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롱레그스'(감독 오스굿 퍼킨스)
외화 '롱레그스'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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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보이지 않는 듯 주변을 맴도는 공포, 그리고 공포의 실체를 추적해 가는 주인공의 심장박동이 안겨주는 불안과 긴장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가 있다. 여기에 오컬트적인 해석은 물론 시대의 불안, 개인의 두려움을 '호러'라는 장르 안에 상징적으로 녹여낸 영화, 바로 '롱레그스'다.
30년간 계속된 일가족 연쇄 살인 사건,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의 생일이 14일이라는 것과
'롱레그스'라는 서명이 적힌 암호 카드뿐이다. 영원히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에 남다른 능력의 FBI 요원 리(마이카 먼로)가 투입되고, 지금껏 아무도 알아내지 못한 암호를 해석한다.
'롱레그스'(Longlegs)라는 기묘한 제목을 지닌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마치 최면을 걸듯 관객들의 무의식에 무언가를 삽입하려는 것처럼 몇 가지 이미지들을 시퀀스 안에 숨겨놓으며 시작한다. 이후 4:3 비율의 35㎜ 질감 화면으로 1970년대 과거 모습을, 우리에게 익숙한 16:9 비율로는 극 중 현재 시대인 1990년대를 표현하는 등 종횡비와 질감을 달리해 시대를 오간다.
FBI 요원이 의문의 연쇄살인마를 추적해 나가는 '롱레그스'의 설정과 전개는 '양들의 침묵' '조디악' 나아가 '큐어' 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에 기시감을 가질 수 있지만, '롱레그스'가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는 방식은 남다르다.
슬래셔나 고어 등의 장면보다는 주인공과 그의 내면을 투영한 듯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불안과 두려움을 피부밑으로 스며들게 만들며 관객들을 압도해 나간다. 또한 오히려 눈앞에 있음에도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도록 연출한 점 역시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다. 영화 초반, 키가 작은 어린 리 하커에게 찾아온 큰 키를 가진 롱레그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영화 내내 눈에 잘 띄지 않게 숨겨져 있는 악마(사탄)의 형상처럼 말이다.
외화 '롱레그스'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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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현재 시점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1990년대, 정확히는 빌 클린턴 대통령 재직 시기다. 적어도 1993년 이후로 추정되는 시기에 FBI 요원인 리 하커가 정체불명의 연쇄살인마 롱레그스를 추적해 나간다. 영화와는 무관하지만, 공교롭게도 1993년 빌 클린턴은 대통령이 된 직후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FBI의 공격을 승인했다는 점은 제법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화의 주인공인 리 하커는 어딘지 모르는 직관, 마치 영적인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FBI는 이러한 하커의 능력을 이용해 롱레그스를 잡으려고 한다. 하커가 여러 단서, 암호 편지 등을 분석하고 해독해 롱레그스의 정체를 찾아 나가는 것처럼 관객들 역시 영화 안에 담긴 여러 기호와 상징, 하커의 발자취를 뒤쫓고 파헤치며 영화를 해석해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어떻게 보면 불친절하고, 특히 마지막 3장에서는 많은 것을 관객에게 맡겨둔다. 그러나 그만큼 종교적으로나 사회적, 심리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찾아내고 의견을 교환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영화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통해 '롱레그스'는 더욱더 확장된다.
외화 '롱레그스'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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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지점은 주인공의 이름이 리 하커라는 점이다. 소설 '드라큘라' 속 여자 주인공 미나 하커는 드라큘라에게 물려 그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되는 듯하지만, 정신이 연결됐다는 점을 이용해 드라큘라를 역추적한다.
'롱레그스'를 끝까지 보면 리 하커의 행보가 '드라큘라' 속 미나는 닮은 꼴이다. 사실상 하커는 사탄의 인형과도 같은 존재다. 다만 다른 인조 인형과 달리 하커는 살아있는 인형이라는 점이다. 영화 속 여러 단서, 사탄의 그림자 등은 하커의 능력이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확신을 불어넣는다.
이처럼 영화는 오컬트적인 면에서 '드라큘라'를 비롯해 사탄(악마)은 물론 초자연적인 요소와 사탄 숭배, 사탄주의자가 등장한다. 반복되어 나오는 요한계시록 13장 1절의 문구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역시 '롱레그스'의 장르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와 함께 단서 중 하나로 제시된다.
외화 '롱레그스'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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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롱레그스를 비롯한 영화 속 사탄숭배자는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한 존재들이다. 사탄 혹은 종교에 대한 강박적인 믿음과 숭배, 저장강박증, 자식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사고 등 불안정한 존재들이 비뚤어진 방식으로 내면을 표출하는 점은 인간 내면의 불안을 드러낸다. 심리적·정신적 측면에서의 접근도 가능한 지점이다.
여기에 리처드 닉슨의 1970년대와 빌 클린턴의 1990년의 비교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오멘 저주의 시작'이나 '악마와의 토크쇼'와 같은 호러 영화는 시대가 가진 불안과 혼돈에서 파생된 공포를 영화적으로 그렸다. 또한 영화에서 록 사운드를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재밌는 건 록 음악을 사탄주의와 엮어서 생각하는 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상징을 연출에 활용한 점 역시 돋보인다. 특히 '롱레그스'의 주된 이미지인 사탄주의의 상징이자 666으로 해석된다는 역삼각형이 영화에 지배적으로 등장하는데, '역'(逆)이나 '삼각형'의 구도를 연출적으로나 스토리 전개, 화면 수도, 엔딩 크레딧 등에 적용했다.
외화 '롱레그스'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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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역삼각형과 사탄, 그리고 하커의 관계를 암시하는 단서는 영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여러모로 흥미로운 배경과 조합, 상징과 사회·문화적인 요소가 담겼다. 그만큼 '롱레그스'는다양한 방식의 해석과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고, 관객들은 '롱레그스'라는 영화의 정체를 추적해 가는 스크린 밖 '리 하커'가 되어야 한다.
영화의 주인공 하커가 추적하는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사탄은 오컬트적인 존재이자, 인간 내면의 악마를 뜻한다. 그러한 악마에 굴복해 자신이 살고자 다른 이들을 죽이는 존재는 이미 인간이 아닌 악마일 뿐이다. 롱레그스'가 공포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일으킨 주체가 결국 사람이라는 데 있다.
그렇기에 영화 내내 제대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악마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더 중요하다. 호러 영화를 언급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인 마이카 먼로는 이번에도 탄성을 자아내는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먼로의 연기는 그 자체로 관객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안겨준다. 여기에 글램 록커이자 사탄숭배자로 변신해 기이하고 소름 돋는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한 니콜라스 케이지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놓치지 말고 지켜봐야 할 배우임을 재확인시켰다.
두 배우뿐 아니라 감독의 다음 행보 역시 기대하게 했다. '이수' '싸이코' 등의 안소니 퍼킨스의 아들로 유명한 오스굿 퍼킨스 감독은 '저주받은 집의 한 송이 꽃' '그레텔과 헨젤'을 거쳐 '롱레그스'를 통해 '오스굿 퍼킨스'로서 주목해야 할 호러 감독임을 입증했다.
101분 상영, 10월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외화 '롱레그스'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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