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펀쿨섹' 발언, 전체 맥락 보니 동문서답 아냐…
"망신 당할까 걱정" 거친 질문에도 능숙한 대처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전 환경상이 6일 도쿄에서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로이터=뉴스1 /사진=(도쿄 로이터=뉴스1) 유수연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일본 차기 총리 후보로 급부상한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은 한국에서 '펀쿨섹좌'로 유명하다. 국제연합(UN·유엔) 회의에서 "기후문제는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발언을 두고 동문서답 아니냐면서 한국 누리꾼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그러나 전체 맥락을 살펴보면 동문서답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언변을 과시하는 계기로 탈바꿈한 모양새다.
'펀쿨섹' 발언은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청년 세대가 탄소 저감 필요성에 공감하고, 미래를 위해 스스로 행동하도록 독려하겠다는 취지로 발언 중이었다.
당시 NHK 영상을 보면,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기후변화 같은 커다란 이슈를 다룰려면 일단 재밌어야 한다. 쿨해야 하고, 섹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NHK는 "발언의 구체적 의미를 묻자 고이즈미 환경상은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실언을 볼 만한 대목이나, 전체 발언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당시 마켓워치 보도를 보면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정치 이슈가 너무 많다. 때로는 지루하다"고 말한 뒤 문제의 발언으로 나아갔다. 정치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청년 세대에게 기후 문제를 설명하려면 간단하고 쉬운 말로 흥미를 돋궈야 한다는 의미다.
당시 발언에 한국 누리꾼들만 의아했던 건 아니다. 한 일본 대학생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섹시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서 "일본 시민으로서 창피하다"고 했다.
더디플로맷은 섹시라는 단어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설명했다. 매체는 "일본에서 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금기"라면서 "대부분의 일본인은 섹시라는 단어가 흥미롭다는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뜬금없이 섹시하다는 형용사를 끌어온 것도 아니다.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에 따르면 이는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 연설에서 따온 것. 피게레스 전 사무총장은 2012년 유엔 회담에서 "그린을 섹시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전세계인이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신지로 당시 환경상이 문제의 '펀쿨섹' 발언을 하는 모습./사진=NHK 월드 재팬 페이스북 갈무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피게레스 전 사무총장은 고이즈미 전 환경상 발언 당시 바로 옆자리에 배석해 있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섹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옆을 가리킨 이유다. 더디플로맷은 "피게레스 전 사무총장 발언을 인용한 것이라고 일본 대중들에게 설명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발언은 이번 일본 총리 선거까지 꼬리표로 붙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지난 8일 유세장에서 "일본 총리가 돼 G7 정상회의 등에 출석한다면 지적 수준이 낮아 망신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거친 질문을 받았다. 이후 대처가 능숙했다. 질문 이후 잠시 고개를 떨구더니 질문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내가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고 완벽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그 부족함을 채워줄 팀, 최고의 팀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어 질문자의 이름을 묻고는 "당신에게 이런 지적을 받은 것을 명심하고 '그 녀석 나아졌구나'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 환경상 재임 당시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서 "그 기자와는 퇴임 때 꽃다발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당신과도 그런 사이가 되면 기쁘겠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인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과 함께 유력한 총리 후보로 꼽힌다. 현재 43세인 그가 총리에 당선된다면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된다.
일각에서는 나이가 어린 데다 부친 후광으로 정계에 입문한 탓에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더디플로맷은 고이즈미 전 환경상의 이력을 소개하면서 나이에 비해 경험이 상당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7년 부친 비서로 정계에 입문, 29세의 나이로 국회에 입성해 5선에 성공했다. 2013년 정무차관을 지냈고 2019년 환경상, 원자력 비상 대책 담당 국무장관을 맡았다.
부친 후광 덕이라는 비판에 대해 더디플로맷은 고이즈미 전 환경상 집안은 증조부가 교통부 장관을, 친조부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정치 명문가라면서 이런 후광이야말로 고이즈미 전 환경상의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젊은 나이를 강점으로 여긴다. 자신과 같은 나이에 백악관에 입성한 존 F 케네디를 롤모델로 삼고 의원 사무실에 케네디 전 대통령 사진을 걸었다고 한다.
더디플로맷은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총리로 선출된다면 후쿠시마 오염수(일본은 '처리수'라 지칭) 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지난 7월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 대사와 함께 후쿠시마 해변을 찾아 서핑을 즐기고 현지 생선으로 식사를 했다. 그는 행사 후 취재진에게 "비과학적인 후쿠시마에 대한 공격에 대해 미·일이 함께 맞서겠다는 의사를 확인한 귀중한 시간이 됐다"고 했다. 오염수 해양 방류 개시 후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한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