 8-5로 앞서나갔다. 리시브도 흔들리고, 장점인 공격마저 흔들린 허수봉은 전광인과 교체되어 웜업존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3세트 들어 임성진도 살아났다. 13-10에서 리베로 김건희가 가까스로 걷어올린 공을 야마토가 임성진에게 퀵오픈 토스로 연결했고, 이를 임성진이 상대 투 블로킹을 뚫어냈다. 15-11에선 레오의 가운데 백어택을 신영석이 가로막아냈고, 이어 임성진의 서브득점까지 터지며 17-11로 달아나며 승기를 굳혔다. 이후 안정적으로 리드를 이어간 한국전력은 24-19에서 신영석의 속공으로 승부를 4세트로 끌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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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트는 초반부터 일진일퇴의 접전 양상으로 흘렀다. 이 양상에 균열이 난 것은 현대캐피탈 주 공격수들의 공격 범실이었다. 4-4에서 레오의 오픈 공격 2개가 연이어 범실이 난데 이어 6-8에서 허수봉의 오픈도 코트 밖으로 벗어났다. 블랑 감독은 또 다시 허수봉을 불러들이고 전광인을 투입했지만, 전광인의 퀵오픈도 범실이 되며 한국전력이 10-6으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현대캐피탈도 야금야금 추격전에 나섰고, 10-13에서 전광인의 파이프와 엘리안의 공격 범실을 묶어 다시 1점차 승부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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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점과 한 점 차를 오가는 접전은 세트 후반까지 계속 됐고, 이에 균열을 먼저 낸 것은 현대캐피탈 레오였다. 레오는 20-20에서 엘리안의 공격을 혼자 떠올라 막아냈다. 쿠바 출신끼리의 자존심 싸움에서 ‘형’ 레오가 완승을 거둔 것이다. 그러자 엘리안은 22-22에서 레오의 블로킹을 앞에 두고 라이트 백어택을 성공시키며 ‘멍군’을 외쳤다. 레오도 곧바로 공격을 성공시켜 23-23을 만들었다.
세트 후반은 결국 쿠바 출신 외국인 선수들의 해결 능력에서 갈렸다. 23-23에서 레오가 자신의 서브로 한국전력 리시브 라인을 완벽히 흔들어 상대가 공격도 못하고 공을 넘기게 만든 뒤 황승빈의 토스를 받아 완벽한 파이프 공격을 성공시키며 24-23, 매치포인트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레오의 서브가 범실이 되며 24-24, 듀스에 돌입했다. 그리고 승부처 집중력에선 5세트로 끌고가고 싶어하는 한국전력이 더 강했다. 엘리안의 백어택으로 세트 포인트를 만든 한국전력은 신영석이 레오의 백어택을 가로막아내며 기어코 승부를 5세트까지 끌고갔다.
길었던 승부를 매조지할 5세트. 기선 제압은 현대캐피탈의 차지였다. 신펑이 엘리안과의 1대1 승부에서 ‘원맨 블로킹’에 성공하며 선취점을 따냈다. 이후 한점씩 주고받는 공방전이 펼쳐졌다. 4-4에서 레오가 하이볼을 완벽한 오픈 강타로 처리한 뒤 정태준이 엘리안의 강타를 블로킹해내며 현대캐피탈이 6-4로 먼저 두 걸음 달아났다. 이어 8-6에서 원포인트 서버로 코트를 밟은 이시우가 또 한 번의 ‘시우타임’의 진가를 느끼게 하는 완벽한 서브에이스로 유관순체육관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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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5세트만 3경기를 치러 모두 이겨낸 한국전력도 이대로 물러나진 않았다. 서재덕의 퀵오픈과 엘리안의 오픈, 허수봉의 공격 범실로 기어코 9-9 동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10-10에서 허수봉의 공격을 정성환이 블로킹해내며 11-10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12-12에서 임성진의 퀵오픈이 터진 데 이어 13-13에서 엘리안의 백어택으로 한국전력이 먼저 매치포인트에 도달했다. 현대캐피탈도 레오의 공격으로 14-14, 듀스로 승부를 끌고가는 데 성공했다.
시즌 첫 맞대결부터 끝에 끝까지 도달한 승부. 현대캐피탈은 레오에게 공을 집중했고, 한국전력은 엘리안과 임성진의 쌍포로 맞서며 22-22까지 한 점씩을 주고받는 승부가 계속 이어졌다.
승자는 한국전력이었다. 야마토가 22-22에서 신영석의 속공을 과감하게 사용해 매치포인트에 도달한 뒤 신영석의 서브가 그대로 넘어온 것을 엘리안의 공격이 성공되며 한국전력의 세트 스코어 3-2(15-25 17-25 25-19 26-24 24-22) 승리가 완성됐다. 다만 엘리안은 마지막 공격을 성공시키고 착지하는 과정에서 블로킹을 떴던 최민호와 엉켜 넘어졌고, 들것에 실려 나가고 말았다.
천안=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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