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1 (토)

[스브스夜] '꼬꼬무'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비트코인'…'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SBS연예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는 누구?

1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비밀의 창시자 - 비트코인이 처음 생기던 그날'이라는 부제로 비트코인의 시작과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를 추적했다.

2008년, 최악의 금융 위기가 몰아닥친 미국. 미국에서 시작된 경기 침체는 세계 금융 위기로 번졌다. 그런데 이때 비트코인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2008년 10월 31일 한 커뮤니티에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백서를 발표했다. 총 9장에 담긴 비트코인 설계도.

새로운 전자화폐 시스템에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1원도 되지 않았던 1비트 코인의 가치. 이는 첫 발행 후 15년이 지난 현재에는 약 8,000만 원의 가치가 된 것이다.

당시 총발행량은 약 1,970만 개, 녹화일 기준으로 현재 가치는 약 1,546조 원.

이에 비트코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누어진다. 혁신적인 미래 화폐라는 극찬부터 디지털 쓰레기라는 혹평까지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

비트코인은 대체 무엇이길래 이러한 존재가 된 것일까. 이에 방송은 비트코인 시스템을 만든 창시자를 추적했다.

비트코인 시스템을 만든 것은 단 한 사람. 40대의 일본인 남성 사토시 나카모토. 그런데 이는 모두 본인의 주장일 뿐 이것이 사실인지도 알 수 없었다.

사토시의 보유 비트코인의 추정액은 약 110만 개로 현재 가치 약 100조 원. 그런데 사토시는 2010년 말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이에 사람들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구인지 추적했고 유력한 후보들을 찾아 나섰다.

그의 이름 안에 숨겨진 뜻과 CIA에 그의 신원 정보 공개 요청을 했으나 거부당한 것을 들어 그가 CIA라는 추측부터 일론 머스크라는 추측 등 갖가지 추측이 나왔다.

그리고 그의 과거 행적을 추적했다. 그는 사이퍼 펑크. 사이퍼펑크의 모토는 약자에겐 프라이버시를 강자에겐 투명성을 부여하는 것. 이에 사이퍼펑크는 암호학적 기술을 개발하며 프리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위대한 단체라고 생각하는 것.

사이퍼펑크는 정부와 대기업 등 거대한 집단이 정보 통신 기술을 이용해서 개인을 감시 혹은 통제하고 있으니 암호 보안 기술을 이용해서 스스로를 지키자라는 운동인 것.

그리고 사토시가 사이퍼펑크라는 것은 커뮤니티에 비트코인 백서를 올린 타이밍에서 힌트가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한 당시 백서를 게재했던 사토시. 기존 통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에 있다고 믿었던 그는 중앙은행은 화폐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신뢰를 지켜야 하지만 화폐의 역사는 신뢰를 위한 반 사례로 가득 차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2009년 10월 5일은 비트코인 가격이 처음 매겨진 날. 비트코인 1개 채굴 시 발생하는 전력 요금이 처음의 가치였다.

그리고 2010년 5월 18일 비트코인과 피자를 교환하자는 내용의 글이 사이퍼펑크 커뮤니티에 게재됐고 처음으로 실거래에 성공했다.

당시 피자 2판의 가격은 1만 비트코인. 당시 4만 원 정도였던 비트코인의 가치는 현재 8천억 원.

이렇듯 실시간으로 바뀌는 비트코인의 가치는 여러 가지를 바꾸어 놓았다.

2017년 이은강 검사는 불법 사이트 운영자의 재산을 몰수하려던 중 비트코인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의 객관적 기준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워 몰수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압수한 것이 191개으로 당시 가격 8,600만 원이지만 구속과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비트코인 1개의 가격은 45만 원에서 1300만 원까지 오르고 몰수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 범죄자는 25억에서 35억 정도를 가져가게 되는 것.

이에 검사는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2심을 준비했고 그 결과 몰수 판결을 받아냈다. 이는 국내 비트코인 몰수 선언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비트코인이 법적 자산으로 인정받은 것.

국고 환수 절차를 통해 몰수된 이 비트코인은 입수 당시에는 8,600만 원이었던 것이 국고에 환수될 때는 122억 원이 되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비트코인에 대한 평가가 계속 엇갈리는 가운데 미국 언론은 사토시를 찾아냈다는 보도를 했다. 언론은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인물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밝힌 것.

그는 금융 정보 회사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한 이력이 있고 컴퓨터 공학과 경제학에 능했다. 그리고 그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맞냐는 질문에 "더 이상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더 이상 연관이 없다"라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런데 다음 날 그는 자신의 답변이 과거에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것이 아닌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사토시라는 이름은 흔하지 않다. 그가 누군지 내가 찾고 싶다. 그는 가상의 인물일 것"이라는 답변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 무렵 3년 만에 사토시가 커뮤니티에 재등장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를 추측하는 여러 이야기에도 침묵했던 그가 "난 도리안 나카모토가 아니다"라고 했던 것.

유력한 또 다른 후보도 등장했다. 헤럴드 토마스 피니 2세, 할 피니라고 불리는 그는 이미 유명한 컴퓨터 공학자이자 암호학자, 그리고 사이퍼펑크. 그리고 사람들은 피니가 과거 도리안과 같은 마을에 무려 10년 동안 살았다는 점에서 그가 도리안의 이름을 따서 사토시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토시의 이름을 리트 암호 방식으로 풀이하자 할 피니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 그런데 그런 그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루게릭병 투명으로 거동도 의사소통도 어려운 상황이 된 것.

2009년 8월 루게릭병 발병으로 2011년 초 은퇴한 할 피니. 그런데 이는 사토시가 사라진 시기인 2010년 말과 거의 일치했다. 그리고 2014년 다시 나타난 사토시. 당시 할 피니는 안구 마우스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던 때였다.

의심이 점점 높아져갈 때 할 피니는 안구 마우스로 포브스지에 메일을 보냈다. 사람들의 의심에 지친듯한 그는 자신이 사토시가 아님을 주장한 몇 달 후 사망했다.

아직 미스터리로 남은 사토시의 정체. 사토시의 정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장 처음 발행한 비트코인인 제네시스 코인을 움직이면 되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대로였다.

여전히 비트코인에 대한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사용하고 있는 만큼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국내의 경우에도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시행되는 것. 전문가는 가상자산의 높은 변동성과 위험성을 고려해서 투자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온라인상의 투자권유는 사기일 확률이 높으므로 반드시 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 영화, 보고 나면 생각이 바뀝니다!
스타 인터뷰 총집합!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