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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벌거벗은 세계사' 뉴턴 "2060년 지구 종말" 예언..주식 투자로 40억 손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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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tvN '벌거벗은 세계사' 캡처



10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 168회에서는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박민아 교수가 강연자로 나선 가운데,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아이작 뉴턴의 숨겨진 비밀을 파헤쳤다.

르네 데카르트에 푹 빠진 뉴턴은 데카르트 사상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나갔다. 뉴턴의 대부분의 업적이 실제로 데카르트 사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천동설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였지만, 지동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뉴턴 역시 지동설에 대해 연구했다. 뉴턴이 학자들의 궁금증 중 하나인 '달이 왜 떨어지지 않고 지구 주변을 돌까?'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 달을 보며 고민하던 중, 사과가 떨어졌다. 뉴턴은 떨어진 사과를 보며 중력을 떠올렸다. 뉴턴은 '관성의 법칙에 따르면 궤도를 벗어나 날아가야 하지만, 지구에서 당기는 힘과 달의 관성 운동력이 균형을 이루어 지구 주위를 돌게 된 것'이라는 결과를 도출했다.

뉴턴은 26세에 교수가 됐지만, 너무나 어려운 강의 내용에 수강생이 단 한 명도 없어 벽을 보고 강의를 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뉴턴은 강의에 대한 열정이 식었고, 결국 혼자 공부하며 연구를 이어나갔다.

뉴턴의 위대한 발견은 계속됐다. 뉴턴은 광학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시력이 손상될 위기에도 불구, 빛의 특성을 연구했다고 전해졌다.

뉴턴이 사람의 눈이 빛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황당한 실험을 했다. 뜨개바늘로 눈꺼풀과 안구 사이 틈을 찔러 본 것이었다. 망막의 굴곡이 바뀌면 빛이 어떻게 보일지를 관찰한 것이었다. 그 결과 눈의 망막에 어두운 선 또는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관찰했다.

해당 연구를 통해 뉴턴은 기존의 망원경보다 길이가 훨씬 짧은 망원경을 만들어냈다. 렌즈 대신 거울을 사용했기 때문. 심지어 기존 망원경 40배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망원경으로 인해 영국 왕립학회 정회원 자격을 부여받은 뉴턴은 실력있는 다른 학자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뉴턴은 표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표절 시비가 일어난 인물은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츠였다. 뉴턴이 미적분을 설명한 내용이 담긴 논문을 작성했다. 그러나 바쁜 일정으로 미뤄둔 채, 가까운 학자들에게 해당 내용을 얘기했고 10년 동안 뉴턴의 논문이 잠들어있던 중 라이프니츠도 미적분에 대해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미적분이 실생활에 쓰이냐"는 은지원 질문에 윤소희는 "실제로 촬영할 수 없는 장면들을 미분을 통해 그래픽으로 구현한다. 영화 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또 주식을 분석할 때 쓰인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논쟁이 결정적으로 꼬이게 된 것은 라이프니츠가 1684년에 미적분 논문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뉴턴은 뒤늦게 미적분 논문을 발표하자 라이프니츠는 분노했다. 그 이유는 미적분 기호때문이었다. 뉴턴은 기호를 사용하지 않았고 라이프니츠는 기호를 사용했는데 뉴턴이 라이프니츠의 논문을 보고 기호를 비슷하게 따라 쓴 것.

이는 영국과 독일의 국가적 분쟁으로 확대됐다. 결국 뉴턴을 지지하던 영국 왕립학회와 독일의 학자들이 더이상 연구 교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라이프니츠가 결론을 내달라며 영국 왕립학회에 요구했다. 그런데 그 당시 왕립학회 학회장이 뉴턴이었다고. 결국 영국 왕립학회는 뉴턴의 손을 들어줬다. 윤소희는 "결국 두 사람 모두 미적분 만든 것을 인정 받았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미적분의 개념과 기호는 라이프니츠의 방식이다"라고 설명했다.

헤럴드경제

tvN '벌거벗은 세계사' 캡처



금단의 구역, 연금술에 빠진 뉴턴은 30년에 걸쳐 오랫동안 연금술을 연구했다고 한다. 뉴턴은 연금술 실험 시 수은을 많이 사용해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이후 뉴턴은 우울증, 불면증, 과대망상 등에 시달리는데 이러한 질환이 수은 중독 때문이라고 전해졌다. 실제로 뉴턴의 머리카락에서는 수은이 정상 수치보다 40배 가량 높게 검출됐다고 한다.

뉴턴은 종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을 해석하고 비밀을 해독하는 것에 심취했던 뉴턴은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2060년,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뉴턴은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한 책 '프린키피아'를 남겼다. '프린키피아'는 뉴욕 경매에 나왔고, 한화로 44억에 낙찰됐다고 한다.

스티븐 호킹은 "물리학과 수학에서는 뉴턴이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프린키피아'는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뉴턴은 54세에 조폐국에 부임해 위조 화폐 범죄 수사까지 하며 조폐국 국장까지 승진했다고 전해진다.

1720년 뉴턴은 주식 투자로 인해 인생에 큰 위기를 겪었다. 남해회사의 주식을 산 뉴턴은 폭락한 주식에 약 2만 파운드, 대략 40억 원의 손실을 입게 됐다. 이후 뉴턴은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사람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뉴턴은 부동산 투자로 재기했다. 당시 부동산 투자로 3만 2천 파운드, 약 65억 원을 벌었다고 한다.

윤소희는 "뉴턴은 한평생 연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동성애자, 무성애자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주치의가 한 말에 의하면, 뉴턴은 평생 동정이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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