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 1%대에도 장기실업은 늘어
그는 “잦은 야근에 비해 받는 돈이 적어 이직을 결심했는데 지금은 전보다 연봉이 낮은 곳까지 원서를 넣는 처지”라며 “면접에 합격해 입사가 정해졌는데도 첫 출근 직전에 입사 취소를 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전체 실업자 5명 중 1명은 박 씨처럼 반년 넘게 일자리를 구하고 있지만 취업을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8월 기준으로 구직 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 실업자는 11만3000명으로 전체 실업자의 20%를 차지했다.
장기 실업자 비중이 20%대까지 커진 건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실업률은 사상 처음으로 1%대까지 떨어졌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 장기간 실업 상태에 빠진 이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6개월 이상 쉰다” 절반이 2030세대
장기실업자 11만명
30대 장기실업 1년새 5000명 늘어
“시간-보수 만족 못해 직장 그만둬”
양질 일자리 부족이 원인 꼽혀
전체 실업자에서 장기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 4월 이후 4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4월만 해도 10%를 밑돌았던 장기 실업자 비중은 3개월 만에 20%까지 상승했다. 특히 장기 실업자 2명 중 1명은 2030 청년층이었다. 8월에 1.9%까지 떨어진 실업률은 장기 실업자들이 결국 구직조차 포기하게 된 ‘실망 노동자 효과’ 탓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 장기 실업 절반은 2030 청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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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통계청에 따르면 8월 기준으로 구직 기간이 6개월 이상인 20, 30대 장기 실업자는 5만7000명으로 전체 장기 실업자의 50.4%였다. 20대가 3만 명, 30대가 2만7000명이었다. 전체 장기 실업자는 1년 전보다 7000명 가까이 늘었는데, 30대에서만 5000명 넘게 증가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장기 실업자가 늘고 있는 이유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의 단면으로 풀이된다. 청년들이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구직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8월 기준 직장을 그만둔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장기 실업자 4명 중 1명(24.7%)은 이전 직장을 그만둔 이유로 ‘시간·보수 등의 작업 여건 불만족’을 꼽았다. ‘임시 또는 계절적 일의 완료’(26.4%)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이다.
최근 일자리는 저숙련 단기 일자리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 주휴수당과 각종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취업자는 8월 201만5000명으로 올 2월(204만8000명)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8만4000명 늘었다. 반면 안정적인 일자리로 꼽히는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209만9000명 줄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수출 호조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까진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국 수출 실적을 좌우하고 있는 반도체의 경우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취업유발계수(10억 원어치를 생산할 때 필요한 직간접 취업자 수)는 2.1명으로 전체 산업(10.1명)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 “일자리 미스매치 방치하면 생산성에 악영향”
문제는 장기 실업을 겪은 이들이 구직조차 포기해 노동시장을 아예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올 1월 3.7%였던 실업률은 8월에 1.9%까지 하락했다. 실업률이 1%대를 보인 건 현재의 기준으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구직을 포기한 실업자들은 빠져 있다. 실업자가 더 이상 구직을 하지 않게 되면 통계상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면서 실업률을 계산할 때는 제외된다. 이 같은 실망 노동자 효과가 발생하면 실업률 지표 자체는 개선된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 8월에 일하지도 않고 일자리를 찾지도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는 1621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4만8000명 늘었다. 비경제활동인구는 2021년 3월부터 올 5월까지 39개월 연속 전년 대비 줄다가 올 6월부턴 매달 증가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오랫동안 일자리를 못 구한다는 건 일자리 미스매치가 심각하다는 의미”라며 “이로 인해 실망 노동자 효과가 생기면 경제 전체적으로는 인적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자리 미스매치가 심화되면 경제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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