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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신상훈 WKBL 총재 “위기의 여자농구, 대학 ·전용구장·실업팀 선순환 구조 필요”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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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를 할 장소도 할 팀도 부족한 상황

인구 감소까지 맞물려 경쟁력 떨어져

‘박신자컵’ 국제대회로 발전해 고무적

2025년엔 유럽·中팀까지 초청 확대 검토

대학농구 활성화로 학생 진로 뚫어줘야

서울 동서남북에 전용구장 하나씩 필요

제 7구단 창단 비금융권에서 맡았으면

선수들 연봉 격차 커… KPI 도입해야

과거 한국 여자농구는 정상급 실력을 자랑하며 세계와 당당하게 겨뤘다. 1967년과 1979년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여자농구 월드컵 2위에 오르는 등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대회마다 8강 이상 성적을 냈다. 1984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는 한국 단체 구기종목 최초의 은메달을 따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4강에 진출했을 정도로 한국 여자농구의 위상은 높았다. 이후 기세는 꺾였다. 최근 세 차례 출전한 여자농구 월드컵에서는 1승10패로 부진했고,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출전권도 확보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졌다.

세계일보

신상훈 WKBL 총재가 지난달 26일 서울 강서구 WKBL 사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 총재는 “구단의 도움을 받아 연맹이 운영되고 있는 만큼 구단과 연맹 사이의 합의와 소통이 중요하다”며 “여자농구 발전을 위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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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농구 산실인 한국여자농구연맹(WKBL)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선수들의 연봉은 높지만 실력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따라오고 있다. 그나마 박지수와 박지현 등 스타급 선수들은 더 큰 선수가 되겠다며 각각 튀르키예와 뉴질랜드 등 해외리그로 떠났다. 안 그래도 인구 감소 시대 여자농구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 전체의 저변이 취약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 WKBL은 2024~2025시즌부터 아시아쿼터를 도입하고 외국인 선수 영입을 재추진하는 등 변화로 얇은 선수층을 보완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농구를 펼치겠다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 긴급한 시기 WKBL이 새로운 총재를 맞았다. 지난 7월 WKBL 수장 자리에 오른 신상훈 총재는 여자농구 경쟁력 저하에 공감하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저변확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원 출신인 신 총재는 은행장 시절이던 2004년 청주 현대를 인수해 안산(현 인천) 신한은행 창단을 이끌었던 인물로 여자농구와 인연이 깊다.

3년간 WKBL을 이끌게 된 신 총재는 지난달 26일 서울 강서구 WKBL 사옥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농구를 할 수 있는 장소도, 농구를 할 팀도 부족한 상황에서 인구 감소까지 맞물려 한국 여자농구의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면서 “대학에서 여자 선수를 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용구장 건설, 실업팀 창단 등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신 총재와 일문일답.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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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장이던 2004년 현대 여자농구단을 인수했을 정도로 여자 프로농구에 애정이 있다.

“당시 현대 농구팀 선수들은 컨테이너에 짐을 넣어놓고 생활할 정도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신한은행의 사세가 많이 확장되면서 사회공헌활동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마침 여자 농구팀과 연결이 잘 됐다. 농구팀을 갖게 된 이후 직원들과 응원하러 경기장을 찾기도 했고, 이후 신한은행이 성적도 잘 내서 뿌듯했다.”

―금융계 수장에서 체육단체장으로 역할이 바뀌었는데 총재를 맡고 느낀 소회는.

“체육과 금융이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구단주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전혀 생소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취임 전에는 사실 총재가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일이 많아서 전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다.”(웃음)

―취임 후 처음으로 치른 대회가 지난달 끝난 박신자컵이었다. 일본 팀이 참가하는 등 대회가 확대되고 있는데.

“박신자컵이 처음에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국내 팀들의 유망주들이 출전하는 시범경기 성격이 짙었지만 이제는 국제대회로 발전한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아쉬운 건 일본은 우승팀이 출전하는 등 적극적이지만 한국팀이 100%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본다. 박신자컵에서 한국 팀이 우승하지 못한 건 실력도 떨어지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도 있다. 내년에는 폭을 더 넓혀 동부 유럽과 중국 팀까지 초청해 10~13개 팀이 경쟁하는 대회로 확대를 검토 중이다. 이왕 국제대회로 하려면 제대로 하는 게 좋다고 본다.”

―27일 시작되는 새 시즌에는 아시아쿼터가 처음으로 도입된다.

“아시아쿼터에 일본 선수들만 참여했고 또 A급 선수가 없는 게 아쉽다. 아직 한국 여자농구 시장의 매력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일부 일본 선수들은 식사를 팀에서 제공해 주는지를 묻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각자 해결하는 모양이다. 이런 것과 비교하면 WKBL은 매력적인 무대다. 일본의 우수한 선수들이 올 수 있도록 WKBL을 더 알려야 한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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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의 대우에 비해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 시급한 과제가 있다면.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먼저 전용구장이 필요하다. 서울 같은 곳에 농구 전용구장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서울 동서남북에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박신자컵이 열린 아산 이순신체육관 같은 시설이 서울에 4개 정도 있었으면 한다. 여자농구 선수들을 위한 대학도 부족하다. 대학농구가 좀 활성화돼야 한다. 어린 학생들이 프로 선수가 못 돼도 대학에 진학하면 가서 체육교사 자격증도 따고 이런 식으로 농구를 했던 학생들의 진로를 뚫어 줘야 한다. 대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여자 농구팀을 만들기 힘들면 특기생이라도 좀 뽑아 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 각 지자체에 여자농구팀 창단을 부탁 중이다. 서울 서대문구청처럼 말이다. 박찬숙 감독이 이끄는 서대문구청 여자농구팀은 예산 이상의 큰 홍보효과를 내고 있다. 안 되면 3대3 농구팀이라도 창단해 줬으면 한다. 서울시장에게 건의해 보겠다.”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 등 여자농구 저변확대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지방을 돌며 교육감배 유소년 대회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 중이다. 각 지방에서 교육감배를 많이 만들어 우승팀끼리 자꾸 경기를 치러야 경쟁하게 되고 발전한다. 제가 할 일은 각 시도를 돌아다니며 교육감을 만나 유소년 농구대회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이다. 지방에서도 교육감들이 체육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느꼈다.”

―취임사를 통해 6개 구단 체제를 넘어 제7구단 창단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금은 금융권만으로 6개 구단이 운영되고 있다. 이제는 금융권 말고, 일반 기업에서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일반 기업에 오퍼를 던졌다.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뒤로 들리는 소문은 괜찮은 것 같은데 문제는 선수가 없다는 점이다. 우선 준비하는 데 1년 이상은 걸릴 것 같다. 모두 금융권 팀들이라 자기네들끼리 한다는 평가도 알고 있다. 앞으로 비금융권 적어도 두어 팀은 더 있어야 된다고 본다.”

―취임사에서 또 관중을 30%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연고지가 모두 지방인 점이 아쉽다. 서울시민들이 농구를 보려면 아산이나 부천, 인천으로 가야 한다. 이전에 있었던 서울 중립경기의 부활을 생각하면서 서울시 시설공단을 두 차례나 찾아가 대화를 나눴다. 적어도 올스타전이나 결승전같이 큰 경기는 서울에서 해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서울 연고팀을 줄 수도 없고 체육관도 없는데, 서울사람들이 여자농구를 볼 기회까지 차단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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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 동원을 위해 스타 선수의 등장도 필요해 보인다.

“스타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안 그래도 구단들과 스타 선수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저변이 두텁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선수들도, 또 구단도 힘들게 훈련하면서 선수들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

―반면 선수들 사이에서는 ‘노력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선수들 사이의 연봉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구단들이 신중하게 연봉책정을 해줬으면 한다. 필요한 선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장치일 수 있지만 선수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구단들 동의를 받아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핵심성과지표(KPI)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선수층이 얇아 외국인 선수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외국인이 뛰던 시기에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이면으로 거래를 하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테스트 케이스로 아시아쿼터가 도입됐다. 이제 이 제도를 점차 넓혀 갈 생각이다. 당장 몇 년 간은 일본과 동남아를 생각하고 있고, 점차 미국시장까지 넓혀 나가겠다.”

―마지막으로 총재를 재임기간 ‘이것만은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는지.

“여자농구 저변확대 외에 연맹이 각 구단에 손을 벌리지 않고 자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마음대로 되진 않겠지만 연맹 사무실을 옮기고 싶다. 새 건물을 완공하지 못해도 준비는 해놓고 떠나겠다는 생각을 한다.”

신상훈 WKBL 총재는…

●1948년 전북 군산 출생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신한은행 입행(1982) ●신한은행 영동지점장(1986) ●신한은행 일본 오사카지점장(1986) ●신한은행 자금부장(1994) ●신한은행 영업부장(1997) ●신한은행 상무(1998) ●신한은행 제9대 은행장(2003) ●신한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2009~2010) ●WKBL 총재(2024)

대담=송용준 문화체육부장, 정리=정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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