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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천재 유격수의 쓸쓸한 작별, 게으른 풍운아로 롯데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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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천재 유격수로 불렸던 이였지만 쓸쓸한 작별을 하게 됐다. 기량을 꽃 피우지 못하고 결국엔 ‘게으른 풍운아’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롯데 자이언츠를 떠난 이학주(34)다.

롯데 자이언츠는 “면담을 통해 내야수 이학주, 오선진, 투수 이인복, 임준섭 등 선수 4명에게 방출 의사를 전달했다”고 5일 밝혔다. 이로써 이학주는 2022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에 합류한 지 불과 2시즌만에 팀을 떠나게 됐다.

벌써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른 베테랑 내야수다. 거기다 지난 2년간 보여준 것이 사실상 거의 없었단 점에서 현역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롯데의 입장에서도 꾸준히 기회를 줬다. 하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단 점에서 반전의 국면을 쉽게 예상하기 힘든 게 현재 이학주의 입지다.

매일경제

사진=김재현 기자


그렇지만 한 때는 한국 야구를 대표할 재능으로 꼽혔던 시기도 있었다. 충암고 재학시절엔 초고교급 유격수로 큰 주목을 받았다. 우투우타로 야구를 시작해 우투좌타로 전향하고 중학교 시절 뒤늦게 유격수로 안착했지만 올라운드 5툴 플레이어에 뛰어난 수비력을 갖춘 야수로 꼽혔다. 차근차근 성장한 이학주가 장래엔 한국 최고 유격수 계보를 이을 것이란 장밋빛 평가도 뒤따랐다.

실제 국내를 비롯해 해외 구단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결국 이학주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08년 3월 시카고 컵스와 115만 달러라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계약을 맺었다. 컵스는 당시 한국 선수를 대거 수집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이학주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 점쳤다.

이후 차근차근 마이너 무대 단계를 밟아간 이학주는 2011년 템파베이로 트레이드 되면서 점차 구단 최고 유망주로 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학주는 2012년 마이너리그에서 놀라운 활약을 펼쳐 유망주 천국이었던 템파베이 마이넘 팜에서 팀내 유망주 1위에 올랐다.

그리고 2013년 이학주는 시즌 시작과 동시에 15경기서 타율 4할2푼2리 19안타 7타점 13득점, OPS(출루율+장타율) 1.136의 폭주기관차 같은 활약을 펼치며 마침내 빅리그의 무대를 밟는 듯 보였다.

2012년 이미 마이너리그 최고 레벨의 수비를 펼치는 유격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거기다 점차 타격 재능까지 폭발시키면서 이학주의 미래는 탄탄대로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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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이너리거 시절 이학주. 사진=MK스포츠 DB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이학주를 배반했다. 이학주는 경기 수비 도중 상대 선수의 깊은 태클에 무릎이 가격당해 십자인대 파열을 당했다. 선수 생활을 위협할 정도의 중대한 부상이었다. 이후 이학주는 2014년 긴 재활 끝에 복귀해 93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율 2할3리에 그치며 부진했다.

이학주는 2015년 미국 플로리다 포트샬롯에 위치한 포트샬롯 스포츠파크 템파베이 스프링캠프에서 기자를 만나 부활을 다짐하기도 했다.

당시 이학주는 “지난해 성적에 대한 기대를 하고 출발을 하지는 않았다. 불안감이 있었고 기복이 심했다. 빨리 적응을 못 마쳤던 것이 부진했던 가장 주된 원인 같다”면서 “마이너캠프에서 도루를 하다가 다시 부상을 당하면서 심적으로 사실은 또 (부상에 대해) 겁이 많아졌는데 운동선수가 계속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운동을 못하는 것 아니겠나. 2014년은 지나갔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2015년, 또 뛰겠다”며 빅리그로 진출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당시 이학주는 불의의 부상을 당했지만 여전히 자신감과 열정을 갖고 있는 창창한 유망주였다. 시련을 통해 더욱 깊어진 무게가 엿보이기도 했다. 그 때 이학주는 ‘어떤 선수가 되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첫 번째로 팀에 필요한 선수다. 득점을 많이 하고, 베이스를 잘 훔치고 중심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리고 팀에서 수비를 가장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익사이팅하고 효율적인, 그런 선수가 목표다. 2015년에는 다치지 않고 메이저에 올라가겠다. 자신 있다. 잘해서 웃으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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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이너리거 시절 이학주. 사진=MK스포츠 DB


결국 그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마이너 시절 스카우팅 리포트 20-80 스케일 기준 60이라는 평가를 얻었을 정도로 수비력을 인정 받았지만 결국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넓은 수비 범위에 강한 어깨, 특히 빠른 스탭을 통해 반 박자 빠른 수비를 펼쳤던 그만의 장점이 십자인대 파열로 줄어든 것이다.

결국 끝내 빅리거로 성공하지 못한 채로 이학주는 국내 무대로 복귀했다. 2019년 삼성에 입단한 이후에도 여전히 이학주를 향한 기대감은 컸다. 삼성도 2019 2차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이학주에게 쓰면서 큰 기대를 보였다. 이학주는 국내 프로 데뷔 첫 해였던 2019년만 해도 118경기서 타율 0.262/101안타/7홈런/43득점/36타점/15도루를 기록하며 나름대로 가능성을 보였다.

기대치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수준의 송구력과 수비력을 보여주면서 천재 유격수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곧바로 비판도 뒤따랐다. 바로 19개라는 적지 않은 실책을 기록했는데 특히 부정확한 송구 실책 등이 많았다.

국내 출신 선수들과 비교하면 기본기보단 더 여유롭게 플레이하는 미국 스타일의 그의 수비 모습도 문제였다. 그런 모습을 두고 전문가들의 지적이 뒤따르기도 했다. 집중력이 부족한 탓에 실책이 많다는 차디찬 평가도 있었다. 실제 이학주는 평범한 땅볼을 자주 놓치는 모습도 보여줬다.

이후 점차 안정된 수비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학주는 끝내 삼성에서 자리 잡지 못했다. 그 사이 그에겐 ‘게으른 천재’란 수식어가 붙었다. 실제 이학주는 훈련 태도나 생활, 경기력적인 측면 등 워크에식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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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시절의 이학주. 사진=MK스포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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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이학주의 재능을 높이 사면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당시 그를 미국으로 데려가기도 했던 성민규 전 롯데 단장이 손을 내밀었다. 이학주는 2022년 트레이드로 롯데의 유니폼을 입으면서 사실상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

외국인 지도자인 래리 서튼 전 롯데 감독과 함께 호흡하면서 이학주의 재능이 다시 꽃피울 것으로 기대한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엔 불과 한 시즌도 걸리지 않았다. 이학주는 2022년 91경기서 타율 0.207, 2023년에는 104경기서 타율 0.209에 그치며 지독하게 부진했다.

결국 김태형 감독이 부임한 올 시즌에는 43경기서 타율 0.263으로 살짝 살아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1군에서 자리 잡지 못한채로 시즌 종료 후 방출됐다.

찬란했던 시기는 그 누구 못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추어 재학 시절 ‘고교 유격수 5인방’으로 불렸던 안치홍(한화), 김상수(KT), 허경민(두산), 오지환(LG)이 각각 리그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고, 현재도 여전히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뛰고 있는 상황에 이학주는 현역 지속 여부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너무나 밝게 빛났던 재능이기에 그 이후 몰락이 더 아쉬운 이학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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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영구 기자


[김원익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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