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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군더더기, 면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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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군더더기, 면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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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품은 그대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언론에서 소식을 접하고 금방이라도 찾아갈 듯 굴지 않았던가.

인간은 때때로 요망스러운 데가 있다.

누가 오라고 잡아끄는 사람도 없는데 '불볕더위 가시고 가야지, 일정이 바빠서'라고 차일피일 미루며 군말이 많다.

남이 모른다고 내가 모르랴.

나를 주관하는 영혼은 자신의 흠을 정확하게 짚는다.


약 한 달을 미루다 게으름을 떨쳐낸다.

통합 청주시로 출범 10년을 기념하며 예술 작품으로 '상생과 통합'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회.

강익중 작가의 '청주 가는 길'과 고故 윤형근 작가의 '덤덤하게'를 여유롭게 관람하고 있다.


청주 출신인 두 작가의 작품은 그 어떤 것도 소홀히 넘길 수가 없다.

예술가는 통하는가.

작품을 톺아볼수록 글 쓰는 이의 마음결과 비슷하다.


강익중 작가가 평소에 시와 일기처럼 써온 오방색 문장을 한 줄 읊는다.

'인생은 누구나 처음이라 전문가가 없다.'라는 문장은 '내가 아는 것'이란 한글 프로젝트의 첫 문장이다.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가슴에 지녀야 할 명언이다.

작가의 마지막 문장도 의미심장하다.

'확실히 예습보다 복습이 중요하다'라고 적는다.

10미터 높이의 1층 전시실 벽면에 가득 메운 정사각형 타일의 자음과 모음.

알록달록한 문장을 완독하려면,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필요하다.

작가가 고뇌한 작품이, 지나간 시간의 축적이 어디 거저 읽히겠는가.

뉴욕에서 머무는 강익중 작가는 '3인치 작가'로 불린다.

그의 생애를 듣고 있으니 참으로 애처로운 작업이다.

유학을 뉴욕으로 간 그는 하루 12시간씩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다.

생업에 치중하니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더란다.

궁리 끝에 가로, 세로 3인치의 정사각형 캔버스를 여러 개 만들어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오고 가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그렇게 3인치(약 7.6cm)의 작품이 천 개, 일만 개의 작품이 되어 작가를 대변하게 된다.

나도 직장 생활하며 치열하게 글을 쓴 사람이라 분초를 아끼는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작가의 3인치 캔버스의 글과 그림은 바다에서 얻은 소금처럼 빛나는 역작力作의 결정체이다.

어디 그뿐이랴.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 작가 윤형근의 생애도 남다르다.

그 시절 상업고의 기본인 주산, 부기, 타자를 배우는 치열한 환경에서 그림을 그렸으니 남다른 사람이 틀림없다.

'침묵의 작가'로 불린 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리라.

더욱이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였으니 감히 상상도 못 할 심적 고통이 심했으리라 본다.

오죽하면, '군더더기와 잔소리가 싫다.'라고 입막음을 했으랴.

추사 김정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그의 말년 작품은, 스승인 김환기 작가의 화풍과는 역발상으로 군더더기 없는 하나의 빛깔인 먹빛으로 표현되고 있다.

글과 그림은 서로 조력자인가.

연암은 '하루에 십여 차례씩 그림첩 펼치면 글 짓는 데 크게 도움 주는 첩경'이라고 심안의 중요성을 서간에 적는다.

또한, 군더더기에 관하여 '목숨 건 글쓰기에 군더더기 붙이기조차 면구스럽다'고 말한다.

필자도 글을 지도하며 문장에 적확한 단어 사용과 군더더기 없는 단문을 쓰라고 강조한다.

형용사와 부사로 치장한 문장은 화려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로 늘어지기 때문이다.

난삽한 글쓰기 버릇을 고치는 비기로 이순신의 '난중일기' 문장을 손꼽는다.

주어와 동사로 쓴 간결한 문장을 발맘발맘 좇으면 그 버릇은 어느 정도 해결되리라.

삶의 철학과 진정성이 배인 글이어야 독자의 감흥을 얻을 수 있다.

두 작가의 그림전에서 글쓰기 조언을 우수리로 얻는다.

삶에 군더더기가 많으면 버거우리라.

나이가 들어가며 인간관계도 줄이고, 잔소리도 줄이고 싶다.

잔소리는 조절이 가능한 데, 관계의 포기는 쉽지 않으리라.

두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에서 보았듯, 군더더기를 뺀 남다른 작가 정신이 빼어나다.

글이든 그림이든 예술의 극치에 다다르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예술은 이론을 가지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천진무구한 인품에서만이 영원불변한 향기 높은 예술이 생성되는 것임을 절감한다.'라고 윤형근 작가의 일기가 여러 날 마음을 울린다.

이은희 수필가 아침뜨락