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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타인에게 개방? 자신에게 함몰?…각각의 지옥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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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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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시즌2’(넷플릭스)가 돌아왔다. 3년 전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던 시즌1의 세계관이 더욱 확장되었다. 연상호 감독은 종교와 정치의 중핵을 건드리며, ‘물리적 세계는 그대로이나, 가치가 붕괴된 종말’이라는 독특한 아포칼립스를 구사한다. 광신이란 무엇이며, 종교의 효용이 무엇인지 이보다 잘 알려주는 콘텐츠가 있을까.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인물인 정진수를 연기했던 유아인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 관건이었으나, 김성철의 호연으로 최대한 방어되었다. 김현주, 문근영, 김신록의 호연 역시 드라마를 빛나게 한다. 특수효과와 액션, 카메라 워크 등은 가히 미쳤다.







새진리회가 약해지자 화살촉 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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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을 복기해보자. 어느 날 지옥행이 고지되고 무지막지한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찢고 불태워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새진리회가 고지받은 박정자의 시연을 생중계한 이후,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는 새진리회의 논리와 가치가 세상을 지배한다. 그러나 신생아에게 내려진 고지는 인간의 죄와 시연이 무관함을 증명하는 반례가 된다. 이를 감추려는 새진리회와 알리려는 소도가 대립하고, 우여곡절 끝에 부모가 아이를 안은 상태에서 시연이 이루어진다. 부모는 지옥 불에 타고, 아이는 살았다. 그 자리에서 새진리회의 권위는 실추된다. 권력이 누수된 틈으로 소도의 민혜진(김현주) 변호사가 신생아를 구출해 빠져나온다.



시즌1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필자는 예전 칼럼에서 ‘죄 없는 아기의 심판과 인간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사건은 신학의 세계에서 인간 윤리의 세계로 건너오는 결정적인 계기다’라고 썼다. 그리될 줄 알았다. 신생아 사건 이후 신학의 세계는 종언을 고하고, 인간 윤리의 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다. 순진했다, 내가. 종교를 너무 띄엄띄엄 봤다. 교리니, 이론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데. 종교가 그런 것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회개합니다. 지식인이랍시고, 교만했습니다.”



신생아 사건 이후 새진리회의 권위가 실추된 건 맞다. 그렇다고 ‘시연은 인간이 행한 죄와 무관하다’는 생각을 가진 소도가 세력을 얻은 건 아니다. 신생아 사건으로 죄의 논리에 회의감을 품은 사람이 늘었을 수는 있다. 새진리회의 횡포에 피해를 보거나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점차 누적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을 소도가 제대로 조직하거나 대항세력으로 키워나가고 있지는 못한 실정으로 보인다. 소도에도 여러 지부가 생기는 등 양적으로는 확대된 모양새다. 그러나 느슨한 지도체제하에서 신념, 도덕성, 헌신성, 선명성, 순수성, 폭력성 등을 두고 심각한 내부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여전히 무정부주의적 지하조직으로 남아 있을 뿐, 대중적인 정치세력으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소도가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분열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나키스트 등 전세계 좌파 운동의 역사를 검토해보면, 매우 그럼 직한 전개이다.



새진리회가 명분과 힘을 잃었을 때, 세를 얻은 것은 소도가 아니라 극단주의 화살촉이었다. 화살촉은 초창기에는 새진리회와 ‘따로 또 같이’ 하던 과격파 그룹이었으나, 신생아 사건 이후 새진리회와 갈라선다. 이처럼 본류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극단 세력이 분파로 갈라져 본류를 ‘비토하고’ 급속히 세가 커지는 것도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매우 개연성이 있다.







극한의 고통이 극한의 희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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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진리회와 화살촉은 신생아 사건을 여전히 신의 단죄로 정의한다. 그것은 아기 부모의 죄를 단죄하기 위함이었는데, 부모가 고지를 숨기려다가 마지막 순간에 신 앞으로 나아가 정죄의 불에 타 죽은 것으로 해석한다. 사실 신생아의 시연으로 죄의 논리가 무너진다는 생각은 너무나 비종교적이고 근대 시민권적인 사고였다. 신생아에겐 죄가 없어도, 그의 부모에게 죄가 있다는 연좌제의 논리는 전근대적 사고에 뿌리내린 종교의 체계 안에서는 얼마든지 용인되기 때문이다. 신생아의 시연을 연좌제의 논리로 방어한 것은 새진리회나 화살촉이나 같았다. 차이는 부모가 불타 죽고 아기가 생존한 결과에 대해 화살촉이 훨씬 급진적인 행동 강령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화살촉은 시연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죄를 고하고 죄인과 함께 지옥 불에 뛰어들자는 극단적인 실천을 주창한다. 그 자리에서 타 죽기를 앙망하고, 혹시 살아남는다면 죄 사함을 받았다고 믿는 ‘전체가 아니면 무’의 베팅이다. 이것은 애초 시연이 가진 엄청난 스펙터클에 몸을 던짐으로써 스스로 땔감이 되는 행위이다. 뼈와 살이 타는 광신과 광란의 카니발이 유행병처럼 퍼진다.



시즌1의 마지막 장면이 암시하던 것과 달리 신생아 사건 이후에도 새진리회로 대표되는 종교가 여전히 살아남아 있으며, 오히려 화살촉이 득세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드라마는 이를 핵심적인 대사를 통해 보충 설명한다. 여기엔 정치적인 이유와 정신분석학적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합성역에서 시연 장면을 접했을 때, 설명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정진수의 강연을 찾아본다. 긴가민가 싶은 상태에서 약간의 신학적 내러티브를 장착하고 무대장치가 세팅된 가운데 박정자의 시연을 본 직후, 충격 속에서 절을 했다. 경외심이다. 사태가 신학적 틀 안에서 설명될 때, 두렵지만 이는 단순한 공포와는 다른 것이다. 시즌1에서는 종교가 공포 속에서 인간을 정의롭게 살도록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종교가 그 자체로 쾌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선악의 논리와 신학이 맞아떨어질 때, 시연은 공포가 아니라 정의를 구현한다는 쾌감을 준다. 새진리회는 단순명쾌한 선악의 논리를 펴면서, 고지받은 사람의 죄를 폭로하여 시연을 ‘죄인의 처형장’으로 만들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신적 폭력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죄인에게 천벌이 내리는 것을 보는 쾌감과 정의가 구현되고 있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정무수석(문소리)은 “한번 맛본 사람들에게서 절대 빼앗을 수 없다”며, 신생아 사건 이후로도 종교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정치적 이유를 설명한다.



정신분석학적인 이유는 불 속으로 뛰어든 햇살반 선생님(문근영)에 대해 남편에게 말하는 정진수(김성철)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그 순간 신과 가장 가까이 있다는 합일감, 충만감…. 당신과의 결혼생활에선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남편도 안다. 행복했던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남편에게 햇살반 선생님은 “일상이 모두 거짓에 기반했던 것”이라며 단호히 뿌리친다. 그는 팔이 불타자 죄 사함을 받았노라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곧 다시금 불에 뛰어든다. 죄 사함은 끊임없이 요청되고, 신적 충만함도 끊임없이 갈구된다. 도파민에 전 뇌가 약물을 탐닉하듯, 광신에 전 영육은 지옥 불을 욕망한다. 신과의 합일을 원하는 종교적 열정은 극한의 고통을 극한의 희열로 느끼게 한다.







살아남은 아기는 첫 부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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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에서 두드러진 것은 정부의 존재와 부활이다. 정부는 시연이 인간의 죄와 무관한 현상이며 새진리회가 거짓 선동한다는 것을 안다. 또한 새진리회의 위상이 커져 신정국가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론 추이를 살피며, 화살촉의 부상과 이들이 다른 정치세력과 손을 잡지 않을지, 언제 공권력을 투입해 진압할지 등을 예의주시한다. 즉 정부는 주도권을 놓지 않고, 여러 세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



정무수석은 새진리회가 박정자의 부활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새진리회와 함께 ‘부활자 박정자’를 내세워 ‘새의도’ 발표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그리고 뒤로는 소도가 박정자를 납치하도록 이중 작전을 꾸민다. 새진리회와 소도가 박정자의 말씀과 몸을 나눠 갖고, 두 개의 통제 가능한 세력으로 커나가도록 하려는 계획이다. 통제 불가능한 화살촉은 쓸어버리고. 시즌1에서 박정자 시연 후 존재가 사라진 듯 보였던 정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반갑다. 가치를 장악한 듯 보였던 새진리회가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정부가 화살촉이나 소도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판타지 장르물에서 세계관을 묘사할 때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경우가 드문데, 창작가의 책임감 있는 태도가 돋보인다. 이는 또한 창작가가 정치에 대해 품은 안목과 통찰을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박정자와 정진수의 부활을 다르게 취급한다. 박정자의 지옥은 미궁에 부쳐지지만, 정진수의 지옥은 생생하게 묘사된다. 정진수는 자신의 과거 속 엄마의 내연남으로, 가정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로, 복수당한 살인범으로 거듭 태어나 몇번의 죽음을 겪는다. 다시 태어나도 거울을 보면 여전히 괴물이 튀어나온다. 그는 박정자를 만나 부활에 대해 묻는다. 그의 지옥과 박정자의 지옥이 다르다. 박정자는 지옥 속에서도 언제나 자신이 아이들의 엄마임을 알았고, 아이들이 그리웠다. 타인에게 열린 그는 부활 후 타인의 죽음과 세상의 멸망을 예언하는 예언자가 된다. 그러나 정진수의 지옥은 자신에게 함몰된다. 겁쟁이였던 그에게 세상은 늘 공포였다. 결국 자신 안에 있던 괴물에게 잡아먹힌 그는 지옥의 사자가 된다.



드라마는 시즌3을 향해 새로운 단서들을 던진다. 세상이 곧 멸망할 것이라는 박정자의 예언과 함께 수만명에게 한꺼번에 고지가 쏟아진다. 그리고 시연에서 살아남은 아기는 죽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첫 부활자였다. 여기에는 또 다른 해석과 따라붙어야 할 이야기들이 꼬리를 문다. 시즌3이 벌써 기대되는 이유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영화평론가로 출발하여 티브이 드라마, 예능 등을 두루 평론한다. 인권·역사·여성·장애·인구·성·계급·권력 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다. 원래 전공은 의학·보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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