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하지 않고 공격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했지만, 행동은 사뭇 달랐다. 팔레스타인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1차전서 졸전 끝 0-0 무승부 이후 경기 내내 쏟아진 정몽규 축구협회장과 홍명보 감독을 향한 야유에 ‘괴물 수비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강력하게 자제 요청을 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도 보였고, 붉은악마 응원단을 향해서는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B조 1차전에서 팔레스타인과 0-0으로 비겼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1차전 대한민국과 팔레스타인의 경기, 대한민국 김민재 선수의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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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는 잡음이 많았던 홍 감독의 대표팀 사령탑 복귀전이었다. 화끈한 승리가 절실한 경기.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 탈락 이후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이 경질됐고, 이후 외국인 사령탑 선임에 집중했던 대한축구협회는 6개월 만에 돌연 ‘국내파’ 홍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실패(1무 2패 조별리그 탈락) 경험이 있는 홍 감독이 키를 쥐자, 공정성 논란이 일어 축구팬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이날 대표팀 응원단 붉은악마는 경기장에 홍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축구협회장을 비난하는 걸개를 내걸었다. ‘일진놀이 몽규, 협회는 삼류’ ‘한국축구의 암흑시대’ ‘피노키홍’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경기에 앞서 선수단 소개 때 장내 아나운서가 홍 감독의 이름을 부르자, 6만여 관중이 일제히 야유를 쏟아내기도 했다. 경기 도중에도 전광판에 홍 감독의 얼굴이 비칠 때마다 야유가 터져 나왔고,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 뒤에도 팬들은 홍 감독과 정 회장을 향해 야유했다. ‘정몽규 나가!’ 등 연호가 이어졌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1차전 대한민국과 팔레스타인의 경기에서 붉은악마를 비롯한 관중들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향한 야유를 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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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0-0으로 마친 뒤 김민재는 홀로 붉은악마 응원석을 찾아 자제를 요청했다. 당시 현장을 찍은 영상을 보면 김민재가 팬들이 있는 관중석으로 다가가자 팬들은 김민재를 향해 박수를 쳤다. 그러나 김민재가 굳은 표정으로 양손을 들어 자제해달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허리에 손을 올리더니 가까이 있는 팬들에게 “선수들만 응원해달라. 부탁드릴게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김민재는 뒤를 돌아 그라운드를 가로질렀다. 김민재는 이때 팬들 쪽을 한 번 더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김민재는 동료들과 상암구장을 한 바퀴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면서도, 붉은악마 응원단이 있는 곳 앞에서는 허리에 손을 올린 채 그저 관중석을 바라보며 인사를 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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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는 취재진에게 “다들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선수들을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린 것이다. 공격적으로 한 게 아니다”며 “저희가 시작부터 못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홈팬들은 홍 감독과 정 회장을 규탄했을 뿐, 선수들에겐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민재는 또 “(내 뜻을) 왜곡해 SNS에 찾아와서 말씀하시는 분들에 계시는데 시작부터 못 하지는 않았다”며 “못하길 바라고 응원해주는 부분들이 조금 아쉬워서 그랬다. 전혀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도 이번엔 김민재를 감싸기보다 조언에 나섰다. 김민재의 행동에 대해 “그런 케이스가 다시는 나오면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하면서 “홈에서만큼은 우리가 스스로 적을 만들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가 상대를 무너뜨리는데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지 팬들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시고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김민재의 이런 태도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해 3월 우루과이전 직후 “대표팀이 아닌 소속팀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폭탄 발언을 하기도 했다. 소속팀의 빡빡한 일정 속에 대표팀의 무게감을 가볍게 본 언행이었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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