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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통화·외환시장 이모저모

30조 세수 펑크 때우려… ‘외환 방파제’ 또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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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외평기금도 끌어와 돌려막기

한달전엔 “활용 안할 것”… 말 바꿔

주거안정 위한 주택기금까지 빼내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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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세수 펑크가 확실시되자 정부가 ‘외환 방파제’를 허물고 청약통장 가입자들이 낸 돈까지 끌어와 빈 곳간을 메우기로 했다. 지방정부에 나눠 주는 돈 역시 삭감하고 예정된 사업에 돈을 쓰지 않는 불용(不用)으로 지출도 줄인다.

나랏빚을 늘리는 대신 ‘기금 돌려막기’로 부족분을 채우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대외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성장률이 2개 분기 쇼크를 보인 상황에서 정부가 ‘꼼수 대책’에만 의존하며 스스로 경기 대응 여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28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2024년 세수 재추계에 따른 재정 대응 방안’을 보고했다. 정부는 올해 세금이 예상보다 29조6000억 원 부족할 것이라고 내다본 바 있는데 이에 따른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우선 각종 기금 및 특별회계에서 최대 16조 원을 끌어다 쓰기로 했다. 이 중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에서 끌어다 쓰는 돈이 4조∼6조 원으로 가장 많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세수 결손을 메우는 데 “외평기금 활용은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는데 한 달여 만에 이를 뒤집었다.

외평기금은 환율 급등락 시기에 달러나 원화를 사고팔아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마련된 일종의 ‘국가 비상금’이다. 환율을 안정시키는 외환 방파제 역할을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이런 목적과 달리 세수 결손을 메우는 데도 쓰이고 있다. 외평기금과 달리 올해 처음 끌어다 쓰는 주택도시기금 역시 서민들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 등에 쓰여야 하는 돈으로, 주택청약 저축액 등으로 조성된다. 주택도시기금에서도 최대 3조 원이 동원된다.

정부는 또 최대 9조 원 규모의 예산은 당초 편성 계획과 달리 지출하지 않기로 했다. 연말까지 경기 둔화에 대응할 재정 실탄이 부족해진 셈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회계적으로 국채 발행을 안 하는 것일 뿐, 기금 돌려막기가 정부 재무 상태를 더 좋게 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지금은 재정이 충분히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세수펑크에 2년째 기금 ‘영끌’… 서민 위한 주택기금도 끌어쓴다

[세수펑크에 ‘기금 돌려막기’]
정부, 세수 낙관론 펴며 감세 남발… 결손 커지자 ‘국가 비상금’ 빼내
주거안정-환율방어 기금까지 동원… 지방교부금, 명확한 설명없이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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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콧등 위를 만지고 있다. 최 부총리는 내년 법인세수 전망치가 지나치게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불확실성은 있지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법인세수가 크게 줄어 내년에 정부 예상치를 맞추려면 올해보다 25조3000억 원이나 더 걷혀야 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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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금이 정부 예상보다 크게 덜 걷히면서 정부는 나랏빚이 늘어나는 국채 발행 대신 ‘기금 돌려막기’에 나섰다. 주요 대기업이 법인세를 한 푼도 못 낼 만큼 심각한 경기 상황에도 정부가 낙관론을 유지하면서 올해도 국가 비상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세 기조를 이어가면서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기금까지 끌어다 쓰는 일이 반복되면서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세수 낙관하던 정부, 국가 비상금 ‘영끌’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올해 세수 부족 대응책을 보고한 뒤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정부 내 가용 재원을 활용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 채무를 늘리는 것은 미래 세대 부담이 되고 대외 신인도를 악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국가 채무가 내년에 처음으로 12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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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국채 발행 대신 세수 부족분의 절반이 넘는 금액인 최대 16조 원을 기금에서 끌어와 쓰기로 했다. 정부의 공식 자금 조달 창구인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 여윳돈이 4조 원밖에 되지 않아 정부는 나머지 12조 원을 다른 기금을 우회해 충당할 계획이다. 공자기금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에 주기로 약속한 돈을 주지 않고, 주택청약 저축액 등으로 조성된 주택도시기금에서는 돈을 빌려오는 식이다.

여기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내야 할 돈도 당초 계획보다 6조5000억 원 줄이기로 했다.

결국 정부의 낙관적인 경기 전망이 세수 과다 추계로 이어졌고, 2년 연속 기금 돌려막기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지난해 정부가 고수한 ‘상저하고’(하반기 경기 반등) 전망과 달리 기업 경기가 내내 부진하면서 올해 법인세는 정부 예상치보다 14조5000억 원 부족할 것이 확실시됐다. 이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 작년 실적에 따라 올 3월 내는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잇따른 ‘감세 카드’를 꺼내며 세입 기반을 더 약화시켰다. 기재부는 ‘한시적’이라던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을 3년 넘게 이어가고 있다. 이에 유류세가 포함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예상보다 4조1000억 원 부족하게 됐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성장세를 낙관하다 보니 세수에 자꾸 오류가 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로만 감세 정책을 펼쳐 왔다”고 말했다.

● 재원 대책은 고무줄 잣대… 신뢰 갉아먹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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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부족 대응책들이 전적으로 정부의 판단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문제 제기도 이어진다. 정부의 올해 세수 부족 대응책 역시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아도 시행할 수 있다. 기재부 장관 등이 위원장으로 있는 각 기금의 운용위원회 의결을 받아 기금 운용 계획만 바꾸면 된다.

지방정부와 교육청에 주는 교부세와 교부금 역시 세수가 덜 들어온 만큼 삭감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고무줄 잣대다. 교부세 및 교부금은 내국세의 20%가량을 배분받도록 법에 정해져 있는데 이때 정부가 처음 예산을 짤 때 잡았던 ‘본예산’이 기준인지, ‘세수 재추계 결과’를 기준으로 삼아도 되는지는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정부는 세수 부족분과 연동해 삭감해야 하는 교부세 및 교부금 9조7000억 원 중 6조5000억 원만 깎는다고 밝혔다. ‘지자체의 재정 여건을 고려한다’는 이유만 밝힐 뿐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지난해에도 교부세 및 교부금을 23조 원 삭감하기로 했다가 지자체의 반발에 18조 원으로 규모를 변경한 바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금은 기금의 목적이 있는데 그 재원을 돌려서 다른 데 전용한다는 건 기금의 존재 이유를 부인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세입 세출 계획을 다시 짜지 않고 여윳돈을 찾아 전용하는 건 향후 정부 신뢰도에도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세종=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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