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연휘선 기자] 배우 변요한은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찾는다. 팬들이 애타게 찾는 청순한 비주얼은 수염과 특유의 불안한 눈빛으로 가리고서. 이번에 그가 택한 얼굴은 한계까지 내몰린 청년,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의 고정우였다. 그 이면엔 미처 알지 못했던 약자,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순도 높은 연민이 있었다.
최근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난 변요한은 지난 4일 종영한 MBC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약칭 백설공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백설공주'는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살인 전과자가 된 청년 고정우(변요한 분)가 10년 후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담은 역추적 범죄 스릴러 드라마다. 이 가운데 변요한은 주인공 고정우 역을 맡아 매회 극적인 열연으로 전율을 선사했다.
작품 공개는 최근에야 이뤄졌지만, '백설공주'는 2년 전인 지난 2022년에 이미 촬영을 마친 작품이다. 2년의 기다림이 조급했을 법도 하건만, 변요한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가 됐다. 기존에 저희가 하려고 했던 내부적인 것들이 있었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촬영을 하면서 모든 스태프들이 대충 만든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시기에, 어떻게 나올까는 기대했다. 자신감이 있었으니까"라고 털어놨다.
기대에 부응한 덕분일까. '백설공주'는 14회(마지막 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 8.8%를 기록할 정도로 시청률 상승세를 보이며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이와 관련 변요한은 "기분 너무 좋았다. 팬들도 너무 좋아했다. 좋았다. 홍보를 사실 아예 하지 않았다. MBC에서만 하고. 원래 유튜브나 예능에 나와서 홍보해야 하는 게 맞지만 이 작품의 성향으로는 배우들이 나와서 희희낙락하고 싶지 않았다. 작품을 던져놓고 기다려보고 싶었다. 진심이 통하겠지라 생각했다. 물론 다 통하진 않지만 드라마는 진심이 통한다 생각한다. 드라마라는 콘텐츠는 재미있고 마음에 와닿는 것들은 봐주신다고 생각했다. 그런 순간에 도전을 했고 다행히도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셔서 그저 감사드린다"라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그는 특히 자신 있던 작품의 요소에 대해 "변영주 감독님과 스태프들의 투혼"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일일이 말하면 밤새는데 너무 많다. 선배님들이 너무 허리를 잘 잡아주셨다. 후배들이 기둥이 될 수 있게 잘 잡아주셨다. 매 씬 들어갈 때마다 뜨거움, 긴장감, 진정성들이 제가 느끼고 싶었고 제가 느꼈을 때 저희 작품에서 자신감 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저희들의 고민, 서 작가님의 엄청난 고민들이 삼박자가 맞았다. 저희 정말 재미있게 촬영했다"라고 강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에 대해서도 그는 "'입소문 난다'는 말이 저한테도 들려왔다. 그 말이 되게 신기했다. 새로운 기분이었다. 변영주 감독님도 그렇고 다들 과감했다. 이번 작품은 홍보를 안했다. 작품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저희들의, 스태프들의 노고를 알아주신 것 같았다. 저희는 시나리오의 내용을 아니까. 누군가는 추측을 하고, 누군가는 수사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마음을 아파하고 있고, 누군가는 사람을 미워하고, 여러가지 레이어를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좋았다. 행복했다"라며 웃었다.
이 드라마는 현대 스릴러 소설의 고전이 된 독일 작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한국 드라마로 각색한 작품이다. 여기에 영화 '화차'로 호평받은 변영주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으로도 기대를 모았다.
이 가운데 각색 과정에 대해 변요한은 "부족함 없이 너무 잘됐다. 그런 부분 때문에 다들 치열했고, 원작 작가님도 엄청나지만 드라마로 리메이크할 때 만만찮은 에너지로 컨트롤했다. 그러지 않으면 사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 자신감들이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다행히 완주하지 않았나 싶다"라며 "원작은 읽다가 닫았다. 왜냐하면 소설 원작을 좀 접해보기도 했는데 저만의 방법인데 첫인상, 어떤 사건, 어떤 지역까지만 읽고 이 사람의 감정이 너무 섬세해질 때 닫는다. 어느 정도 속독 비슷하게 한다. 너무 디테일해지면 제 자유가 없어진다. 아닌 분들도 있지만 저는 그렇다"라고 털어놨다.
또한 "고정우가 범인인지, 아닌지를 표현하는 첫 단추가 중요했다. 원작을 읽은 분들은 진실을 아니까 그 수위도 맞춰줘야 했다. 장르 특성상 가져가야 하는 지점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변영주 감독님의 방향 대로 따라간 것 같다. 물론 원작의 딜레마는 갖고 있되 감독님의 지시 대로 첫 단추를 꼈다. 10년을 단축시켜 보여줘야 하고, 죽을까 살까도 보여줘야 하고, 15~20분 안에 얘의 10년을 뇌리에 깊게 심어드려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변영주 감독님의 영역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변영주 감독과의 첫 호흡에 대해서도 "가장 인상깊은 건 첫 드라마라고 해서 감독님이 개성과 성향을 버리지 않았다. 그 아이덴티티가 굉장히 뚜렷하게 서있기 때문에 존재감 만으로도 이미 리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스탠스가 배우한테 엄청난 확신을 준다. 그게 디렉션의 방법인 것 같다. '이렇게 하자'가 아니라 현장에 늘 꼿꼿하게 서 있는 게 쉽지 않다. 헷갈릴 수도 있는데 헷갈리면 헷갈린다고 얘기도 하신다. 그게 오히려 저는 꼿꼿하게 서있다고 생각했다. 터프하면서도 섬세하시다. 거친게 아니라 시원시원하시다. 감독님으로서 저도 처음 느끼는 에너지였다. 굉장히 특별하신 분 같다. 다음 작품도 굉장히 기대된다"라며 눈을 빛냈다.
앞선 작품들에서 변요한은 다양한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내는 배우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에서는 달랐다고. 변요한은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고정우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 이 사람이 목소리를 내면 다 무시당한다. 아무리 프로타고니스트라고 해도 안타고니스트들이 너무 세서 되게 독특한 형식이다. 누가 주고 받아야지 연기를 하는데 제가 말하면 다 안 믿고 말할 기회를 안 주는 거다. 점점 힘을 잃어간다. 9회부터는 고정우는 말이 없어진다. '감사합니다'밖에 없다.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정우에 대해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캐릭터 같았다. 잿빛인생, 무채색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연기할 때는 까다롭고 외로운 캐릭터였다. 그래서 오로지 받아들였다. 답답함도 표출하고 싶지 않았다. 고정우는 입을 닫고 싶은 순간이 있을 수 있고, 더 깊은 음지에서 꿈틀거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기를 끝낸 입장에서 죽어도 되는 사람이었다. 다만 진실만 밝히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변요한은 "너무 힘들었던 순간도 있다. 저는 온, 오프가 명확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유일하게 안 그랬다. 특성이 있다. 고정우는 제가 역할을 지켜줘야 하는 포지션이었다. 다른 역할은 좀 싸울 수 있다. 얘는 제가 멀리서 계속 지켜봐줘야 한다.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삐걱대는 순간이 많았다. 확신이 아닌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이 캐릭터를 지켜주기 위한 의심이었다. 같이 고독해졌다"라고 고백했다.
그만큼 도전적이었던 '백설공주'. 변요한은 작품을 마친 뒤 성장한 바에 대해 "매작품들은 도전이고 배울 것들이 너무 많다. 이 작품은 여운이 너무 남는 게 걱정된다. 고정우가. 그런데 믿음도 있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허구의 인물인데 그런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자산어보' 때도 잘 살 것 같았는데 잘 굿바이를 했다. 고정우는 잘 사는지 한번 봐줘야 할 것 같다. 뭘 배웠냐고 한다면 연기적인 건 아니고, 이런 형태로도 해봤구나 정도이다. 아직 정리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특히 변요한은 이처럼 도전적인 작품임에도 출연을 결심한 배경에 대해 "사회에 어떤 일이 있고 다큐멘터리를 우연찮게 접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TV를 끄는 순간 외면하는 사람이 될 것 같더라. 물론 지금도 그런 마음을 0.1%도 담았다고 생각은 못하겠다. 그렇지만 약한자들은 목소리를 못내지 않나. 연기할 때도 실제로 그러더라. 내봤자 무시 당하고.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싶었다. 이런 일도 있다. 이런 작품이 나오면 또 보게 될테니 작은 불씨, 그것도 아닌 작은 뭔가가 되길 바랐다"라고 털어놨다.
그 중에서도 변요한을 가장 괴롭게 한 건 '우정'의 부재였다. "정말 다 나빴다"라고 힘없이 웃은 그는 "물론 빅픽처를 그리는 어른들도 있지만 친구 없으면 못 살 나이인데 친구 때문에 인생이 변하는 나이인데 그게 없어진 거다. 정우의 우정은 19세에 멈춘 게 너무 슬프더라. 우리는 지금도 살아가면서 다양한 우정의 형태를 접한다. 그런데 고정우의 우정은 19세에 멈춘 게 너무 슬펐다. 세상을 못 만난 것도 안타깝지만. 우정이라는 게 없어졌다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10년을 복역하고 나온 고정우가 자기의 죄를 찾는 건 뒷일이고, 죽은 친구들만 찾고 싶었다"라고 씁쓸하게 밝혔다.
이에 "어제까지도 엔딩 장면을 돌려봤다"는 변요한은 "아무 일이 없을 때와 끝난 뒤의 일이 동시에 공존하니까 너무 아련했다"라고 덧부였다. 그럼에도 그는 "저희가 삶을 살면서 다 고구마 아니겠나"라고 애써 웃으며 "금요일까지 달리다가 맥주 한 잔 마셨을 때 '한 주 날아갔다'는 감성의 연속이다. 저희 드라마는 최대한 리얼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걸 계산하지 않고 본질로 승부보려 했다. 나이를 더 많이 드신 칠순, 팔순 되신 선생님들도 살아가면서 더하실 거다. 사는 만큼 상처받고, 사는 만큼 행복해진다. 귀인도 나타나고 대단한 이야기는 아닐 거다. 우리 드라마도 사건은 크지만 본질적으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더 화도 내주시고, 몰입해주신 것 같다. 고마운 존재도 너무 많다. 나한테 뭘 해줬다가 아니라 배우님, 스태프 분들 너무 고맙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다 감사하다"라고 강조했다.
짙은 여운을 남긴 '백설공주' 외에도 변요한은 올해를 누구보다 바쁘게 보냈다. 많은 애정을 보낸 또 다른 작품으로 영화 '그녀가 죽었다'가 개봉해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디즈니+ 오리지널 '삼식이 삼촌'에서 대선배 송강호와 연기 앙상블을 보여줬다. 여기에 '백설공주'까지. 변요한은 2024년에 대해 "제가 가진 특별함도 부족함도 여실히 느끼는 해다. 특별하니까 세 작품이 나왔고, 특별하니까 응원하고 사랑해주시고, 크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세상이 생각했던 것처럼, 엄청난 대박은 아니었지만 내가 노력한 것 만큼 정확한 수치의 성공을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도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들이 찍을 때 '대박났으면 좋겠다' 생각을 한다. 그런데 다 뜻이 있는 것 같다. 저한테 주어진 2024년의 수확이 있는 거라 생각한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끝으로 그는 "다가올 40대가 궁금하고 기대된다. 저는 30대를 정말 즐겼다. 20대도 29세까지 잘 즐겼다. 마흔에 뭐가 달라질지 잘 정리정돈 하고 있다. 별반 다르지 않으면서 되게 좋을 것 같다. 저는 40대가 기다려진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우선 찍어둔 '파반느'를 보여드리고 싶다. 앞으로 만날 작품이 뭘지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얘기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 monamie@osen.co.kr
[사진] 팀호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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